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도 짝을 찾지 못해 결혼적령기를 넘기기 십상인 시대지만 노년층들의 만남은 의외로 어렵지 않게 이뤄지고 있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를 넘어서면서 이들을 위한 공간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노인정, 문화센터, 복지회관, 실버찻집, 약수터, 노인대학, 동호회 등 일단 집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얼마든지 이성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회관에서 만난 정 아무개 할머니(76)도 탁구를 배우며 남자친구를 사귀었다고 했다. 정 할머니는 “남편은 아들을 임신했을 때 전쟁터에서 죽었어. 이때까지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남자친구를 만나곤 내 인생을 찾은 거 같아서 행복해. 아들도 반대 안 해. 여기 오는 노인네들 혼자 사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 아무도 신경 안 써주는 노인네들끼리 밥 한 끼 같이 먹고 차 한 잔 마시면서 소소하게 사는 게 나쁜 짓은 아니잖아. 다들 떳떳하게 만나”라고 말했다.
옆에서 가만히 얘길 듣던 김 아무개 할머니(69)가 웃긴 얘기를 해주겠다며 말을 거들었다. 김 할머니는 “나도 좋아하는 영감이 한 명 있는데 경쟁이 심해. 웃기지. 다 늙어서 남자 하나 두고 싸운다는 게. 근데 나이가 들수록 할아버지들이 귀해. 할머니들이 더 오래 사는데다, 혼자 이런 데 나오는 할아버지들도 많이 없거든. 희소성이 있는 거지. 새로운 할아버지가 오면 서로 밥을 사준다면서 난리야. 주책이지만 그래도 재밌어”라며 수줍게 웃어보였다.
보다 적극적인 만남을 원하는 노년층이 찾는 곳은 따로 있었다. ‘노인들의 놀이터’라 불리는 콜라텍이 그곳. 전국 어딜 가더라도 노년층을 위한 유흥밀집지역이 있다는데 서울은 영등포구 일대가 ‘핫 플레이스’로 손꼽혔다. 도보로 10분 남짓한 거리에 콜라텍만 6~7개가 운영 중인데 영업시작과 동시에 몰려드는 사람들로 날마다 북새통을 이룰 정도다.
지난 2일 오후 영등포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콜라텍을 직접 찾아가보니 소문과 다를 바 없었다. 콜라텍이 지상 9층에 자리해 엘리베이터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부분 혼자거나 동성끼리 입장하는 모습이었는데 남녀 불문하고 모두가 화려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높은 하이힐에 딱 붙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할머니부터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에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올백’으로 차려입은 할아버지까지 절로 시선이 집중됐다.
영등포에 위치한 콜라텍은 어르신들 발길로 날마다 북새통을 이뤘다. 일요신문DB
기자도 슬쩍 어르신들 틈에 끼여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9층에 내리자마자 엄청난 크기의 음악과 입장료를 받는 곳이 보였다. 바로 뒤엔 ‘슬리퍼, 반바지, 운동화 출입금지’라는 인상적인 경고가 붙어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발목 위로 올라오는 양말과 긴 바지, 불편해 보이는 구두를 신는 이유가 있었던 것. 잠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어르신들의 전용공간에 난데없는 젊은 여기자의 등장은 너무 눈에 띄었다.
“손녀들아. 여긴 할아버지들 노는 데야.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손수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며 어깨를 떠미는 한 할아버지의 손길에 짧은 구경을 마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찾은 콜라텍은 연령층이 확실히 나눠져 있었다. 작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콜라텍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한 곳은 50대 이상 60대 초반까지, 반대편은 60대 중후반부터 70대 전용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에도 벅차 보이는 어르신들이 연신 들락거렸는데 이곳 역시 기자는 출입할 수 없었다.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건 ‘입장료 1000원’ ‘부킹 90%’ 광고와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었다.
콜라텍 밖에서 만난 70대 할아버지는 “주 3~4회 정도 혼자 온다. 안에 막걸리, 소주, 맥주 등 주종 가릴 것 없이 다 팔아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스트레스를 푼다. 여기서 술 사주면서 할머니들에게 말을 걸고 함께 춤을 춘다. 그러다 마음 맞으면 데이트도 나오고. 여기만 오면 아주 신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혼자 혹은 동성끼리 입장했던 어르신들 대부분이 나올 땐 제각기 짝을 지어 나왔다. 서로가 허리를 감싸고 진한 스킨십을 나누며 나오는 커플부터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듯 손가락만 잡아다 뗐다 하는 커플까지 다양했다. 그렇게 콜라텍을 나와 향하는 목적지는 숙박업소. 식당이나 커피숍으로 가는 커플도 있었지만 기자가 만난 7쌍의 커플 중 5쌍이 호텔이나 여관으로 들어갔다.
노인 커플이 많이 찾는다는 한 숙박업소 관계자는 “부부끼리는 올 이유가 없지 않느냐. 낮에는 어르신들이 많고 밤에는 젊은 사람들이 온다. 낮엔 2만 원에 대실을 하면 4시간 동안 쉴 수 있으니 그렇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처음 오거나 부끄러움이 많은 분들은 골목 끝에 있는 허름한 숙박업소에 간다. 매번 파트너를 바꿔 오시는 분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당당하게 숙박업소를 들어갔던 커플도 인터뷰를 위해 접근만 하면 심하게 경계하며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다. 70대로 보이는 한 커플은 말을 걸자 대뜸 “우린 부부야. 그런 거 아니야”라며 손사래를 치며 지하보도로 급하게 사라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인근 상인은 “저 사람들 불륜이야. 저렇게 손잡고 모텔이나 여관으로 가. 콜라텍에서 만나기도 하고 노인정에서 만나 데이트 오는 사람들도 있지”라며 “가끔 아내나 남편이 찾아와서 가게 앞에서 머리 뜯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야. 자식들이 부모 잡으러 오는 경우도 봤어. 그 난리를 치고 이혼한 뒤에 또 오는 사람도 있다”며 혀를 끌끌 찼다.
