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구속영장이 기각돼 귀가하고 있는 신정아 씨(왼쪽)와 지난 27일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들어서는 박문순 관장. 연합뉴스. | ||
앞서 신 씨는 검찰 조사결과 가짜 세금계산서나 허위 장부를 만드는 방식 또는 실제 쓴 돈보다 부풀려 영수증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미술관 후원금 등 2억여 원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자 일부 횡령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신 씨는 곧바로 “이 (빼돌린) 자금을 박 관장에게 상납했으며 그 대가로 오피스텔 보증금 2000만 원과 1300만 원 상당의 목걸이를 받았다”고 주장해 자신의 ‘은인’이나 다름없던 박 관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신 씨는 또 검찰 조사에서 지난 2004년 박 관장의 부탁으로 우리은행 효자동지점에 개인대여금고를 자신의 명의로 개설했다고 털어놓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9월 22일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 이 금고에는 미화 10만 달러와 엔화 1000만 엔 등 2억 원 상당의 외화가 보관돼 있었다.
검찰은 효자동지점 개인대여금고 속의 외화에 대해서는 신 씨의 것이 아니라 박 관장의 돈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와 박 관장은 지난 9월 27일 검찰의 대질신문에서도 이 같은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후 두 사람의 공방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일단 횡령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운영자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미술관 운영자금의 횡령 여부를 떠나 신 씨와 박 관장의 행적 가운데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적지 않다는 게 검찰 주변의 시각이다.
# 뭘 보고 신 씨 중용했나
알려졌다시피 박 관장은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부인으로 미술관의 CEO(최고경영자)다. 그런 박 관장이 당시 채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 씨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이고 이후 미술관 운영의 전권을 맡기게 된 배경부터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 씨가 박 관장과 인연을 맺은 시기는 그의 나이 서른이던 지난 2002년 4월로 알려진다. 2001년 5월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를 그만둔 이후 재기의 기회를 모색하던 신 씨는 이 무렵 성곡미술관 큐레이터로 채용됐다. 그로부터 3년여 만에 신 씨는 박 관장의 지원 아래 ‘넘버 2’ 격인 미술관 학예실장 자리에까지 올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신 씨 역시 관장 전용 휴대전화를 별도로 개설해 사용하는 등 박 관장에게는 ‘충성’을 다하며 각별한 친분을 맺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신 씨가 박 관장의 딸 유학문제까지 일일이 조언할 정도로 박 관장의 가정사에도 깊숙이 개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30대 초반의 젊은 큐레이터인 신 씨가 대체 어떻게 박 관장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으며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었을까.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도 신 씨가 변 전 실장이라는 배경을 적절히 과시하거나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통상적인 관례를 뛰어넘는 기업들의 후원 유치가 가능했던 이유로 신 씨가 ‘부적절한 관계’였던 변 전 실장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변 전 실장이 해당 기업에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신 씨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등으로 재직한 2004∼2006년 대우건설과 산업은행 등 10여 개 기업체로부터 받은 후원금은 9억 7000여만 원에 달한다. 특히 2004년부터 3년 동안 미술관의 연간 전시회 횟수가 10회에서 3회로 줄어들었는데도 정작 기업 후원금은 4배 이상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놀라운 ‘실적’을 올린 신 씨가 ‘커미션’ 개념으로 후원금의 일정액을 자신이 사용하고 박 관장이 사실상 이를 묵인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 성곡 미술관 | ||
박 관장이 신 씨의 명의로 개설한 것으로 알려진 은행 개인대여금고의 존재도 또 다른 의혹거리다. 검찰은 금고 안에 있던 2억여 원의 외화가 박 관장의 돈일 것이라고 볼 뿐 이 돈의 구체적인 성격을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금고가 개설된 시점이 쌍용그룹이 검찰의 공적자금 수사를 받던 2004년이라는 점을 들어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나는 문제의 돈이 당시 김석원 회장 일가의 비자금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 다른 하나는 김 회장의 구명로비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다.
물론 금고 속의 돈이 박 관장의 사적인 자금일 수도 있지만 차명 즉 신 씨의 이름으로 금고를 개설했다는 점에서 의혹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2004년 11월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후 이듬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올 2월 특별사면됐다. 신 씨는 김 회장이 구속됐을 당시 몇몇 정·관계 인사에게 김 회장을 위해 탄원서를 내줄 것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효자동지점 관계자에 따르면 개인대여금고의 경우 명의 개설자가 직접 방문해야 금고를 이용할 수 있으며 금고의 내용물이나 방문 일시 등에 대해 따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명의개설자가 아니라면 금고에 손을 댈 수 없고 언제 어떤 내용물을 출납했는지는 은행 측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단 특별한 경우에만 금고를 개설할 때 대리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따로 계약을 맺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신 씨 명의의 대여금고 계약서에는 박 관장의 이름이 대리인으로 기재돼 있을까. 만약 대여금고가 사실상 박 관장의 것이라면 대체 왜 차명으로 그것도 단지 2년간 ‘미술관장과 큐레이터’로 관계를 맺은 신 씨의 이름을 사용했던 걸까.
# 목걸이 대가성 논란
신 씨와 박 관장이 벌이는 진실게임의 주요 ‘소품’으로 등장한 고가의 목걸이도 여전히 의문을 사는 부분이다. 신 씨는 ‘횡령한 돈의 상납 대가로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박 관장은 ‘후원금 관리를 잘해준 데 대한 감사의 선물’이라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박 관장의 얘기처럼 단지 감사의 표시로 아랫사람에게 1800만 원짜리(신 씨는 1300만 원이라고 주장) 고가의 목걸이를 선물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반면 횡령 자금을 상납한 대가로 고가의 목걸이를 받았다는 신 씨의 주장 역시 검찰에선 그다지 신빙성 있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신 씨가 박 관장이 목걸이와 함께 오피스텔 보증금을 내줬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보증금은 신 씨가 이보다 앞서 직접 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 관장은 대체 왜 신 씨에게 고가의 ‘선물’을 건넸던 것일까. 혹시 세상에 드러내지 못할 다른 곡절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신 씨와 박 관장의 진실게임은 또 다시 수많은 물음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