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2년 12월7일 시민들이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을 추모하고 미국에 항의하는 촛불시위를 서울 광화문에서 벌이고 있다. | ||
주변 사람들의 진술도 묘했다. 방에서 같이 잔 동료 대학생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죽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모든 질문에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태원의 그 여관방은 방음이 잘 되지 않았다. 한밤중이면 섹스를 하는 소리들이 여관 전체에 합창처럼 퍼진다고 했다. 죽은 미국 여대생의 옆방에는 핀란드여성 마리아가 잠을 자고 있었다. 마리아는 새벽 4시쯤 옆방에서 바닥을 구르는 것 같은 쿵쿵 소리와 함께 신음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화난 미국인 남자의 목소리도 잠결에 들었다고 했다.
또 여관 주인은 새벽녘에 작은 체격의 백인남자가 문을 빠져나가는 걸 목격했다고 했다. 그 전날 저녁 죽은 미국 여대생은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미군들과 춤을 추었다. 그러나 사건은 결국 미제로 남고 말았다.
다음해 연말 쌀쌀한 어느 날 오후, 나는 필리핀 밀림 속에서 선교한다는 한 전도사의 이메일을 받았다. 자원봉사로 영어선생을 하는 가난한 미국 부인의 딸을 구해달라는 절절한 내용이었다. 그 딸이 살인범으로 FBI에 의해 한국에 인도됐다는 것이다. 그 무렵은 미군 장갑차가 한국 여중생 두 명을 죽게 해서 시끄러울 때였다. 미국 군사법원은 탱크 운전병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분노한 우리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연일 촛불시위를 하고 있었다.
며칠 후 점심 무렵, 나는 용산경찰서 뒤켠의 붉은 벽돌 건물 안에 있는 강력4반으로 들어섰다. 금발머리에 뚱뚱한 여자아이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한미 범죄인인도조약 후 제1호로 한국에 넘겨진 살인용의자 켄지 슈나이더씨였다. 강력반에는 FBI 한국지부장이 와 있었다. 내 눈엔 그가 모든 걸 지휘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가 나를 밖으로 불러내어 설명을 시작했다.
“죽은 여대생 부모의 민원이 대단했어요. 범인을 잡아 사형시켜달라고 독을 품고 달려든 거죠. 제가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 FBI의 협조를 얻어 자백을 받았습니다. 욕실에서 동성애를 하다가 우발적으로 죽였답니다.”
그는 나를 세뇌시키려는 듯 살인을 기정사실화해서 말하고 있었다.
“FBI가 왜 한국경찰서에 와 있는 거죠?”
내가 그에게 항의했다. 그가 한국경찰관들에게 선입견을 줄 수 있었다.
“제가 여기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시는 게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미 연방수사국 요원 자격으로 와 있는 게 아니고 미국대사관 소속의 외교관으로 와 있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연방수사국 요원은 범죄인을 잡는 사람이고 외교관은 자국민보호가 임무다.
“그럼 외교관으로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봅니까?”
“스무 살 된 여자아이가 무죄라고 발버둥치는데 미국정부는 그 아이를 잡아서 한국으로 던진 거죠.”
한편으로는 때리고 한편으로는 쓰다듬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팔짱을 끼고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이렇게 털어놓았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미군 장갑차가 여중생을 죽게 한 걸 가지고 촛불시위가 대단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 자국민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해당국가로 보낸다는 미국의 입장을 한국인들이 알게 했으면 합니다. 그게 미국정부와 우리 대사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민의 분노무마용이라는 것이다.
2003년 1월7일 오전 11시. 영등포구치소 접견실은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구겨진 연두색 홑겹의 죄수복을 입은 미국여대생 켄지가 격분한 얼굴로 내게 미국정부를 신랄하게 성토하고 있었다.
“이 모든 걸 부시 대통령 비서와 FBI가 계획하고 공작했어요. 마지막에는 국무장관 콜린 파월이 사인을 해서 저를 한국으로 보냈어요. 전 미국정부의 속죄양이 된 거예요. 미국 군인을 보호하려고 저를 희생물로 삼았어요.”
FBI 한국지부장의 말과 일맥상통했다.
“그러면 왜 죽였다고 자백을 했나요?”
그녀는 미국 고향 부근의 호텔 조사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자술서를 썼었다.
“FBI가 저의 기억을 흐트러뜨리고 최면을 걸었습니다. 그때는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이런 소리 터무니없이 들릴 거예요.”
나는 그녀의 말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확실히 미국이란 나라는 다양성을 가진 국가인 것 같았다. FBI가 켄지에게 한 행위들을 면밀히 조사하고 증거자료까지 구해서 내게 보내준 용감한 변호사도 있었다.
