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분 염색한 바람머리에 목걸이, 팔찌, 반지를 착용한 김태영의 패셔너블한 모습. 야생마 같은 모습 뒤에 숨겨진 김태영의 또다른 매력은 아내 표수임씨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폭우로 비행기마저 결항된 지난 21일,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고속도로의 장거리 여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우여곡절 끝에 전남 광양의 드래곤즈 선수들이 단체로 이용한다는 사우나 앞에서 해후한 김태영(32)은 대뜸 레스토랑을 권하며 씨익 미소를 짓는다. 여기자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면 다른 곳으로 정해도 된다고 사양을 해도 굳이 레스토랑을 고집한다.
김태영의 승용차를 뒤따라 간 곳은 하얀색 건물 외양이 안개 낀 주변의 자연 환경과 절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근사한 진짜(?) 레스토랑이었다. 그동안 취중토크의 주요 무대였던 횟집이나 고깃집 등과는 달리 클래식 음악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격조 높은 공간에서 터프한 김태영과 이야기를 나누려다보니 그의 ‘답지 않은’ 매너가 재미있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연신 웃음이 나왔다.
양주보다는 소주가,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어울릴 듯한 남자가 부분 염색한 장발의 헤어스타일에다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을 반짝거리며 패셔너블한 차림새를 하고 스테이크에다 와인과 맥주를 마시는 모습은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김태영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는 정신없는 나날 속에서 지친 심신을 추스르며 제1회 통영컵대회를 경기를 준비중인 김태영과의 ‘레스토랑 토크’를 통해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조금 비켜나 있었던 수비수로서의 삶과 ‘마징가 Z’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강철 체력의 탄생 비결, 그리고 축구인생의 라이벌, 황선홍과의 악연(?) 또는 인연 등에 대한 굵직한 사연들을 들어봤다.
실례인 줄 알면서 지난번 월드컵 때 이탈리아전에서 코뼈가 주저앉는 부상으로 수술을 받은 코의 상태(?)에 대해 먼저 묻게 됐다. 기자의 시선이 김태영의 눈보다는 자꾸 코에 가 닿았기 때문이다. 수술한 코가 맘에 들었냐고 질문하자 김태영은 원래 수술하기 전에도 코는 오뚝했고 보기 괜찮았다는 항변을 늘어놓는다.
“월드컵 끝나고 성형외과에서 무료로 수술해주겠다는 전화가 많이 걸려 왔어요. 제대로 세워주겠다는 거였죠. 그런데 무서워서 못하겠더라고요. 한번 해보니까 그 느낌이 아주 불쾌해요. 이 나이에 더 고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요.”
언뜻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지만, 경기장의 김태영과 이렇게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김태영이 전혀 딴판인 걸 보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인 듯했다.
김태영이 지금처럼 ‘싸움꾼’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했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전까진 순둥이였어요. 숫기도 없었고. 그런데 전라도 출신의 촌놈이 부산으로 전학을 가니까 지역감정 때문인지 괴롭히는 친구들이 생기더라고요. 강한 놈이 되지 않고선 그 판에서 살아남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체력을 키웠죠. 당시 마산공고에 최성용(수원 삼성)이 뛰고 있었는데 당시 성용이가 저한테 ‘마징가 Z’라는 별명을 붙여줬어요. 한마디로 무쇠 팔, 무쇠 다리였으니까. 저랑 부딪히는 선수들은 십중팔구 나가 떨어졌거든요. 그때부터 몸싸움에선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죠.”
김태영은 그런 싸움꾼의 기질은 축구화 끈을 매고 운동장에 들어갔을 때만 발휘된다고 강조한다. 만약 운동장 밖에서도 ‘끼’를 자랑했더라면 지금쯤 아마 ‘큰집’에 가 있었을 것이라고.
딱 한 번 ‘사고’를 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닐 때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놀러갔다가 일반인들과 3:9로 맞붙은 사건이었다. 김태영의 일행이 숫적으론 열세였지만 결과는 상대팀 2명이 눈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이내 싸움에 가담했던 모든 사람들이 파출소로 연행돼 갔다고 한다.
“이거 우리 팬들이 알면 실망할 텐데…. 하여튼 그 일로 인해 부모님이 바닷일 하시며 어렵게 벌어 보내주신 학자금을 모두 갖다 바치고 어머니한테 된통 혼나고, 정말 후유증이 엄청 컸습니다. 어머니가 한 번만 더 그런 일 생기면 호적에서 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그 후론 사고 칠 엄두도 못 냈어요. 정말로 이름을 없애버리실 것 같았거든요.”
외모만으로 ‘견적’을 내봤을 때는 폭탄주 20잔에 소주 대여섯 병 정도는 너끈히 마실 것 같은데 실제 주량이 소주 3~4잔에 양주는 반 병을 넘어서면 치사량이라고 한다. 주량이 약한 걸 주로 노래로 대신하는데 홍명보와 황선홍이 은퇴하기 전 대표팀 선수들이 모이는 자리에선 춤은 주로 유상철과 황선홍이, 노래는 자신이 전담했다며 새로운 에피소드를 밝힌다.
