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측부터) 박근혜 전대표,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박지만 EG그룹 회장 | ||
두 남매 간의 싸움이 확대된 것은 지난 2008년 11월 이후부터다. 당시 <일요신문>은 육영재단의 운영권이 박지만 EG그룹 회장에게 넘어갔음을 단독으로 보도했다(863호 참조). 이 보도 이후 다른 언론들도 육영재단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양상은 당시와는 사뭇 다르다. 당시 기자를 만났던 박근령 전 이사장은 이 문제가 남매간의 갈등으로 비쳐지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하면서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박 전 이사장은 최근 싸움의 최전선으로 나섰다. 지난 6일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동생 지만 씨가 육영재단 폭력강탈의 배후에 있다”고 직격타를 날렸다. 두 남매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순간이었다.
이제 시선은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 쏠리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육영재단 문제가 차기 대선 가도에서 박 전 대표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상대 진영으로부터 집안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느냐는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의 제3라운드를 취재했다.
박근령 전 이사장과 박지만 EG 회장 간의 갈등의 골은 이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패였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박 전 이사장과 박 회장은 원래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육영수 여사의 죽음 이후 ‘퍼스트레이디’로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반면, 두 사람은 항상 음지에 있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두 사람에게는 박 전 대표와는 나눌 수 없는 일종의 공감대 같은 것이 형성됐다. 이 때문에 박 회장의 측근들이 용역을 동원해 자신을 재단에서 몰아낼 때에도 박 전 이사장은 “제발 동생과의 싸움으로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자에게 신신당부했었다.
박 전 이사장은 “동생은 현재 측근들에 의해 눈과 귀가 막혀 있다”며 “측근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한 박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박 회장 측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한 측근은 “우리는 육영재단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 육영재단 전경 임준선 기자 | ||
이에 대해 박 전 이사장의 측근은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자료 없이 의구심만을 가지고 동생을 (이번 사건과 연관지어) 공격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라며 “지난 1월 3일 이후 용역들이 재단을 두 번째로 강탈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동생이 연관됐음을 확신하게 돼 기자회견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 전 이사장은 지금까지 나온 자료들을 갖고 재단 운영과 관련해 정당한 심판을 받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을 뿐 동생에게 책임을 둘러씌우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박 전 이사장과의 바람과는 달리 이번 사태는 두 사람이 매듭짓기는 어렵다는 게 제3자들의 시각이다. 그만큼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누구도 양보할 의사가 없다는 것. 결국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열혈 지지자들은 육영재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향후 대선 레이스에서 이 문제가 박 전 대표의 결정적 약점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경쟁자들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면 박 전 대표로서는 마땅히 대응할 논리도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친이계의 한 인사는 두 사람의 다툼을 ‘집안싸움’이라고 정의하며 정치권에서 이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내비쳤다.
따라서 박 전 대표 측으로서는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자칫 남매간의 갈등이 커져 유혈사태라도 벌어진다면 추후 갈등이 봉합되더라도 박 전 대표의 대선가도에서 두고두고 공격받을 소재가 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박 전 대표의 지지자들은 현재 자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관련 홈페이지에는 육영재단과 관련한 자료 및 의견들이 100여 건이나 올라왔다. 여기에 올라온 글들은 온라인을 통해 여러 군데로 퍼지고 있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다음은 박 전 대표의 열성지지자들이 모인, 일종의 ‘사이버 친위대’라 할 수 있는 GH포럼에 올라와 있는 한 네티즌 글 중의 일부다. “GH포럼에서 처음 시작된 육영재단 논쟁이 이제는 박근혜의 지지카페인 팬클럽까지도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회원조직 2000여 명이 넘고 봉사활동의 이미지가 살아있는 ‘박애단’이라는 팬클럽에서까지 공식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타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이제는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하거나 누군가 나서서 중재하지 않으면 육영재단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악화될 것이다.”
이런 지지자들의 뜻과는 달리 박 전 대표는 공식적으로는 한 발 물러서 있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비서 부실장을 지냈던 한나라당 김선동 의원은 지난달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박 전 대표는 이번 문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며 보좌진에게도 철저하게 함구할 것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지지자들은 “박 전 대표의 보좌진들이 육영재단 문제를 정확히 보고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지자 A 씨는 “박근혜 전 대표가 운영하는 미니홈피에 육영재단과 관련된 글을 수십 차례 올렸지만 모두 삭제당했다”며 “오히려 일부 보좌진들이 외곽에서 박 전 대표를 가장 열성적으로 도왔던 나를 매도하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누가 육영재단을 운영하건 관심이 없다. 다만 이 문제를 박 전 대표가 빨리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박 전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박 전 대표가 육영재단 문제에 개입해야 하느냐 아니냐를 놓고 미묘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싸움을 움직이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정치적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지지자인 B 씨는 “육영재단과 관련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남매간의 갈등을 부추겨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을 짜려는 세력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 세력들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육영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해 있으며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기간에도 이 문제를 서둘러 처리하려고 공작을 펼쳤다”고 말했다.
박근혜 지지자들의 말대로 이번 사건은 앞으로도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사이에서는 이번 문제와 관련해 정치인들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양측 갈등 과정을 보면 일부 정치인이 모종의 역할을 한 부분도 있었다(<일요신문> 869호 참조). 뇌관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박 전 대표는 떠안고 있는 셈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