그 변호사는 거짓자백의 현상과 원인을 연구하는 버클리대학의 리처드 교수에게 물어 켄지의 살인자백은 신뢰할 수 없다는 근거를 찾아냈다. 뿐만 아니라 그 변호사는 결정적인 FBI의 내부보고서까지 빼내어 내 사무실로 보냈다. 그 내용 중에는 미 상원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한 것도 일부 보였다. 그 변호사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보냈던 항의서 사본까지 내게 보내 주었다.
나는 미국이 한국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증거는 자백밖에 없었다. 그런데 본인이 그걸 부인하고 있다. 미국은 본인이 부인하면 당연히 무죄가 선고될 아이를 큰 생색을 내면서 한국으로 보낸 것 같았다.
나는 나중에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FBI 한국지부장이 찾아와 생색을 내면서 그 사건을 받으라고 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켄지씨의 엄마인 히스 부인은 나의 사무실로 와서 9·11사태 이후 미국은 FBI의 독재국가라고까지 비난했다. 오히려 한국의 사법절차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험당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재판 때마다 AP통신 등 국제 언론이 상황을 해외에 타전했다. 나는 담당형사나 검사에게도 원칙에 벗어난 어떤 무리도 하지 말자고 권유했다. 나는 법정에서 범죄사실보다는 그걸 수사한 FBI의 자격시비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들은 한국 내에서 어떤 권한을 가지고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인가의 문제였다. 먼저 FBI 한국책임자를 증인으로 불렀다. 그는 배후에서 이 문제를 총지휘하는 것 같았다.
“증인은 이 사건에 어떤 자격으로 임했나요?”
그는 한국에서는 아무 권한 없는 한 외국인일 뿐이다. 미국 내에서도 수사를 하려면 관할지역 요원에게 조사를 시켜야 FBI 규정에 맞았다.
“용산경찰서의 요청으로 미 연방수사국의 요원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자격시비를 빠져나가는 절묘한 대답이었다.
“용산경찰서의 누가 어떤 방법으로 요청을 했죠?”
“황 과장이 구두로 용의자를 자세히 인터뷰해 달라고 했습니다.”
한국의 경찰서 과장이 FBI 한국지부장을 움직였다는 논리였다.
“증인은 이번 일의 구체적인 명령을 누구한테 받았습니까?”
“주한 미국 부대사 에븐스 윌비어가 한국의 수사를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한국경찰의 수사보조를 하는 위치라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한국경찰이 미국에 출장 가서 직접 수사를 하고 그는 옆에서 도와야 했다.
다음은 미국에 있는 CID 요원인 맨스필드를 법정으로 불렀다. 켄지를 고향 근처의 호텔에서 조사할 때 FBI 한국지부장이 데리고 갔던 인물이었다. 미군 수사기관 요원인 그는 미국의 민간인을 조사할 권한이 없었다.
“미국의 군 수사요원이신데 이 사건은 누가 수사할 권한을 가진다고 생각합니까?”
“한국경찰입니다.”
“같이 헌팅턴으로 출장조사를 갔던 FBI 한국지부장은 어떤 자격으로 조사를 한 거죠?”
“제 생각으로는 한국경찰관을 협조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면 한국경찰관이 함께 갔거나 아니면 조사 도중 한국경찰관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지침을 받은 적이 있었나요?”
“저는 한국말을 하지 못했고 FBI 한국지부장이 어떻게 했는지는 모릅니다.”
결국 그들의 수사는 허점이 많았다. FBI 한국지부장이 군 수사요원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조사한 관할권 위반이었다. 지역의 FBI 사무실에도 협조를 하지 않고 호텔에 켄지를 불러 자백서를 받아낸 것이다. 영장도 없었다.
나는 한국의 법정에 미국 수사기관원들을 올려놓고 그들의 불법수사절차를 규탄했다. 우월감을 은폐하고 나를 설득하려던 그 책임자의 불쾌해 하는 표정을 나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재판장에게 고민은 증인비용이었다. 증인에게는 여비나 호텔비 등을 주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판장이 미국에서 건너온 군 수사기관요원인 증인에게 물었다.
“증인. 지금 어느 호텔에서 묵고 있나요?”
“제가 군 CID 요원이기 때문에 미8군 내의 숙소에서 공짜로 묵고 있습니다.”
“휴, 다행이네. 그 부분은 법원에서 돈을 안 줘도 되겠네.”
재판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말에 미국인 증인이 이렇게 반문했다.
“재판장님, 그렇지만 전 미국에서 신용카드로 비행기표를 사가지고 왔는데요.”
“그래요? 그러면 그 돈은 줘야 하는데 우리 법원에 돈이 있나?”
재판장이 난감해 하면서 총무과 직원을 법정으로 불렀다.
“비행기표 사줄 돈은 총무과에 없어요.”
법원 직원의 대답이었다. 증인에게 돈은 당장 줘야 하고 그렇다고 판사들의 월급을 줄 수도 없었다. 그는 증언시간보다 돈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FBI 한국지부장이나 CID 요원의 증언, 그리고 그들이 켄지에게 받은 자백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의 공작과 밀실수사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우롱당하지 않는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