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com 팬터지 베이스볼은 박찬호의 올 시즌 성적을 10승12패, 방어율 4.50에 탈삼진 1백40개로 내다봤는데, 개중에 나은 기대치였다. 또한 메이저리그 전문 분석가들이 발간한 <린디스 팬터지 베이스볼>은 박찬호가 8승10패에 방어율 5.29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듯 현지에선 박찬호의 부활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14년째 레인저스를 취재하고 있는 <포트워스 스타 텔레그램>의 T.R. 설리반 기자는 “구단에서는 솔직히 박찬호가 올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예측을 못하고 있다. 혹시라도 잘해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라고 구단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듯 2004년에 재기하지 못하면 박찬호는 ‘사상 최악의 프리에이전트 계약’이라는 오명을 영원히 지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박찬호는 올 시즌 과거의 불 같은 강속구를 되찾으며 보란 듯이 재기할 수 있을까. 몇 가지 변수를 놓고 그 가능성을 미리 짚어봤다.
- 변수1. 부상 회복 정도
지난 2년간의 부진은 부상이 큰 원인이었다. 허벅지 부상과 허리 부상 등이 계속 이어지며, 그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추천한 야밀 클린 박사에게 진단과 치료를 받으면서 박찬호는 허리 통증과 부상 공포에서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남가주대학(USC)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는 박찬호를 만나본 결과 일단 과거 다저스 시절의 다이내믹한 동작이 많이 되살아나 시원한 느낌을 주었고, 심적으로도 상당히 안정된 듯 통증이나 부상의 부담이 없는 거침없는 투구 자세가 나왔다.
투구폼에는 힘과 자신감이 실려 있었고, 투구를 하기 전 러닝과 스트레칭을 하고 캐치볼을 할 때도 확실히 달랐다. 몸 동작이 가볍고, 상당히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아직 예전처럼 몸을 완전히 이용하는 투구폼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훈련 과정이 아주 순조로워 보인다.
박찬호측의 주장대로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됐다면 재기를 향한 50% 이상의 진전은 있다고 봐야 한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인 부상으로 인해 투구폼이 흔들리며 특유의 강속구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클린 박사는 수술이 아닌 운동으로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유명한데, 계속 허리 부상에 시달리던 노장 투수 케빈 브라운을 2003년에 재기시켜 명성을 더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박찬호는 재기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상당히 고뇌하고 있다. ‘5년간 6천5백만달러’라는 엄청난 계약을 맺자마자 2년 연속으로 부진했으니, 세심하고 책임감 강한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찬호의 미국행을 직접 도왔고, 그의 에이전트로 오랫동안 일했던 스티브 김씨는 “찬호가 많이 외로워하고,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면서 “그러나 워낙 성실히 훈련을 해왔고, 부상에서 완쾌됐으니 충분히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쳤다.
그러나 현지 언론이나 팬들, 그리고 팀 메이트들은 그를 보는 시선이 여전히 곱지 못하다. 고액 연봉 선수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당연한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가 자초한 부분도 있다. 박찬호가 언론과 일체 담을 쌓으면서 자신의 의중이나 재기 의욕 등 PR면에서 대외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조차 전혀 외부로 전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저스 시절부터 그를 취재했던 <댈라스 모닝 뉴스>의 베테랑 기자가 ‘도와주고 싶다’며 호의를 보였지만 박찬호는 이를 거절한 바 있다. 박찬호 스스로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다.
정신적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은 155km의 강속구를 되찾는 것만큼이나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 심리적 ‘방향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만 아직은 쉽게 개선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 변수3. 팀내 분위기 변화
최근 들어 팀내에서 박찬호에 대한 기대에 찬 목소리들이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존 하트 레인저스 단장은 얼마 전 <포트워스 스타 텔레그램>과의 인터뷰에서 “현재까지의 (찬호에 대한) 보고는 대단히 좋다”며 모처럼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트 단장은 “찬호가 LA에서 운동을 하고 있으며, 마운드에서도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며 “무엇보다도 지금까지는 몸상태가 아주 건강하다는 것이 희소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찬호가 정신적으로는 올 시즌이 본인에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신체적으로는 실로 오랜만에 아주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시즌을 새로 준비하면서 레인저스는 나름대로 전력을 보강했다. 물론 예상 성적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조 최하위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 기대 섞인 예상들이 나온다. ‘박찬호가 재기하면 팀도 살아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자면 선발 투수진이 문제인데, 박찬호와 재영입한 노장 케니 로저스가 제 몫을 해주고, 신인들이 뒤를 받쳐주면 이변도 가능하다는 낙관론도 나오지만 역시 중심에 박찬호가 있어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 변수4. 험난한 4월 일정
메이저리그 6개조 중 최강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메리칸리그 서부조에 속한 탓에 박찬호의 4월은 잔인하기만 하다. 4월6일 개막전 이래 레인저스는 서부조 라이벌들과만 무려 19연전을 벌이게 된다.
박찬호가 1∼3선발 안에 들어간다면 전년 조 챔피언인 오클랜드 에이스와의 원정경기에 올 시즌 첫 등판을 하게 된다. 박찬호는 오클랜드의 네트워크 콜로세움에서 통산 무승 3패에 방어율 9.15로 고전했다.
그외에도 시애틀 마리너스와 애너하임 에인절스 등 모두 우승 전력의 팀들을 상대로 4월에만 대여섯 경기 연속 등판해야 하는 ‘지옥의 레이스’다. 따라서 4월이 박찬호의 올 시즌을 판가름낼 가능성도 높다.
벅 쇼월터 감독은 “찬호가 시범 경기에서 잘해준다고 해도 정규 시즌 초반 두세 경기에서 반드시 선전을 해야만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전에서 확실하게 돌아왔음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상대들이 너무 벅차다. 그러나 어차피 재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들이므로 4월에 배수의 진을 쳐야 할 입장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 상황은 박찬호에게 우호적이지 못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물론 본인이 예전의 강속구와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다. 모든 부정적인 이야기들이나 대우도 공만 잘 던지고 승리하기 시작하면 모두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돼 있다.
보다 선전하기 위해서는 시즌 초반에 행운도 따라주어야 할 것 같다. 4월을 잘 넘기면 화려한 재기가 가능할 것이며, 올해를 어느 정도 넘기면 오히려 2005년에는 더 큰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