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는 모습. 왼쪽 큰 인물은 김관진 실장.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전직 외교안보 분야 고위 관료가 던진 질문이다. 청와대와 정부 외교안보라인이 북한과 일본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운 시그널을 내놓고 있다고 일침을 놓은 것이었다. 그는 “외교안보 정책에서는 특히 일관성과 원칙이 중요하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피할 수 있다”며 “지금의 외교안보라인은 과연 컨트롤타워가 있나 싶을 정도로 중구난방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그널의 혼란도 그렇지만, 그것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돌출적 사고’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 무산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관련 혼선, 애기봉 등탑 철거 논란, 독도 입도지원센터 공사 취소 논란 등 잇단 외교안보 분야 ‘사고’의 원인을 컨트롤타워 실종에서 찾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들 사안이 표면적으로는 특정 부처의 잘못과 실수로 비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외교안보 컨트롤타워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게 원인으로 깔려 있다는 얘기다. 이런 지적은 결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자리에 있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을 겨냥한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독도 입도지원센터 공사 취소 논란과 애기봉 등탑 철거 논란은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10월 20일 독도 입도지원센터 건설 사업의 기초공사 입찰 공고를 냈다가 외교부의 강력 반발로 10월 31일 이를 취소하면서 대일 저자세·굴욕 외교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11월 1일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입찰 공고 취소에 따른 후폭풍을 무마하기 위해 ‘입 맞추기’까지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불과 얼마 전 있었던 애기봉 등탑 철거 논란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해병대가 애기봉 등탑을 철거했다는 사실을 청와대와 국방부가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처럼, 해수부가 독도 입도지원센터 공사에 착수했다는 사실 역시 외교부는 입찰 공고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당시부터 ‘칸막이 제거’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면서 부처 간 협업을 강조했지만, 기본적인 정보 공유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애기봉 등탑 철거 과정을 놓고 해병대와 국방부 간에 볼썽사나운 책임 떠넘기기가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외교부와 해수부 간에 보이지 않는 삿대질을 주고받고 있다. 외교부에서는 해수부가 자신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한일 관계의 ‘뜨거운 감자’를 건드리는 사고를 쳤다고 분개해 하고 있다. 반면 해수부는 관련 예산이 편성돼 집행에 들어갔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적지 않은 관련 전문가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두 사안 모두 총리실이나 NSC가 챙겼어야 했다”고 말한다. 총리실은 모든 국정 현안을 관장해야 하는 만큼 비난의 화살은 특히 NSC를 향하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가 없앴던 NSC 상임위원회를 부활시킨 것은 국가안보실장으로 하여금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라는 의미였는데, 김 실장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얘기다.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독도 입도지원센터 관련 예산이 반영된 정부 예산안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까지 제출되기까지 전혀 걸러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컨트롤타워가 왜 있는지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책임을 묻는다면 해수부나 외교부가 아니라 총리나 국가안보실장에게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다른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월 독도 입도지원센터 관련 예산안이 삭감된 게 논란이 되면서 당시 외교부가 해명 보도자료까지 냈었다”면서 “그런데도 해수부가 입찰 공고를 낼 때까지 손 놓고 있었다면 당연히 외교부와 NSC가 역할을 방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기봉 등탑 철거로 인해 정부가 대북 선전전을 중단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로 독도 입도지원센터 건설 취소도 외교적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1월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이번 사태를 ‘한국 외교의 대참사’라고 규정하고 비판을 쏟아낸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전직 외교부 관계자는 “지난 2008년부터 이어져 온 정부의 독도 정책이 위기에 처했다는 게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해악”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정부의 독도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독도 영유권 강화 프로젝트를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008년 8월 정부가 독도영토관리대책단이라는 이름으로 12개 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추진한 일련의 사업을 말한다. 당시 일본 외무성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책자를 발간하고 중학교 사회교과 학습지도요령에서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자 정부가 이전에 없던 강경책을 꺼내든 것이었다.
하지만 전·현직 외교안보라인 관료들은 독도 영유권 강화 프로젝트를 ‘칼집 속의 칼’에 비유하고 있다. 2008년 프로젝트 발표 후 정부가 6년 동안 실질적으로 아무런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게 일종의 대일 외교상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한 인사는 독도 입도지원센터 건설 논란에 대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칼을 뽑지 않아 왔는데, 해수부가 부처 간 조율도 없이 함부로 칼을 뽑아든 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서둘러 입찰 공고를 취소시켰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쪽 카드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독도 입도지원센터 건설 중단은 일본 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의 발언은 우리 정부에겐 최악의 비아냥인 셈.
결국 독도 입도지원센터 건설 논란은 정홍원 총리의 사과로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가게 됐지만, 청와대 인사들조차 김관진 실장과 NSC의 제자리 찾기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표하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 무산 과정에서 보였던 것처럼 안보 전문가인 김 실장이 외교, 통일 문제에 대해선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로서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