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변호사가 대선정국 단일화 과정과 노원병 보궐선거에 안철수 전 후보가 출마하게 된 뒷얘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종현 기자
―먼저 지난 대선 정국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한다면.
▲양측 모두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우리 입장에서 말하자면 상대편에서 그림을 그려놓고 우리에게 끼워 맞추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우리 입장에선 ‘힘을 합쳐도 못 이길 거다’라는 의견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의 단일화 과정이 그랬던 것 같다. 물론 민주당과도 한편으로는 경쟁 관계였기 때문에 그쪽 스탠스에 대해 비난할 순 없지만 결론적으로 단일화 그림이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뭘 하더라도 좀 내버려둬야 나중에 협력할 때도 힘이 생기는 거 아니겠는가.
―안철수 캠프 내부에서도 단일화 패배에 대해 성찰한 부분이 있었을 텐데 어떤가.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우리 역량 자체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협상 막판을 예로 들자면 새로운 안을 만들어 후보에게 전하려 해도 박선숙 본부장 등 당시 핵심인력이 TV토론 준비에 정신없었다. 그만큼 인력이나 역량이 부족했고, (이해는 되지만) 민주당이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 예상 못했다.
―단일화 협상 과정 때 후회되는 일은 뭔가.
▲당시 민주당 측 전략은 ‘안 전 후보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하겠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민주당이 마치 ‘매달리는 여자친구’처럼 됐었는데 그런 게 우리(이미지)를 깎아 먹는 거더라. 결과적으로 우리가 미숙했다. 민주당 사람들은 자신의 당을 위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일 뿐이다. 당시 민주당이 한 일에 논평할 입장이 못 된다.
―그래도 민주당에 섭섭했던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민주당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언제나 갖고 있다. 다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측이 다소 부적절한 스탠스를 취하지 않았나’ 하는 작은 의문은 있다. 이를테면 민주당 측 습관이 ‘너희가 이래야 한다’고 설교를 잘 한다. ‘안철수가 이래야 한다’고 먼저 떠드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 고민해서 결정하면 그 쪽에선 ‘(형의 입장에서) 역시 우리가 말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나오니 우리 입장에선 협조할 일이 있어도 하기가 어렵게 되고, 지지자들 입장에서도 뭘 해주고 이용당하는 기분이 들더라. 선거 막판에 찬조 지지연설도 등 떠밀려서 하는 식으로 몰려서 못한 거다. 그래서 목도리 걸어주면서 아무도 예상 못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었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9인방 중 한명 빼라’ 사건의 전말은 무엇인가(양측이 11.6 대타협 뒤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2선 후퇴를 선언했던 ‘친노 9인방’ 중 한 명인 윤건영 전 청와대 비서관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안 전 후보 측이 그와 그의 배후 이해찬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며 반발했던 사건).
▲그건 정말 그쪽(민주당)에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친노라 불리는 사람들이 다 협상장을 차지했다고 해도 그건 민주당이 결정할 문제지, 우리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다. 내가 크게 절망했던 것은 민주당에선 ‘우린 정말 팔뚝을 잘랐다’고 말하면서도 9인방이라고 하는 잘림을 당한 분들이 거의 공개적으로 ‘실질적으로 일을 한다’며 다녔다는 점이다. 차라리 민주당 측이 ‘(친노)우리가 다 빠지면 팀이 약해진다’고 몰고 나갔으면 우리도 수긍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팔을 잘랐다’면서 밖에 나가선 ‘형식상 물러났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다 하는 거다’라고 하면 언행일치에 어긋나는 행동이지 않겠는가. 당시 우리와 민주당은 크게 봐서 같은 편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우리한테 ‘자 봐라. 이 사람들은 언행일치가 안 되는 거다’라고 하면 방어하기 쉽지 않다. 민주당에서 우리를 상당히 난감한 지경으로 만들었다.
―안 전 후보 측 일각에서 개인 의견으로 민주당의 인적쇄신을 요구했던 게 단일화 전략상 실수라는 내부 반성도 있는데.
