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팀에선 대개 경기 결과에 따라 버스 안 분위기가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경기에 져도 선수들 대부분이 경기장을 나오면서 모두 잊어버리는 스타일이라 버스 안에서도 전과 다름없이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떨고 장난을 치는 등 크게 달라지는 게 없어요.
지금 제 옆에는 (이)영표형이 앉아 있어요. 제가 말도 붙이지 않고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으니까 눈을 감고 있는데 아마 잠깐 졸고 있을 거예요. 저나 영표형도 다른 선수들처럼 ‘왕수다’를 떨고 싶지만 의사소통의 문제로 둘이서만 소곤거리는 형편입니다.
오늘 경기는 비록 친선경기였지만 전기리그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고 몸이 한층 가벼워진 것 같아 다시 한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어요.
저는 후반에 투입되는 바람에 딱 반절만 뛰었지만 이전에 숱하게 지적돼 왔던 불안한 요소들이 자취를 감춰버렸답니다. 봄멜이 제게 넘겨준 패스를 데용에게 크로스해 팀의 세 번째 골을 만들어내면서 3-2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고요.
다 한국에서 잘 쉬고 온 덕분인 것 같아요. 한 살 더 먹어서 어른스러워진 면도 없지 않겠지만 아직 떡국을 먹지 않아 그렇게 달라져 보이진 않아요. 단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보낸 시간들이 굉장히 소중했던 모양이에요.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는데 때마침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축구에 대한 열정과 목표를 새롭게 다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버스 안에는 모두 22명의 선수가 타고 있어요. 정규리그 때는 16명에서 18명이 정원인데 오늘은 친선 경기라 엔트리 숫자가 좀 많아졌네요. 이 버스에 탈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며 네덜란드에 있는 동안 ‘행운의 버스’에 탑승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에인트호벤 유니폼을 입고서도 버스 ‘티켓’을 끊지 못하는 선수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11일부터 터키로 일주일간 전지훈련을 떠나요. 순전 따뜻한 날씨를 찾아가는 거죠. 다음 일기에선 전지훈련지에서 벌어진 재미난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릴게요. 어? 그새 ‘우리 동네’에 도착했네요.
1월9일 에인트호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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