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성 씨가 지난 12일 서울고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고 있다. 검찰은 북한에 포섭된 유 씨가 연세대에서 탈북자 정보를 모으며 첩보활동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유 씨 측은 탈북자 활동을 한 것은 맞지만 모임을 주도하며 첩보활동을 하진 않았다고 반박했다. 구윤성 기자
검찰은 지난해 유우성 씨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기소하면서 다양한 혐의점들을 내세웠다. 그 가운데 하나가 라.2011. 2.경 국가보안법위반(간첩) 및 국가보안법위반(회합통신등)이었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피고인은 연세대학교 중문학과 3학년에 편입한 2007년경부터 연세대학교 내 탈북자 출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동아리인 ‘연세대 통일한마당’(회원수 50여 명)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각종 교류행사와 봉사활동 등을 통해 교내 탈북자 출신 대학생들과의 접촉을 지속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은 2008년경부터는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약칭 ‘새조위’) 회원으로 가입하여, 탈북자 아카데미(탈북 청년 대상 리더십 교육, 상담, 포럼세미나, 교육간담회) 활동 등을 왕성하게 벌여나가면서 위 단체 소속 탈북자 신원정보를 확보하기도 하였다”라고 적시된 부분이 있다.
검찰은 유 씨가 적극적으로 탈북자 모임에 참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한 것으로 보았다. 자신의 적극적 의지가 개입된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입수한 유 씨의 ‘친구’ K 씨의 공판조서를 보면 유 씨가 탈북자 모임 가입을 권유받고도 거절했다는 증언이 일관되게 나온다. 만약 유 씨가 탈북자들의 신원정보를 캐내기 위해 모임에 가입하려 했다면 본인이 직접 찾아가 적극적 의지를 보여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유 씨는 오히려 탈북자 친구의 모임가입 권유를 받고 2차례나 거절한 것으로 나온다. 이는 유 씨가 첩보활동을 목적으로 탈북자 모임에 가입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하나의 정황증거로 해석돼 유 씨의 무죄 판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다음은 유 씨의 친구 K 씨의 증인신문조서에 나온 내용 중 핵심을 발췌한 것이다.
# 변호인 양승봉이 K 씨에게 신문
문: 증인이 처음 유우성을 알았을 때 유우성은 주로 탈북자들보다 남한 학생들과 많이 어울리고 있었지요.
답: 제가 처음 만났을 당시에도 남한학생들과 더 많이 어울리고 있었고, 그래서 새터민을 위한 동아리나 새터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 유우성은 통일한마당에 언제 가입하였는가요.
답: 수업을 통해서 만난 때가 2008년 말이었기 때문에 그때 통일한마당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문: 증인이 2011.4. 경 그만두기 전부터 유우성에게 계속 후임 자리를 여러 차례 제안한 사실이 있었지요.
답: 예.
문: 어떤 식으로 제안하였나요.
답: 일단 “여기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라고, 저는 사실 유우성을 생각해서 일자리를 소개해주려는 마음에 제안했습니다.
문: 왜 그 후임 자리를 제안했나요.
답: 일단 그때 당시 제가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하지 않았고, 상당히 힘들어하던 찰나에 인원이 필요했고, 부장님도 유우성을 좋게 평가를 했기 때문에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문: 부장님도 유우성에게 재단 일을 해보자고 권유한 사실이 있지요.
답: 유우성에게 직접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한테는 그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문: 그런 제안을 했을 때 유우성이 거절했었지요.
답: 예.
문: 그때 거절의 이유를 아는가요.
답: 특별한 이유는 저한테 이야기한 것이 기억되지 않고, “그냥 못하겠다,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문: 그 재단에서 일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탈북자명단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지요.
답: 예.
문: 증인이 회장을 입었던 새 코리아 청년 네트워크(NYKN)도 남북청년들의 통일운동단체지요.
답: 예.
문: 여기에서도 증인이 총무자리를 제안하였는데 유우성이 거절을 하였지요.
답: 제가 대표로 있으면 유우성에게 임원으로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었습니다.
유우성 씨가 지난 12일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고검에 출두해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윤성 기자
# 검사 이문성이 K 씨에게 신문
문: 증인은 2011.2.부터 2011.4.경까지 탈북자 관련재단에서 일을 했다고 하는데, 날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유우성에게 재단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던 것이 정확히 언제쯤인가요.
답: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데, 2월은 아니고 3월 정도인 것 같습니다.
문: 피고인에게 새 코리아 청년 네트워크 총무자리를 제안했다고 했는데 언제쯤 제안하였나요.
답: 제가 로스쿨준비를 하면서 대표 일을 하기 어렵게 돼서 부대표가 그 일을 받아 하면서 임원진이 필요했기 때문에 제안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가 2011년인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피고인에게 후임자리를 권유할 때 구체적으로 이 단체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증인이 하는 일은 어떤 것이다라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준 적이 있나요.
답: 재단에 대해서 탈북자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탈북자관련 일을 하는 단체들에서 거의 다 아는 단체여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문: 보통 탈북자들이 그런 재단에서 근무하기를 선호하나요, 안 하나요.
답: 재단이 그전까지 재단법인으로 되어 있다가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통일부 산하기관으로 됐는데, 공무원격으로 상승되면서 누구나 가고 싶어 합니다.
문: 그런 좋은 자리를 피고인에게 제안했으면, 그것을 거절할 합당한 이유를 대든지 해야 할 것 같은데 단순히 하기 싫다고 했나요.
답: 피고인이 저하고 2008년부터 알고 지냈는데 저는 상당히 아끼는 후배 중에 하나로 저 나름대로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와이프는 “가까이 지내지 마라”고 하여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속을 다 안 준다”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피고인이 북한출신이 아니라 화교라는 신분 때문에 모든 것을 오픈하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그랬던 것 아닌가 생각되고, 저랑 이야기할 때도 깊이 있게 이유라든지 설명을 잘 안 했습니다.
유우성 씨가 친구 K 씨의 모임 가입을 처음에 계속 거절한 것을 두고 그의 간첩행위에 대한 적극적 의지 결여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유 씨가 최초로 간첩활동을 한 것이 연세대 재학시절 탈북자 모임 가입을 통해 이뤄졌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유 씨의 연세대 시절 탈북자 모임 가입의 적극성 여부는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다. 유 씨가 애초 정보활동 의도를 가지고 연세대에 입학했다면 처음부터 탈북자 모임에 ‘스스로’ 적극 가입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하지만 검찰의 핵심 정황증거가 유 씨 친구 K 씨의 증언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이렇듯 유우성 씨 사건은 국정원의 증거조작 의혹 못지않게 1심 재판 전의 검찰 수사 자체에 대한 오류와 불신이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유 씨 측이 내세운 증인들을 국정원 직원이 협박을 하는 등 심각한 증거인멸 시도가 드러났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1차 판결 때의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서윤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