서점에 가 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제 경영 도서 중에서 가장 많은 종수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재테크와 부자 관련 서적들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 한 가지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것이 있다. 따분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왜 돈을 버는가’ ‘돈이 우리네 인생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어떤 일이든지 방법론이 본질을 압도하면 그 부작용이 생겨나는 법. 거품이란 것은 단순히 주가나 부동산이 본질 가치보다 많이 오르는 데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의 삶에서, 서점에 널린 책에서도 거품을 목격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이다.
사람들에게 ‘왜 돈을 벌고 싶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면 대개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구질구질하게 살기 싫어서’ ‘내 자식에겐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등등. 심지어 이런 대답도 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성(性)과 돈을 연관시킨 남자의 대답도 들어본 적이 있다. ‘돈만 있으면 많은 여성을 만날 수 있다.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가진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는 단 한 명도 본적이 없다.’
이런 대답들은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 사실 돈을 버는 데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이런 대답들을 한 가지로 아우르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돈을 버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의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추상적인 ‘행복’이라는 가치를 지루하고 따분한 개념을 쓰는 경제학자들이 연구 주제로 삼았다는 것도 재미있는데, 그 연구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경제사학자이자 행복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1946년부터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 등 30개 국가의 행복도를 추적, 관찰했다. 결과는 우리의 상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경제적 발전 단계나 사회 체제와 상관없이 어떤 나라에서든 잘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은 행복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시점을 두고 분석해 봤더니 소득 수준이 늘어나도 행복도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소득이 늘어나면 행복도가 증가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미국의 경우 1971년부터 1991년까지 1인당 국민 소득이 83%나 증가했는데,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이전보다 줄어든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이스털린 교수의 이름을 따 ‘이스털린 역설’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개별 국가 단위에서는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행복감을 나타냈지만 그렇다고 잘사는 나라의 국민이 못사는 나라의 국민보다 더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아프리카의 원주민이나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소득 국가들이 세계 12위 경제권에 들어가는 우리나라의 국민들보다 더 높은 행복감을 보였다. 30여 년간 이를 추적·조사해 봐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실증적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소득이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감을 느끼지만 이는 개별 국가 내부의 문제일 뿐이라는 점이다. 국가 간 비교를 해 보면 오히려 잘사는 나라의 국민보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이런 모순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많은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있어왔고 그 연구 결과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주제들이다.
아주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은 처음으로 월급을 받고 알뜰살뜰 절약한 덕분에 드디어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집에서 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이 사람의 행복감은 매우 높아진다. 그러나 일정 정도 재산이 축적된 다음에는 더 이상 행복감이 증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상황에 적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적응이란 단어가 간단한 것 같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사람들을 보면 측은지심을 느낀다. 그리고 그 사람은 불행할 것이라고 예단해 버린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일반인과 똑같이 행복감을 느낀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커너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신체가 마비된 장애인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신체가 마비된 장애인이라는 상황이 그들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일을 한다. 좋은 식사를 즐기고 친구들을 사귄다. 신문도 읽는다. 중요한 것은 관심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적응능력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본성 중의 하나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에 관해서는 자신이 적응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예외 조항으로 두고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추구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와 생활 속의 관찰을 통해 보면 인간은 돈에 관해서도 적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는 ‘적응’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1987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5만 달러라고 대답했다. 급여가 꾸준히 오른 7년 뒤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10만 달러라고 응답했다. 심지어 최고 수준의 소득자들 중에서 무려 19%가 자신의 수입이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 해결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행복과 돈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절대 가난해지지 말아야 한다. 가난하면 거의 대부분 불행하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행복감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이때 인간을 더욱 행복하게 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일자리 등이다. 돈이 주는 행복은 절대적 행복이 아니라 ‘제한된 행복’이라는 사실을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