▲우리의 입장은 인적쇄신 이야기가 절대로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공식적으로 요구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순전히 정치 공학적으로 보더라도 만일 인적쇄신을 하는데 밖에서 찍어 내보내라는 것으로 보인다면 비난만 자초하지 않겠는가. 공식적인 논평이나 후보가 직접 인적쇄신을 요구한 적은 없었는데, 캠프 구성원 개인 차원에서 그런 언행이 있었다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금 변호사의 발언 요지는 “민주당이 안팎의 쇄신 요구에 대해 (안캠을 향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촉각을 곤두세운 상황에서 안철수 캠프의 대처능력이 다소 떨어졌다. 당시 안철수 캠프 일각에서 (민주당 쇄신에 대해) ‘아니,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라며 개인 차원에서 몇 마디 아이디어를 냈을 수도 있고, 그것이 안 전 후보의 오만함과 그에 의해 민주당은 희생당하는 이미지를 획득했다고 보는 것 같다. 금 변호사는 안캠이 정치적으로 ‘순수’했고 민주당에 비해 대처 능력이 미숙했단 점을 반성하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쇄신에 대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절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안 전 후보가 단일화를 포기하고 전격 사퇴를 했는데 당시 심경은 어떠했나.
안 전 후보가 지역구민들을 만나는 모습. 이종현 기자
―캠프가 (사퇴로) 끌고 간 게 아닌가.
▲최종 결정은 안철수 후보가 직접 했다. 내부적으로 여러 의견이 나오면서 사퇴 의견도 조금 있었지만 그땐 냉정히 판단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안 후보 입장에선 3명이 대선후보 등록을 하게 되는 게 염려스러워 희생을 하려고 한 것 같다.
―사퇴 과정 때의 비스토리가 있다면.
▲안 후보 입장에선 문 후보와 민주당에 대해서 나름의 신뢰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면 (문 후보가) 양보를 할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문 후보의 인품을 봤을 때 지지율이 우리 쪽에 높으면 양보를 할 거로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단일화만 되면 이긴다’고 판단하면서 우리의 경험 부족을 이용해 이미지 소모전을 벌였던 것 같다. 민주당이 그렇게 나온 건 당측 기준에선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비판할 생각은 없다. 어떻게든 양측이 최선을 다해 이겼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죽을 죄를 진 죄인이 됐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그런 건 없다.
―어떤 단일화 안으로 경선하기를 바랐나.
▲TV 토론할 때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정몽준-노무현’ 식이었다. 2002년 선례대로 가자는 것이다. 선례니까. 그러면 반대하기 어렵다. 민주당 입장에선 자기들이 이미 한 거고. 지면 할 수 없다. 우리는 6대 4로 이긴다고 봤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길 수밖에 없는 협상안을 가지고 와서 우리가 못한다고 했는데, 어쨌거나 결국엔 사퇴를 했기 때문에 지원 유세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었다. 만약 경선에서 지면 그 다음에는 시키는 걸 다 해야 한다. 그걸 겪기 두려운 마음도 캠프 내 소수들에겐 있었던 것 같다. 노무현 후보가 마지막 유세할 때 정동영, 추미애가 차기라고 하는 바람에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가 깨진 것 아닌가. 그리고 내 생각엔 그때 박선숙 본부장은 ‘사퇴를 하면 안 된다’는 마음에서 그런 기자회견을 한 것 같았다. (박 본부장은 안철수 후보 측의 마지막 제안이라는 최후 통첩성 기자회견을 해 ‘너무 오만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민주당 쪽에서 자기들 좋은 안만 내놓으니까 ‘한 번만 더 해보겠다’며 마지막으로 타협해보려고 했는데 비장한 마음 때문에 다소 저돌적인 기자회견으로 비춰지게 된 것 같다. 앞뒤 사정을 알면 이해를 받았을 텐데 박 본부장만 욕을 많이 먹어서 너무 안타깝더라.
―단일화 경선은 어떻게 예상했나.
▲여론조사를 초반부터 쭉 안하다가 그때쯤에는 했다. 감으로 할 순 없으니까. 우리 내부 조사로는 괜찮았다. 우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면 질 거라고 생각 안했다.
