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리’ 박항서는 경남 산청 생초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신고에 입학한 후 축구가 좋아 방향을 튼 케이스. 당시 이경이 감독(현 서울시 축구협회 전무이사)을 찾아가 테스트를 받고 싶다며 졸라댄 끝에 테스트 기회를 얻었으나 결정적인 ‘똥볼’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터져 축구부 입성은 물거품 됐었다. 하지만 얼마 후 이 감독과 친구 사이였던 매형의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돼 정식 등록 선수가 아닌 훈련생으로 축구부에 들어갔다.
이듬해 박항서는 다시 1학년으로 선수 등록을 하고 그 해 전국고교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영등포공고와 연장 후반전까지 0 대 0의 숨막히는 접전 상황에서 그토록 ‘삑사리’를 연발하던 왼발에 볼이 제대로 걸린 것. 그후 자신감을 찾은 박항서는 한양대로 진학해 국가대표 화랑과 충무에까지 발탁됐다.
박항서보다 1년 선배인 안종복과 이상철도 늦바람을 탔던 장본인들. 속초중학교 때 핸드볼을 했던 안종복도 시험을 보고 경신고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기본기가 잘 돼 있고 운동 신경이 뛰어나 1학년 때부터 주전 수비수와 주장을 맡았다. 머리가 비상해 전술 소화 능력이 뛰어 났고 학교 성적 또한 늘 상위권에 들곤 했다. 특히 ‘달필’이라 소문이 날 정도로 볼펜으로 쓰는 한자 글씨는 선생님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상철은 경신중학교 재학중 서울시 학년별 축구대회에서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한 기량을 선보이면서 축구부에 스카우트됐다. 경신고에 진학해서도 무시무시한 스피드를 자랑하며 최전방 자리를 굳게 지켰다.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합숙 때도 책을 즐겨보는 엘리트 선수였다고 한다. 고3 졸업반 당시 장원직 고려대 감독(현 축구협회 경기분과위원장)도 이러한 면에 반해 끈질긴 구애 작전을 펼쳤다는 후문이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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