상인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진한 화장을 한 60대 여성이 “애인 없으면 애인 해주려고? 만나면 되지. 무슨 상관이야”라며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며 지나쳐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남편 들어올 시간인데 들어가. 이번엔 걸리면 안 된다”며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봐도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너무도 당당한 태도에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민망해했다. 이제 노인들의 사랑도 숨기고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당당히 드러내고 자랑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급증하는 ‘황혼재혼’ 자녀들 반대? 되레 등 떠민다 지긋지긋한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내 삶을 살고 싶다며 이혼을 택한 65세 이상 고령자들 가운데 절반이 재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총 이혼건수 11만 4316건 중 남성 고령자는 4863건으로 전체의 4.2%, 여성 고령자는 1995건으로 전체의 1.7%를 차지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고령자의 재혼건수는 남성은 2449건, 여성은 912건으로 이혼건수의 약 절반에 해당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 사별 후 재혼을 택한 경우는 559건에 불과했지만 이혼 후 재혼한 사례는 1890건을 기록했다. 여성도 사별 후 재혼은 187건이었으나 이혼 후 재혼은 725건으로 약 4배 수치였다. 이러한 결과는 황혼재혼에 대한 당사자들의 인식이 유연해진 덕분으로 풀이된다. 2006년 ‘재혼은 절대 안 된다’던 고령자가 24.2%,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37%로 조사된 것에 비해 2012년에는 재혼에 대해 25.6%가 긍정적, 49.3%가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재혼전문 업체 관계자는 “황혼이혼 당사자들 대부분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겉으로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이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결핍감이 있다. 또한 걸림돌이 됐던 자녀들이 오히려 재혼을 주선하는 등 주변시선도 많이 변화돼 황혼재혼 사례가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
배신의 끝 ‘황혼이혼’ “한 푼도 안줘” 외도하고도 뻔뻔 잠깐의 불장난이 끝내 황혼이혼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이혼 건수는 11만 5300건으로 그중 혼인지속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28.1%에 달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30년 이상 혼인관계를 지속하다 이혼을 한 부부도 전년 대비 8.4%나 증가해 혼인지속기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장 많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황혼 이혼’이 유행처럼 퍼져나가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나이가 들어도 배우자의 외도로 헤어지는 부부가 적지 않다는 말인데 함께한 시간이 긴만큼 이혼과정도 험난한 경우가 많은 게 특징이다. 어머니의 이혼 소송을 돕고 있는 이 아무개 씨(여·49)는 “아버지께서 평생 교직에 몸담았다가 퇴직하셨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셨지만 재테크를 통해 건물도 몇 개 사고 아파트도 구입해 노후걱정이 없도록 했다. 그런데 퇴직 후 아버지께서 모든 재산을 가져가더니 어머니에겐 약값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 어머니를 장애인이라며 부끄러워서 같이 못 다니겠다는 막말도 했다. 알고 보니 아버지께 20살 연하의 애인이 있어 이혼을 요구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서예를 배우러 문화센터에 다니다 애인을 만났다는데 문제는 이 씨의 어머니에게 재산을 전혀 주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먹었다는 게 이유였다. 이 씨는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탐내지 말라며 경고를 하더라. 이렇게 뒀다간 어머니가 약도 못 먹고 돌아가실 것 같아 자식들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재판까지 애인을 데리고 오는 모습에 기가 찼지만 어쨌든 어머니 노후가 편하도록 충분한 보상을 받고 헤어진다면 더 바라는 건 없다”고 말했다. 한 이혼전문 변호사는 “황혼이혼의 최대 쟁점은 위자료와 재산분할이다. 자식들은 이미 성인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위자료는 수천만 원 수준에서 끝나지만 재산분할은 억대에 달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평생 모은 재산이다 보니 규모가 큰 것인데 서로 협의가 되면 좋지만 어느 한 쪽에서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고집해 법적분쟁으로 번진다. 재판장에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감정싸움을 하는 부부도 여럿 봤다”고 말했다. 간혹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간통죄로 재판에 넘겨지는 노인들도 있다. 지난 2010년 서울중앙지법의 한 재판장에 70세 할아버지 A 씨가 등장했다. A 씨는 자주 찾던 식당에서 알게 된 유부녀 B 씨(49)와 2008년부터 내연관계로 지내며 서울의 한 모텔에서 매달 2~4차례 열정적인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밀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부인의 행동을 수상하게 느낀 B 씨의 남편이 아내의 통화기록을 조회해 A 씨와 불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불륜도 배신감을 느끼기 충분했지만 자신보다 20세 연상인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은 B 씨의 남편은 곧바로 경찰에 고소장까지 제출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B 씨는 수사과정에서 A 씨와의 관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으나 A 씨의 태도는 시종일관 뻔뻔했다. A 씨는 끝내 불륜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간통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B 씨의 자백과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등 검찰이 낸 증거에도 “상대로 지목된 A 씨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B 씨의 자백 외에는 가치 있는 증거가 없다”며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발끈한 검찰은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고 새로운 증거 찾기에 돌입했다. 끈질긴 추적 끝에 검찰은 두 사람이 만난 모텔 인근의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에서 B 씨가 승·하차했다는 교통카드 사용 기록을 찾아냈다. 같은 시각 A 씨는 문제의 모텔 주변에서 여러 차례 휴대전화 통화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완강히 저항하던 A 씨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 앞에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씩을 선고받았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