―안 전 후보가 사퇴한 뒤 분위기가 정말 혼란스러웠을 것 같은데.
▲민주당은 단일화만 되면 노무현처럼 (대선에서)이길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사퇴 기자회견 생중계 보다가 환호성을 올린 사람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사퇴 후 한 열흘 가까이 안 전 후보에 대한 지원 요청이 없었다. 민주당 입장에선 단일화되면 지지율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제자리걸음이었던 거다. 부산 지원유세에 한번 따라가 봤는데 문 후보가 ‘안 전 후보가 날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더라. 노무현도 다 자기가 한 거다. 그런데 문재인 캠프는 우리가 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지지율이 안 오르니까 안철수만 바라보고.
안철수 전 후보가 대선후보 사퇴를 발표할 당시 캠프 관계자들이 눈물 짓는 모습.
▲노원병에 나오면 노회찬 문제도 생기고, 조직이 없어서 무조건 어려운 상황이었다. 재보선도 서울시장 선거 때도 투표율 50%대가 안됐는데 전화를 돌려서 꼭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명단도 없었다.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4월에 가만있을 수 없으니 누가 나가자 하는 분위기이긴 했었다. 재보선 선거가 있을지도 모르던 초반엔 원래 내가 나가려고 했었다. 캠프 내 정치 경험이 특별히 있는 사람도 없고, 그나마 인지도가 있던 내가 1순위가 됐다.(웃음) 이게 한때 우리 쪽에선 제1안이었는데, 점차 재보선이 가시화되자 (캠프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됐다. 물론 안 전 후보가 누구를 밀어서 당선시키는 모습을 보이면 가장 좋지만 떨어지면 타격이 크니까 직접 나가서 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의견에 힘입어 안 전 후보가 나왔다. 모든 건 안 전 후보가 직접 결정한 것이다.
―안 전 후보가 출마를 한다고 했을 때 캠프 반응은.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1월 중순에 미국에서 안 전 후보를 만났을 때만 해도 4월 선거가 없을 줄 알았다. 그땐 서로 재보선에 대해서 이야기도 안했다. 그런데 갑자기 노원이 잡히니까 선거 참여 여부에 대해 진중히 고민하게 된 것이다. 현실 정치에 발을 담그기 위해 본인 스스로가 단련하고자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본다.
―신당 창당 플랜은.
▲아직은 어렵다. 창당할 만한 실체와 힘이 없다. 안 전 후보 당선 후 논의해도 늦지 않다.
―안 전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꾸 주변에서 ‘신당 창당 할 거냐, (민주당) 입당 안 할 거냐’를 묻는데,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변화하고 성장해야 한다. 새로운 인사를 영입해 민주당 색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것은 이미 민주당이 많이 해왔던 방법이고, 그렇게 민주당에 들어가서 성공한 사람이 아직 없다. 더군다나 안 전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할 경우 기존 지지자들 사이에서 실망할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안 전 후보를 데려와서 목적 달성하려는 민주당 입장도 어중간해진다. 안 전 후보가 지금 민주당에 들어가는 것은 다소 부적절하지 않나 싶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금태섭 변호사는 누구? 네거티브 폭로로 떠올라 ‘너 안철수하고 친해?’라는 말로 시작된 일명 ‘정준길 협박’ 사건을 공개, 안철수 대선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정면으로 맞받아쳐 일약 유명해졌다. 서울대 법대 동기인 정준길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공보위원이 친구인 금태섭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안철수 원장이 최근까지 목동에 거주하는 음대 출신 여성과 사귀고 있었다’ ‘우리가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 ‘그걸 터뜨릴 것이기 때문에 나오면 죽는다’라고 말했다가 그것을 금 변호사가 전격 공개해 안철수 네거티브 공방의 분수령이 되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대학 동기의 여부와 상관없이 잘못된 점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멸의 신성 가족이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끼리끼리 감춰주고 그러면 망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금 변호사는 1967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검사를 마지막으로 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검사 재직 때 한 언론에 ‘수사 받는 법’을 연재해 한 차례 돌풍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 상황실장으로 맹활약하며 ‘안철수의 남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