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귀국하는 선동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대부분의 코치들은 이런 ‘특별한’ 대우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시즌이 끝나면 오히려 재계약 여부로 더 긴장해야 한다는 프로스포츠계의 ‘보따리 장사’ 코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선동열 코치의 삼성 입단 조건은 2년 계약에 연봉 1억2천만원. 기아와 2년 재계약한 김성한 감독이 올해 받았던 액수와 같을 정도로 파격적인 금액이다. 또한 코치로서는 국내 최초로 입단식을 거행했을 정도로 그 대우는 실로 감독 예우 이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프로야구 코치들이 받는 대접은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성적에 따라 ‘방 빼!’ 소리를 듣는 감독자리를 흔히 파리 목숨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1년 단발계약이 대부분인 코치들의 “그래도 2∼3년 계약하는 감독들은 장수(?)하는 것”이라는 말이 엄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코치들은 매년 구단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이것도 모자라 행여나 사령탑이 바뀌게 되면 코칭 스태프 가운데 절반 정도는 이동을 각오해야 한다.
본격적인 동계훈련을 앞두고 올해도 많은 코치들이 보따리를 싸고 둥지를 바꾸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그나마 자리를 옮기기라도 한다면 다행이다. 이 즈음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통보를 받지 못하면 곧바로 ‘퇴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동열 사단’(선 코치가 감독으로 갈 경우 함께 일할 것으로 알려졌던 코치진) 리스트에 올랐던 정회열 전 한화 코치는 다행히(?) 친정팀인 기아로 유니폼을 갈아입었지만 김평호 전 두산 코치는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상태다. 이순철 LG 코치도 선 코치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NO’라는 사인을 확실히 보내 LG 선수단과 함께 15일 호주 시드니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정회열 코치는 “구단을 옮길 때 그 무거운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서 “감독을 빼고 코치들은 시즌이 끝나면 항상 ‘방 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로 코치들의 심적인 부담을 털어놓았다. 대부분이 1년 계약을 맺어 반복되는 일이지만 코치들의 공급이 수요를 앞서다 보니 구단에서는 전혀 아쉬울 게 없다는 것.
연봉이 4천만원이 조금 넘는 정 코치는 “선수들과 달리 코치들은 연봉협상에서도 두 번 이상 만남을 갖는 것 자체가 무례한 일로 여겨진다”면서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코치들의 현실을 토로했다. 덧붙여 정 코치는 “40대 감독 기수론과 맞물려 향후 1∼2년 안에 코치들에게도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
롯데의 프랜차이즈 투수였던 윤학길 전 한화 코치는 최근 양상문 신임 감독의 요구로 ‘부산 갈매기’로 컴백하게 됐다. 윤 코치는 “한화 유승안 감독의 요청으로 자리를 옮겼었지만 사실 주변에서 아무리 잘해 준다고 해도 외부에서 온 코치는 외면당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서 “계약금 같은 좋은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인맥으로 이동하는 게 코치들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기자에게 오히려 ‘(내) 연봉이 얼마일 것 같냐’고 물어보는 윤 코치의 질문 속에는 ‘코치들의 현실’에 대한 회한이 배어 있는 듯했다. 올해 5천3백만원을 받았던 윤 코치는 “코치들이 호프집을 지나갈 때면 ‘저게 미래의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시즌 중에 보직이 변경되면 구단에 찍힌(?) 걸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한편 아직 재계약이 마무리되지 않은 대부분의 코치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사양했다. 자칫 구단에 불만을 털어놓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평호 전 두산 코치는 “구단측에 물어보라”는 말로 답답한 심정을 대신했고 삼성의 코칭 스태프들은 약속이나 한 듯 “민감한 사안이어서 인터뷰가 곤란하다”는 말로 양해를 구했다.
올해 3년차 코치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킨 김성래 SK 코치는 “직접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은, 별로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로 코치의 정의를 내렸다. 특히 성적이 나쁜 경우에 투수나 타격 코치가 받는 스트레스는 감독 못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코치는 “성적이 부진한 팀에서 코치가 주로 찬밥 신세가 되는 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제일 만만한 사람이 코치이기 때문인 모양”이라며 “감독의 취향에도 잘 따라줘야 하겠지만 그래도 코치도 야구를 30년 이상 한 사람들인데 이런 부분에서 인정을 못 받고 옷을 벗는 경우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기아 2군 감독으로 내정된 유남호 전 삼성 코치는 지난 6월부터 ‘개점휴업’에 들어갔다가 4개월 만에 복귀한 케이스. 김응용 삼성 감독과는 14년 동안 ‘부부’로 불릴 정도로 동고동락한 유 코치였지만 선수단 운영 방식을 두고 의견 충돌을 빚어 결국 결별 수순까지 밟아야 했다.
유 코치는 “코치라는 자리는 감독과 프런트 그리고 선수의 입맛까지 채워줘야 하는 1인3역을 소화해야 가능하다”면서 “예전에 비하면 그나마 대우가 좋아지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코치들의 자리 이동이 심한 것에 대해 “인맥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유 코치는 “1년 단발성 계약은 당장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자극제 정도로 해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