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 초기 장수천 파문에 연루됐던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이 혹독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안희정 씨. | ||
■ 당시 제기된 의혹들
장수천은 1995년 10월 충북 옥천에 설립된 생수회사다. 이 지역 출신의 사업가 김각로 씨가 93년 첫 삽을 들었고 이후 그는 자금난 타개책으로 매제인 이성면 당시 민주당 구미지구당위원장의 소개를 받아 야당 인사였던 노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노 대통령은 옥천 공장 현지를 직접 방문한 뒤 사업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투자에 참여했고, 96년 말 자신의 비서인 홍경태 씨를 대표로 앉히며 사실상 회사를 인수하게 된다. 이때부터 장수천과 그 관련 회사들에 노 대통령 측근인 최도술 선봉술 안희정 씨 등이 줄줄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회사는 97년 3월 한국리스여신으로부터 18억 5000만 원을 대출받아 공장자동화 설비시스템 등을 설치했다. 이때 보증을 선 사람이 노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 씨, 후원회장 이기명 씨, 고향 선배 오 아무개 씨, 그리고 선 씨 등이다.
하지만 IMF 사태로 사업은 어려움을 겪었고 실질적인 오너였던 노 대통령이 97년 대선과 98년 종로 보궐선거 출마 등으로 사업에 신경을 쓸 수 없게 되자 최측근인 안희정 씨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안 씨는 생수공장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 생수판매회사 ‘오아시스워터’를 99년 7월 설립하고 대표로 취임했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졌다. 이 회사 설립을 위한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안 씨는 고려대 동문 사업가들을 찾아다녔고 99년 6월 대학 선배의 친형인 보성그룹 김호준 당시 회장으로부터 2억 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이 금품 수수가 바로 장수천 파문을 촉발시킨 이른바 ‘나라종금 로비 의혹’의 시발점이 됐다.
나라종금 로비 의혹이란 2조 원대의 공적자금 투입을 유발하고 퇴출된 나라종금의 대주주였던 김 전 회장이 이 회사의 퇴출을 막기 위해 정치권에 거액의 로비자금을 뿌린 의혹을 받는 사건이다. 안 씨가 검찰에서 “김 전 회장으로부터 받은 2억 원은 오아시스워터의 운영자금으로 썼다”고 밝히면서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이 본격적으로 장수천 파문으로 옮겨붙기 시작한 것.
그러나 장수천 공장은 2000년 7월 수해를 입어 사실상 폐업 상태가 됐고 한국리스여신은 39억 9700만 원의 채무 상환을 요구해 왔다. 빚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안 씨는 회사 정리에 들어갔고 담보물이 경매에 나왔다. 결국 장수천 공장과 부지는 대전의 사업가 신남철 씨에게 2억여 원에 낙찰됐고 신 씨는 2001년 8월 워터코리아를 설립했다. 장수천의 첫 번째 후신이다.
여전히 남아 있는 수십억 원의 빚은 2002년 대선전을 뛰는 노 대통령에겐 상당한 부담이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혹인 이기명 씨 용인 땅 위장 매입 의혹 사건이 불거져 나온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경제적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등장한다. 2002년 8월 강 회장은 노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이 씨의 용인 땅을 매입하면서 ‘장수천의 부실로 발생한 한국리스여신의 보증채무 원금과 연체이자는 매수인(강 회장)이 전액 책임 상환한다’는 조건을 붙여 28억 5000만 원에 계약 체결했다.
그리고 2003년 2월까지 강 회장은 약 19억 원을 지불한 뒤에 갑자기 계약을 파기했다. 따라서 이 씨는 계약 파기 위약금 2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17억 원을 강 회장에게 다시 되돌려줘야 함에도 강 회장은 이를 받지 않았다. 19억 원은 이미 한국리스여신에 채무 변제로 들어간 상태였다. 검찰은 “결국 강 회장이 사실상 개인 돈으로 장수천의 빚을 대신 갚아준 것이나 다름없는 위장 매입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불법 정치자금 제공에 해당된다고 결론 내리고 그를 구속기소했다.
한동안 가라앉는 듯했던 장수천 파문이 다시 불거진 것은 2004년 10월 경 불거져 나온 G 출판사의 비자금 조성 의혹 때문이었다. G 출판사의 김 아무개 대표가 작가 홍 아무개 씨로부터 인세를 허위로 지급했다는 고소를 당하면서 불거진 비자금 조성 의혹의 불씨가 장수천으로 옮겨붙었다. 김 대표의 친형인 김남경 씨가 2002년 10월 신 씨의 ‘워터코리아’를 인수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2002년 7월 김 씨가 새로 설립한 ‘J 사’는 장수천의 두 번째 후신이 된다. 공교롭게도 장수천을 차례로 인수한 두 주인공인 신 씨와 김 씨가 모두 대전과 경북 성주에서 각각 정당의 지구당위원장을 지내고 선거전에 나서는 등 정치적 야망을 키우던 인물들이어서 의혹은 더욱 확대됐다.
