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1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는 김승연 회장. | ||
이 같은 사실은 김 회장이 구치소 수감 도중 지난 7월 12일부터 2주간 수원 아주대병원에 입원했던 당시 정보 관계자들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일부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정황을 곁들여 상부에 이 사실을 보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간 김 회장은 극심한 우울증과 충동조절장애, 불면증 등의 증세 때문에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만 외부에 알려져 왔다. 하지만 보복폭행 사건의 여파로 인해 김 회장이 ‘단순 기억 장애 증세’ 등을 보여왔다는 게 일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단순 기억 장애 증세란 쉽게 말해 기억을 제때 효과적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증세. 심리적 요인이 이 증세의 원인일 경우 상당 기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단순 기억 장애라는 증상 자체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사람이 큰 심리적인 충격을 받으면 다른 심리적인 증상과 함께 나타날 수 있는 일시적인 징후의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일부 전문의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견주어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전락한 현실, 또한 구속 전후로 알려진 건강 상태를 고려한다면 김 회장의 ‘기억 장애’가 단순히 병세 차원을 넘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수원 아주대병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정보 관계자 등에 따르면 서울구치소에서 수감됐던 김 회장은 교정 당국의 배려로 지난 7월 중순 아주대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째 되는 날부터 ‘부분 기억 상실’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입원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수사 당국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심리적 원인에 기인한 일종의 ‘심인성 기억상실증’의 초기 증상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들었다”면서 “김 회장이 입원한 이후 수일 동안 보복 폭행 사건과 관련한 기억 말고도 일상생활의 일부를 기억해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병원 측은 김 회장이 부분적인 기억 상실 증상을 보이자 기억을 방해하는 공황(恐慌) 증상에 효과가 있는 약물을 다른 약물과 병행해 처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김 회장이 ‘기억 장애’ 증세를 보이면서 우울증, 수면장애 등을 호소하자 경찰 등 수사기관 내에서는 심지어 김 회장이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인다는 내용의 보고까지 올라왔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전문의들에 따르면 심인성 기억상실과 치매는 전혀 다른 병증이라고 한다. 치매는 뇌의 기억 장치 자체에 이상이 생기는 질병이다.
▲ 지난 7월 12일 아주대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승연 한화 회장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제공=경기일보 | ||
기억 상실 증세가 어느 정도 선까지 치료됐는지는 파악되지 않지만 의료진은 구속 전 약하게 나타났던 성격 장애, 우울증 증상이 구속으로 인한 쇼크 등으로 악화돼 지속적으로 안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7월 24일 최종 진단 때는 서울구치소 측 관계자가 방문해 병원 측과 이 같은 의견을 교환한 후 법무부에 그 내용을 통보했다고 한다.
기자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김 회장의 주치의였던 아주대병원 신경정신과 정영기 교수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정 교수는 응하지 않았다.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김 회장은 지난 8월 14일 법원의 구속집행정지결정으로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한화 측 관계자는 김 회장의 ‘기억 장애’ 증세에 대해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힘든, 조심스러운 부분이 아닌가 싶다”면서 “어쨌든 회장 본인이 상당한 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심인성 기억상실증은 의학적으로 뇌의 뚜렷한 병변 없이 정신적인 충격에 의하여 기억이 상실되는 증상이다. ‘특정한 기억’이 주로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이 경우 일시적으로 심각한 심리적 고통이나 불안, 수면장애 등까지 동반한다는 게 정신과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아마도 김 회장으로서는 지난 3월 폭행 사건의 현장, 뒤이은 경찰 수사와 법정 구속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기억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한꺼번에 들어내고 싶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혹시 그의 이 불행한 과거를 ‘잊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기억 장애 증세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