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핵 강씨 죽음도 ‘찜찜’
그러나 <연합보>에 보도되면서 파문을 불러일으킨 이번 사건은 갖가지 의혹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건은 존재하는데, 국내의 사건 관련자들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이번 사건의 핵심을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아무개 전 교수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당초 알려진 것보다 강씨는 한국-대만 외교 관계에서 상당히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그는 천수이볜 총통의 가장 절친한 한국 친구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의 미스터리 가운데 핵심은 강아무개 전 경남대 교수의 존재다. 대만 현지의 보도대로라면 강 전 교수는 사기극의 주체가 된다. 하지만 국내에서 강 전 교수를 잘 알고 있는 지인과 주변 인사들의 증언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강 전 교수와 죽마고우인 김아무개씨는 “강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만통으로 천수이볜 총통과도 아주 절친하다. 그는 노태우 정권 시절부터 한-대만 외교관계에서 비공식 라인의 대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사실상 밀사라고 봐도 될 정도로 중요한 막후 채널이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 외교 관계자들은 그의 중요성을 다 안다. 또한 선대부터 큰 사업을 해온 집안이기 때문에 재산도 상당하다. 중국 전문가로 학계에서도 꽤 인정받는 학자다. 재산이나 명예가 남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친구다. 그런 그가 무슨 이유로 ‘그깟’ 몇십억원 때문에 국제 사기극을 벌인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실제 김씨의 증언대로 천 총통은 2000년 5월 자신의 취임식에 강 전 교수를 따로 특별히 초청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상당히 각별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78년부터 시작되었고, 대만의 한 대학에서 함께 공부했으며, 천 총통의 변호사 시절부터 사석에서 스스럼없이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일 정도로 꽤 절친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또 하나의 큰 의혹은 강 전 교수의 갑작스런 죽음이다. 강 전 교수는 2003년 2월17일 대만 현지에서 갑자기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사망 원인은 불분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지인은 “당시 나 또한 그가 사망한지 전혀 모른 채 몇 달 후에 안부 전화를 했다가 가족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심장마비라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건지 확실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씨 또한 “평소 그처럼 건강하던 강 교수가 갑자기 사망한 시점이 이 사건이 대만에서 불거지기 시작한 때와 우연히도 겹친다. 그가 대만 현지에서 갑자기 사망했고, 이 사건과 그의 죽음이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대만 최대의 일간지 <연합보>의 보도 성향 또한 의혹이 쏠리기는 마찬가지. 당초 이 신문은 지난 6월28일 첫 번째 기사에서는 ‘한국의 정치인 10명이 대만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약 1백60억원의 사기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 이 사건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도 바로 이 대목 때문이었다.
그러나 3일 만인 지난 1일 두 번째 보도에서는 ‘정계 인사들을 대신해서 한국 카지노 사업자 등 6명이 대만 고속철도 사업에 투자했다가 약 50억원의 손해를 보았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양국 외교가로까지 비화될 정도로 국제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임에도 <연합보>의 보도는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고수하는 대목은 국내 정계의 연관설이다. <연합보>는 ‘김아무개씨 등 한국인 피해자 6명은 정치인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유명 카지노를 운영하면서 정치권과 특수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 사업자들이 국내 정치인을 대리하는 역할인 것으로 전했다.
기자는 <연합보>측과 가진 전화 통화에서 “이들 피해자가 국내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인 것으로 보도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 신분을 정확히 확인한 건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연합보>의 한 기자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한국인 피해자들의 이름은 절대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정계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그는 “(대만) 검찰 조사 자료와 주대만 한국대표부 등을 통해 (신원 정보를) 확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의 답변에는 “개연성도 없이 함부로 그런 추정을 했겠느냐”는 강한 주장이 곁들여 있었다. 즉 카지노 사업자로 알려진 국내 피해자들은 이름만 대도 금방 국내 유력 정치인과의 관계를 알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었던 것.
대만 언론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국내 정치권과 이번 사기 사건의 연관성이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것처럼 제기되는 그 배경에는 대만 고속철 공사의 착공 시점과 양국간의 새 정부 출범 시기 및 그 성격이 묘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새로운 의혹’이 잠재하고 있다.
대만 고속철 공사 착공은 98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내에는 국민의 정부가 새롭게 출범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0년 대만의 야당 민진당이 집권했고 민주화의 상징인 천 총통이 취임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천 총통의 당선을 여러 가지 면에서 국내 DJ 집권과 비교하기도 했다.
실제 천 총통은 당선된 이후 그동안 소원해진 한-대만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여기에 자신의 오랜 지인인 강 전 교수를 상당히 활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강 전 교수는 2000년 5월 천 총통 취임식에 다녀온 후기를 국내 유력 일간지에 일제히 기고하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천 총통은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95년 경남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러 갔을 때 야당 총재로서 다른 중요한 약속을 모두 뿌리치고 만나주기도 했다. 정말 고마웠고, 나는 김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강 전 교수의 한 지인은 “강 교수는 한-대만 관계 개선을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특히 자신의 오랜 벗인 천 총통이 집권하면서 부쩍 의욕적으로 양국을 오가며 활발한 행보를 펼쳤다”며 자연스럽게 천 총통과 김 전 대통령 사이의 중간 고리 역할을 했던 점을 전했다.
그는 “강 교수와 천 총통과의 밀착된 관계를 유추해 볼 때 혹시라도 강 교수에게 대만의 국책사업인 고속철 사업 정보가 사전 유출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와 천 총통과의 친분 관계를 노린 한국 또는 대만 인사들에 의해 이용당한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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