▲ (왼쪽부터) 최도술 씨와 선봉술 씨. | ||
노무현 정권 초기를 뒤흔들었던 장수천의 운명은 기구했다. 95년 설립된 이후 96년 노 대통령이 실질적 오너로 등장하면서 한껏 유명세를 탔던 장수천은 2001년 8월 인수자인 신남철 씨에 의해 ‘워터코리아’로 한 차례 변신하고 다시 2002년 10월 김남경 씨에 의해 ‘J 사’로 한 차례 더 모습을 바꿨다. 하지만 J 사는 현재 휴업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생수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 씨와 김 씨가 어떤 이유로 노 대통령과 인연 있던 회사를 인수했는지 모르겠지만 노 대통령의 인기 급락으로 J 사 제품 판매에 오히려 악영향을 받았다. 또한 총판 회사들도 쓸데없는 구설에 휘말릴까 ‘장수천의 후신’이라고 하면 슬슬 피하는 눈치였다. 그런 상태에서 지난해 12월 화재사고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문을 닫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나도 이 업계에 오래 몸담았지만 물 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나는 기막힌 일은 처음 본다. 2000년에는 수재가 나서 장수천의 문을 닫게 하더니 이번에는 화재가 나서 또 문 닫을 지경에까지 이르다니 이런 기구한 운명도 없을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장수천의 어두운 그늘은 그 인맥들에게도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모습이다. 우선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안희정 씨는 결국 2003년 12월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노 정권 출범 때 품었던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사실상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1년여 수감된 끝에 2004년 12월 석방됐으나 공직에 나서지 못하고 야인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의 대통령 중임제 개헌과 남북정상회담 추진 등은 안 씨의 작품이라는 추측이 유력하고 전격적인 청와대 비서실 입성 가능성도 거론된 바 있지만 장수천의 ‘오물’을 혼자 다 뒤집어쓴 탓에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전망이다.
‘장수천 쓰나미’는 노 대통령의 오랜 친구와 후배들도 휩쓸고 지나갔다. 최도술 씨는 정권 초기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지냈지만 SK 불법자금 수수 등 장수천 관련 파문으로 구속 수감됐다가 2005년 1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는 출소 후에도 대통령의 엄명으로 부산에만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그가 모 기업의 후원으로 사업에 나설 것이란 소문도 있었으나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상고 동문회의 한 관계자는 “부산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는데 청와대의 강력한 만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때 최 씨가 대통령에게 서운한 감정도 많이 가졌으나 이제는 그냥 체념한 듯 조용히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홍경태 씨는 장수천 파문이 한창일 때 한동안 숨죽이며 지내다가 2004년 9월 청와대 수송담당 행정관으로 조용히 입성했다. 하지만 뒤늦게 이를 확인한 언론은 ‘장수천 인맥 챙기기’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일요신문>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홍 씨 역시 지난해 말경 청와대 행정관을 그만둔 것으로 밝혀졌다. 정확한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앞서의 동문회 관계자는 “얼마 전 홍 씨가 ‘경기도 N 골프장에 감사로 가게 됐다’며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청와대에서 ‘골프장 감사로 가게 되면 또 쓸데없는 구설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며 강력히 만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홍 씨는 청와대도 그만두고, 가려고 했던 골프장 감사 자리도 못 가고 백수의 딱한 처지가 됐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고향 친구이자 장수천의 대표를 지내기도 한 선봉술 씨는 안 씨 등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장수천 투자 손실금 보상 형태의 금품 수수여서 비교적 혐의가 가벼운 탓에 매번 사면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여전히 사면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부산에서 그냥 놀고 있다. 이제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가끔 최 씨와 만나서 그냥 이런 저런 말동무나 하고 있다”고 씁쓸히 웃었다.
반면 이기명 전 후원회장과 강금원 회장은 현재 국민참여연대를 주도하며 명계남 씨와 함께 노 대통령을 측면 지원하는 ‘야인 3인방’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강 회장이 충주에서 운영하는 S 골프장은 노 대통령 측근인사들이 함께 라운딩을 즐기는 회동 장소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상고 동문회의 한 관계자는 “S 골프장에 가면 노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많이 눈에 띄고, 강 회장이 가끔씩 나와서 한턱 쓰기도 한다”고 전했다.
장수천을 인수하면서 ‘노 대통령의 숨겨진 측근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받았던 신 씨와 김 씨에 대한 의혹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는 분위기다.
신 씨는 2003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중앙대의원이 됐고, 2004년 6월 대전 동구청장 재보궐 선거 때 열린우리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대전에서 개인사업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이 회사를 인수한 이후 계속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12월 화재 등으로 인해 휴업 신고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J 사’의 실질적 오너로 지목받아온 동생 김 대표는 2005년 검찰 수사에서 비자금 조성에 따른 횡령 혐의가 입증이 안 돼 무혐의 처리됐다. 당시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장수천 의혹과 관련해서 김 씨 비자금의 용처에 대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는지 상당기간 수사했으나 그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장수천의 산증인 격인 김각로 씨는 22일 서울 세운상가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보다시피 고교 동문 사무실에 나와 이렇게 그냥 소일하고 있다. 아래층 후배가 가게를 잠시 봐달라고 해서 봐줬더니 담배 한 갑 주더라”라고 씁쓸히 웃으며 기자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는 최근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독백조로 말했다.
“장수천 간판을 내 손으로 올리고 또 직접 내 손으로 내렸다. 별것도 아닌 장수천 파문이 왜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물론이고 최 씨, 홍 씨 등 주변 사람들도 장수천 말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며 도망간다. 난 졸지에 노 대통령을 장수천으로 끌어들인 죄인 아닌 죄인이 됐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