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결혼한 사람이라고 해서 얼굴에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운동복을 입고 피칭 연습을 하는 김선우한테선 새신랑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행복한 보금자리를 꾸미고 알콩달콩 신혼 재미에 푹 빠져 지내는 ‘달콤한 유혹’에서 어느새 벗어나 있는 듯했다. 더운 입김을 쏟아내던 김선우는 결혼이 자신의 야구인생에 중요한 전환기가 될 것이라며 2004년에 대해 남다른 기대를 부풀렸다.
97년 11월 보스턴 레드삭스 싱글 A에서부터 출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마음 속에 ‘천당과 지옥’을 안고 살았다는 김선우는 어느 해외파 선수들보다도 미국 야구 무대에 자신의 족적을 ‘찐하게’ 남기고 싶어하는 듯했다.
개인훈련이 끝난 뒤 후배들한테 타격 연습을 시키던 김선우가 갑자기 ‘축구선수’로 변했다. 러닝을 대신해서 시작한 후배들과의 축구경기에서 스트라이커로 분해 맹렬한 공격 자세를 취하는 폼이 마치 월드컵 대표팀 선수를 연상케 한다.
운동장에 어둠이 깔릴 때까지 축구공을 갖고 놀던 김선우와 인터뷰를 위해 인근 음식점을 찾아가면서 “축구를 꽤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원래 야구보다 축구를 먼저 시작했고 야구선수가 안 됐으면 축구를 했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는 “축구가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가까이서 본 김선우는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여덟 살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동안이었다. 머리도 짧은 데다 미소년 같은 외모는 대학생이라고 주장해도 믿을 만큼 앳된 모습이었다.
지난 12월19일 치른 김선우의 결혼식에는 서재응, 최희섭, 봉중근, 이승엽 등 국내외서 활동하는 내로라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았다.
“형이 야구를 사랑하는 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최희섭의 얘기에선 야구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김선우는 결혼하고 나니까 매일같이 아내 강수연씨(28)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지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며 ‘극비’ 연애스토리를 털어놓는다.
“아내와 만난 지 햇수로 6년인데 한 차례 큰 위기가 있었어요. 사귄 지 1년 만에 성격 차이로 헤어졌다가 메이저리그에 첫 입성했을 때 전화를 걸었는데 아내는 3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절 기다리고 있더군요. 아내가 당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제가 다시 찾았을 때 어색해하지 않도록 헤어스타일이나 모양새에 변화를 주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고. 감동 먹은 전 그 얘기 들으면서 엉엉 울었습니다. 서른두 살까진 절 기다릴 작정이었다고까지 했으니까요.”
6년 전 메이저리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꿈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김선우한테 최고의 시련기는 2003년이었다. 그해 스프링캠프는 물론 시범경기에서도 빼어난 피칭과 두드러진 활약으로 메이저리그 엔트리 진입을 당연시했던 상황. 하지만 시즌 개막 직전 날아온 ‘엔트리 탈락’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한 해를 포기하게 만들 만큼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만으로 스무 살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6년이란 세월이 흘렀어요. 그동안 뭘 했나 하고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버린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고 그 ‘터널’을 빠져나오기도 꽤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올시즌이 기다려져요.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거든요. 멋지게 다시 날고싶어요. 김선우의 가치를 꼭 확인시켜 줄 수 있도록 말이죠.”
95년 보스턴에서 열린 제1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3승을 기록한 김선우는 97년 말 전격적으로 보스턴과 1백만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으며 메이저리그의 꿈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2001년 6월15일 메이저리그행을 처음으로 통보받고 감격했던 것도 잠시, 곧바로 마이너리그행으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오뚝이처럼 일어선 김선우는 결국 2002년 5월5일 메이저리그에서 첫승을 올리며 화려한 비상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해 몬트리올로 트레이드된 후 절치부심 끝에 2003년 엔트리 진입을 노리고 있었는데 다시 마이너리그행을 통보받고 보니 아예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
보스턴 시절 당시 같은 팀 소속이던 이상훈(LG), 조진호(SK)와 함께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자취를 했던 경험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라고 한다.
