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성적 안 좋으면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지도 몰라요. 부상에서 회복한 선배들이 올라오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정도입니다.”
애틀랜타의 ‘러키보이’ 봉중근(23)은 생애 첫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하는 현재의 심정을 ‘기쁨 반, 걱정 반’이라고 표현했다. 개막전 25명 로스터에 이름이 올려졌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설레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날고 기는 투수들과 치열한 자리 다툼을 벌이다보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난 11일(한국시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원정경기에서 3-3 연장 상황에서 구원 등판했다가 12회 끝내기 솔로홈런을 맞고 올 시즌 첫 패배를 당한 다음날 이뤄진 인터뷰였지만 봉중근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솔직하며 당당한 신세대의 주장을 보여주는 ‘쿨 가이’였다.
“메이저리그에서 생활하며 가장 좋은 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에요. 마이너리그에선 메이저로 올라가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하루하루가 초조하고 불안했거든요. 지금은 정말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어 좋아요.”
지난 5월 중순께 마이너리그에서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호출을 해서 봉중근은 오랜만에 더블A팀에 갔었다. 그때 그는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함과 안락함을 느꼈다고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제가 뛰었던 곳이잖아요. 지금의 제 처지를 비교해보니까 기분이 묘해지기도 하고 동료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남미 출신의 선수들이랑 유난히 친했거든요. 그들 입장에선 제가 얼마나 부럽겠어요. 그래도 정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더라고요. 훈련 끝나고 저녁식사를 같이했는데 기분 좋게 밥값을 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애틀랜타의 선발 투수로 활약 중인 호라시오 라미레스는 봉중근과 6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함께 생활하며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 사이. 언어의 한계 때문에 감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교감을 나눌 수는 없었지만 영어를 통해 남자들의 끈끈한 정을 확인한 유일한 선수라고 한다.
“98년 플로리다 루키리그를 시작으로 미국 생활의 문을 열었어요. 막상 미국엘 와보니 저란 존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더라고요. 영어도 안되고 친구도 없고 말할 상대가 없어 호텔 벽을 쳐다보며 이야기할 정도였죠.
99년 풀시즌을 뛰기 시작했는데 원정 경기가 있을 땐 10시간에서 1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요.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죠. 숙소도 허름한 모텔이었고.
글쎄, 솔직히 전 4년만 고생하면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는 줄 알았어요. 메이저리그 선배들 만나면 주로 묻는 질문이 ‘마이너에서 얼마나 있어야 메이저로 올라갈 수 있느냐’는 거였죠. 어떤 선수가 7∼8년 걸린다고 얘기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실망을 했는데 정말 그말이 농담은 아니었어요.”
봉중근은 마이너리그 생활 6년 만에 메이저리그로 올라 왔다. 정확히 5년 6개월 만이다. 2002년 4월24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긴 했지만 올 시즌이 메이저리그 루키로 테이프를 끊는 첫 해.
“메이저리그에 오르려면 처음엔 40명 로스터에 들어야 해요. 그 다음엔 덕아웃에 앉을 수 있는 25명 로스터에 올라야 하고. 올 시즌 개막전 때 장내 아나운서가 25명의 선수들 이름을 한 명씩 불렀는데 제 이름이 제일 마지막에 불렸어요. 경기장으로 걸어나가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감격 그 자체였죠. 그 순간을 위해 지난 6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참고 견뎌냈던 거잖아요. 더욱이 개막전 마지막 이닝을 맡게 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봉중근은 비로소 유명한 메이저리거들과 자신이 한배를 탔다는 생각에 목이 멜 정도로 흥분했다고 한다. 비록 어린 말단 선수에 불과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들 만큼 쟁쟁한 타자들을 상대하는 기분은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서 배리 본즈를 상대한 적이 있었어요. 배리 본즈가 타석으로 걸어나오는 모습만 봐도 주눅이 들겠더라고요. 그래서 눈싸움으로 상대를 압도하려고 인상 팍 쓰면서 째려봤죠. 그런데 본즈가 더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선 절 쳐다보더라고요. 순간 오금이 저릴 만큼 긴장이 됐어요. 눈싸움에서 KO 펀치를 맞았던 셈이죠.”
켄 그리피 주니어(신시내티 레즈)와의 맞대결도 봉중근한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제공했다. 켄 그리피 주니어는 봉중근의 어린 시절 우상이자 모델이었기 때문.
그러나 배리 본즈와의 눈싸움에서 진 경험 때문인지 켄 그리피 주니어한테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려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3번 싸워서 ‘2승 1패’를 기록했다. 한 번은 빗맞은 안타였고 그후론 삼진, 내야 땅볼 아웃으로 진루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특이한 봉씨 성 때문에 호칭에 얽힌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선수들이 봉중근을 부를 때는 ‘중봉’ 이나 ‘봉’이 대부분. 처음엔 ‘중근 봉’이라고 부르다가 발음하기 어렵다면서 그들 마음대로 ‘중봉’으로 부르더니 지금은 ‘봉’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는 것.
“메이저리그로 올라온 후 첫 월급 받았을 때가 기억나요. 메이저리그 루키는 똑같이 (연봉) 30만달러를 받거든요. 물론 세금이 40% 이상이 되지만 마이너리그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수입이 늘었어요. 여기선 15일에 한번씩 페이를 받는데 1만3천달러 정도 되더라고요. 더블A에선 15일마다 1천2백달러를 받았거든요. 처음 페이 명세서를 받고서는 그 종이를 보고 또 봤어요. 믿겨지지가 않아서.”
봉중근의 아버지 봉동식씨는 25년째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 일을 그만두고 편히 지내라는 아들의 성화가 대단하지만 아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번 돈을 쓸 수 없다는 게 아버지 봉씨의 철학이다. 이런 아버지의 신념과 사랑을 한없이 고마워하는 봉중근은 메이저리그에서 모은 돈을 모두 부모님께 드리겠다고 말해 기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봉중근한테는 두 살 연상의 여자 친구가 있다. 2년 전 미국으로 여행 온 그녀를 우연히 만나 사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봉중근의 삶의 에너지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이 돼주며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중이다. 아직 결혼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결혼 상대자로 다른 여자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로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한다.
“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제 소원대로 선발투수가 돼 엄청난 유명세를 치른다고 해도 지금처럼 즐겁게 인터뷰에 응하며 평범한 삶을 놓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몇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다고 해도 지금 제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할 것이고 돈의 많고 적음에 의해 제 인생을 저당 잡히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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