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30일 ‘대선 불출마’ 긴급 기자 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정운찬 전 총장. 정치권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다 순식간에 사라졌던 그의 행보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 ||
정 전 총장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작명가를 찾았다고 한다. “이 녀석, 운이 꽉 찬 놈이구먼. 시(時)가 이렇게 좋은데 이름이 뭐 그리 대수라고 식전 걸음을 하셨나?” 작명가는 그에게 ‘운찬’이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이에 흡족해하는 그의 아버지에게 대뜸, “세상에 나올 때부터 운을 가득 차고 나온 놈이라고 했잖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뜻은 구름 ‘운’에 빛날 ‘찬’이지만 책 속에 그 이름을 ‘운이 가득 찬 아이’라고 풀이해 놓은 대목이 재미있다.
하지만 이렇게 ‘운이 가득 찬 아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 전 총장의 유년시절이 가난으로 점철돼 있는 것을 보면 결코 그는 운이 좋은 아이는 아니었다. 등록금이 모자라 힘들게 학교를 다녔고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먹은 기억보다 먼 산만 바라보고 있던 기억이 더 많다고 할 정도다. 자신의 키가 크지 않은 원인 중 하나로 꼽는 것도 어린시절 물지게를 졌던 것 때문이 아닐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대목에서 그의 유년 시절의 가난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비록 가정은 가난했을지언정 그의 학문에 대한 조예는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듯한 대목도 보인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배우는 과목이라서 잔뜩 기대를 품게 했던 영어는 초반부터 그만 나를 웃게 하고 말았다. ‘나는 소년, 너는 소녀(I am a boy, You are a girl.)’라니…이것을 중학생에 적합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그에 비하면 일곱 살 때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배운 한문책은 깊고도 거룩했다.’
중학교 때부터 과외를 가르치며 자신의 학비를 충당하던 정 전 총장은 그렇게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내고 갖은 고생 끝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던 ‘신입생 정운찬’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현재 성공적인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그도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는 ‘쌍권총’으로 모자라 F학점을 무려 4개나 받는 등 학업보다 노는 것에 열중했다고 한다.
정 전 총장은 대학시절에 스승으로 만났던 조순 전 시장의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첫 직장으로 갔던 한국은행도 조 전 시장의 추천을 받아 들어가게 됐고, 한국은행을 그만두고 갑작스럽게 유학길에 오른 것도 역시 조 전 시장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훗날 서울대학교로 돌아와 교수가 된 것 역시 조 전 시장의 권유 때문이었던 것을 보면 그 둘의 인연은 참 깊다. 심지어는 자신의 부인인 최선주 씨와의 결혼도 조 전 시장의 도움이 가장 컸다고 회고하고 있다.
정 전 총장은 대학교 4학년 때 서울미대의 한 여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한국은행을 그만두고 유학길에 오르기 전 그 여학생의 부모에게 결혼 승낙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의 아버지는 이런 정 전 총장의 청혼을 매몰차게 거절해버린다. 그런 그가 도움을 요청한 것은 바로 조순 전 시장. ‘나는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이번에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신 분은 조순 선생님이셨다…선생님은 선주의 부모님을 남산 아래에 있던 중식당 동보성으로 초정하신 뒤 조니 워커 한 병을 손수 들고 사모님과 함께 가셨다.…“정운찬이라는 학생 보시는 것보다 좋은 사람입니다. 학위를 마치고 오면 대학교수 정도는 무난한 인물이니까 현재만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적어도 장래성이 없다는 말씀은 틀린 것이니까요.” 약주가 얼근해진 선주의 아버님은 그 자리에서 결혼은 승낙하셨다.’
▲ 조순 전 시장 | ||
정 전 총장은 이 책에서 자신이 정치를 꿈꾸게 됐던 계기에 대해서도 두 가지 정도의 얘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가 생전에 “정치를 해서 가문을 빛내라”는 조언을 했던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던 스코필드 박사가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말했다는 대목을 볼 때 정치인을 향한 그의 꿈이 상당히 오래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범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다가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정치권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자신의 과거사들이 터무니없이 왜곡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과 장소에 따라 다른 말을 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에서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바꿔야 하는 것이 ‘융통성’이 아닌 ‘연기’처럼 느껴져 괴로웠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불면의 밤을 보내는 등 극심함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에서 그가 당시 받았던 고통을 가늠해볼 수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