“모두가 메이저리그 진입을 위해 말 그대로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이었어요. 저 역시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오락가락하며 기쁨과 절망 사이에서 한창 헤매고 있을 때였죠. 마이너에 있다가 메이저로 올라가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요. 실력이 있으면 대우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소외당하거나 뒤처지는 거죠. 많이 당했어요.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지만 그 좌절감은 겪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 지난 7일 모교인 서울 신월중학교에서 개인훈련중 후배들과 축구경기로 마무리하고 있는 김선우. 그는 “야구를 안했으면 축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태윤 기자 | ||
“술을 처음 마신 게 대학 1학년 때였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일부러 마셨어요. 술을 안 마시면 친구들과 깊은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려울 것 같아 노력한 케이스였죠. 술을 자주는 안하는데 일단 들어가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취한 상태에서도 멀쩡한 것처럼 계속 마셔요. 다른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횡설수설하거나 잠을 자는데 전 계속 마시다가 새벽이 되면 정신이 돌아와요. ‘원상회복’이 되는 거죠. 중간에 필름도 끊기는데 아무도 눈치 못 채요. 그렇게 해서 아침 6시까지 마셔봤어요.”
미국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셨을 때가 바로 지난해였다고 한다. 메이저리그행이 불발탄이 된 후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후배 송승준을 파트너 삼아 꼬여만 가는 야구 인생을 한탄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절망하며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답지 않은 처절한 시즌을 보냈다.
“양가 상견례를 통해 결혼 날짜가 잡힌 상태였기 때문에 2003년을 정말 멋지게 장식하고 싶었거든요. 제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하는 모습을 아내한테는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혼식을 연기할 생각도 해봤어요. 그러다 아내가 옆에서 응원해주면 올 시즌을 아주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결국 결혼식을 올렸고 아직도 결혼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 ‘어리버리한’ 신랑이지만 마음은 아주 편해졌어요.”
김선우는 서재응(뉴욕 메츠)과 절친한 친구 사이다. 뉴욕 메츠와의 경기가 예정됐을 때는 며칠 전부터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날 약속을 하는 등 부산(?)을 떨곤 했다. 이런 만남이 외로운 용병 생활의 단조로움을 해갈시키는 중요한 ‘이벤트’가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 재응이를 비롯해 중근이, 희섭이 등을 만나면 정말 반가워요. 다 같이 고생하고 있는 처지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정말 애틋하거든요. 제가 마이너에 있고 다른 선수들이 메이저로 올라갔다고 해서 질투를 하거나 시기를 하진 않아요. 한국선수들끼리 경쟁하려고 낯선 땅에서 부대끼는 건 아니니까요. 아마 제가 마운드에 섰을 때 희섭이가 타석에 들어선다고 해도 정말로 전 희섭이가 잘 치길 바랄 거예요. 저도 최선을 다해서 던질 거니까요.”
김선우는 ‘김선우 주니어’에 대해 남다른 기대를 나타냈다. 원래 아이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결혼하고 보니 하루 빨리 2세가 태어나길 바라는 것으로 ‘궤도’를 수정했다고.
“이젠 저한테 힘든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국 가기 전까지만 해도 대접받으며 운동했다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보니 어렵게 사는 사람들, 고생하는 사람들이 왠지 친숙하게만 느껴지네요.”
김선우한테는 서재응의 화려한 입담이나 최희섭의 진중한 태도와는 또다른 ‘진실’이 숨어 있는 듯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 속에 자신을 폭발시키는 ‘무서운 에너지’의 기운을 느낄 수도 있었다.
생기지도 않은 2세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는 얼굴에선 온갖 시련과 가슴앓이로 점철된 지난 6년간의 야구 인생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얼굴이 올 한 해 동안 계속해서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라는 멘트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데 김선우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했다.
“근데 (해외파 중) 누가 가장 술이 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