“대표팀 선수들이 모이면 정말 재미있어요. 선후배의 격식 대신 흥겨운 음주문화가 자연스럽게 연출되거든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보통 룸을 이용하는데 그 안에선 상상을 초월한 선수들의 다채로운 재능이 발휘돼요. 그렇게 놀다가도 정작 나갈 시간이 되면 아주 말짱한 척하며 출입문까지 걸어 나가죠.
상상을 해보세요. 홍명보, 황선홍, 안정환, 유상철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우르르 걸어가는데 업소 안에서 놀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떨지를. 그래서 더욱 꼿꼿하게 걷다가도 문 밖으로 나가면 모두들 쓰러져요. ‘돼랑이’(돼지+호랑이를 줄인 말) (이)운재는 말술이고 ‘뺀질이’ (안)정환이도 술에 관한 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베스트 플레이어입니다.”
김태영은 포지션이 수비수이다보니 반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을 맺고 있다며 한숨이다. 주심에 따라 제각각인 판정 기준으로 인해 프로 입문 초기에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처음엔 주심들의 개성 파악이 안돼 경기 때마다 경고를 받았어요.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워낙 거칠게 수비를 했던 습성이 프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던 거죠. 그러다보니 노란색 카드 누적으로 두 경기를 뛰면 반드시 한 경기는 결장하는 사태가 빚어졌어요. 당시 구단 관계자분이 제 아내한테 이렇게 말했대요. ‘남편 좀 제발 자제 시켜달라’고.”
“서로가 몸싸움 심하게 하는 대표적인 선수들이었어요. 대표팀이나 프로팀에서나. 97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차범근 감독 밑에서 훈련할 때 자체 청백전이 벌어진 날에는 서로 적수가 돼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몸싸움을 벌였죠.
한번은 차 감독님이 저와 선홍이형의 플레이를 보시곤 마치 프로팀 챔피언결정전(황선홍은 당시 포항, 김태영은 전남팀 소속)을 치르는 것 같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었어요. 서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었죠.
얼마 전 전남의 전지훈련지인 사이프러스에 영국에 있던 선홍이형이 잠시 건너왔었어요. 그때 제가 ‘형이 은퇴하니까 대표팀에서 잡을 만한 공격수가 없어 재미가 없다’고 말하니까 그렇겠다며 인정을 하더라고요.”
김태영의 축구인생 중 최악의 경기는 어떤 것일까. 예상대로 지난해 아시안컵 예선전 때 맞붙었던 베트남·오만전에서의 패배라고 한다.
“지금까지 축구하면서 가장 회의를 느꼈던 순간이었어요. 당시 오만에서 베트남 선수들과 한 호텔을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경기 전에 베트남 선수들이 우리들을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우리 선수들이 있으면 피해서 안 타고 그럴 정도로 두려워 했었어요. 그런데 경기에서 이기고 나니까 복도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엘리베이터에 우리가 있어도 밀고 들어오며 깔깔대고 웃는 거예요. 정말 축구화를 던져버리고 싶었다니까. 그런데 오만전에서도 그렇게 졌으니. 마치 무슨 약 먹은 기분이더라고요. 귀국해선 휴대폰 꺼놓고 잠적해 버렸죠.”
김태영은 수비에 대한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홍명보가 자꾸 보고 싶어진다고 토로했다. 홍명보의 빈자리는 분명 컸었고 그 빈자리를 메울 만한 선수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서 최진철과 함께 역할을 분담해 나가기엔 한계도 있었고 정신적인 외로움도 컸다는 설명이다.
“제 아들이 축구선수 하겠다고 하면 반드시 공격수를 시킬 겁니다. 수비는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온갖 비난을 다 받는 자리잖아요. 수비수들마다 공통적으로 저 같은 ‘한’이 있을 거예요. 또 공격수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부러움도 있고요.”
팬이 많은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포지션의 한계상 팬이 많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있던 팬들도 결혼과 동시에 모두 떨어져나갔다는 것. 그러다 지난 월드컵을 통해 김태영만의 팬들이 다시 생겨났고 지금은 어느 팬도 부럽지 않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축구인생의 후반전’을 함께 뛰고 있다고 자랑이다.
유난히 해외진출과는 인연이 없었던 김태영은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일본이나 중국에 진출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이장수 현 전남팀 감독이 중국 프로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한국으로 전지훈련차 들어와선 김태영한테 은근한 ‘러브콜’을 보냈다는 재미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설마 감독님이 그땐 되고 지금은 안된다고 하진 않으시겠죠?”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아내 표수임씨 덕분에 ‘촌놈’ 딱지 떼고 대표팀에서 빠지지 않는 ‘옷걸이’ 좋은 선수가 됐다고 말하는 김태영은 레스토랑을 추천한 사람도 아내라며 아내 표씨에 대한 사랑과 감사와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투박한 모양새 이면에는 솜털 같은 부드러움과 자상함이 숨겨져 있는 김태영이었다. 분위기에 취했는지, 아니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인생이야기에 취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맛난 맥주맛에 취했는지, 하여튼 광양의 비 오는 밤은 와이퍼의 흔들림보다 더 심한 떨림을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