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체전에서 보란 듯이 재기한 김동성. 그는 오노에게 진 ‘빚’을 갚은 뒤에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런 그가 우연한 기회를 통해 바람처럼 ‘취중토크’ 자리에 나타났다. 지난 2월20일 막을 내린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500m와 1,000m에서 2관왕에 오르며 자신의 건재함을 당당히 알린 김동성은 ‘멍석 깔아 놓은 말 잔치’에 조금은 부담을 가지면서도 특유의 순진한 미소로 분위기를 다잡아갔다.
운동과 연예계 생활을 고집하는 동안 저절로 비난과 지지의 한가운데서 표류하며 살아온 탓에 세간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었지만 직접 만나본 김동성은 구김살 없는 젊은 청년 그 자체였다.
기자들을 상대로 해명과 이해를 구하는 데 인색했던 그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난달 26일 여의도의 한 중국집에서 마주한 김동성은 운동선수와 방송인, 그리고 인라인스케이트 사업가로 살아가는 자신만의 ‘인생 법칙’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무슨 내용부터 풀어가야 할까. 오전엔 쇼트트랙 선수로, 오후엔 방송과 인라인스케이트 사업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는 김동성한테 어떤 질문으로 다소 어색한 자리를 깔끔하게 시작할 수 있을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쇼트트랙 선수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 사업가로서의 타이틀을 새로 달고 시작하는 인라인스케이트에 대해 묻는 게 순서일 것 같았다. 사실 운동과 연예 활동을 병행한다고 할 때만 해도 ‘두 마리 토끼’ 운운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는데 이번엔 사업가라니.
“알아요. 제가 선택한 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하지만 ‘김동성’이란 이름을 걸고 시작한 사업이라 정말 잘해 보고 싶어요. 사실 엄밀히 따지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스케이트 선수라고 해서 일년 내내 스케이트만 탈 수는 없잖아요. 연예인이라고 해서 매일 방송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엔 제 욕심 때문인데 주위에서 보시는 선입견만 아니라면 전 두 마리 토끼도, 세 마리 토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따라서 인라인스케이트가 전혀 생소하지도, 뜬금없지도 않았던 차에 ‘랜드웨이스포츠’와 손을 잡고 해외 브랜드에 의해 점령당하다시피한 국내 인라인스케이트 시장의 활로 개척을 위해 랜드웨이에서 자체 개발한 ‘동성이표’ 인라인스케이트를 내놓게 된 것이다. 현재 ‘사업가 김동성’의 타이틀은 개발 이사.
“단순히 이름만 빌려준 게 아니에요. 직접 신어보고 타보고 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했고 보완 후 또다시 점검하는 등 제 이름을 내건 만큼 정말 열심히 제작에 참여했어요. 쇼트트랙 선수가 제 인생의 전반기였다면 인라인스케이트 사업은 후반기의 첫 테이프를 끊는 작업입니다. ‘고품질 중저가’ 제품으로서 해외 브랜드 이상 가는 품질과 성능을 자신합니다.”
사업가다운 멘트였다. 숫기 없고 말수 적은 그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제품에 대해 설명하는 걸 들으면서 인라인스케이트에 문외한인 사람조차 자꾸 항공모함 같은 신발에 애착이 가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1년여 만에 유니폼을 입고 공식 무대에 섰던 지난 동계체전 때의 일을 화제로 삼았다. 김동성이 체전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빙상 관계자는 물론 팬들도 ‘과연 될까?’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연예 활동을 하면서 아예 빙판을 떠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체전에서 만난 기자들이 모두 ‘은퇴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전 단 한 번도 은퇴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말이죠. 별의별 얘기가 많았어요. 쇼트트랙에서 퇴출당했느니, 한물 간 선수라느니…. 그런 지적들이 마음의 짐이 되었고 대회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안겨주었죠.
전 결코 이름으로 태극마크를 달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실력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었고 점수가 돼서 뽑히면 대표팀 선수가 되는 것이고 안되면 못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유명세라는 것이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주는 것 없이 어쩜 그리도 요구사항이 많은 건지….”
가장 회한으로 남는 부분이 무릎 수술이다. 98년 나가노올림픽 이후 무릎 연골 이상으로 수술을 받을 상황이 됐는데 빙상연맹에서 외국이 아닌 한국에서 수술받기를 희망하는 바람에 2차, 3차 재수술을 받는 비극이 연출된 것이다.
김동성은 김기훈 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와의 불화설에 대해서도 잘못된 선입견을 강조했다. 즉 지난해 4월 대한빙상연맹 추천 선수로 대표팀에 뽑힌 뒤 형평성 문제로 코칭스태프를 비롯한 빙상계의 반발을 사자 태극마크를 반납한 뒤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던 것.
“당시 무릎이 정말 안 좋았어요. 더 이상 운동을 하면 영영 스케이트를 벗어야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진단서를 첨부해 연맹에 제출했고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태극마크를 반납했는데 마치 그 행동이 김기훈 코치에 대한 항명 쪽으로 비쳤나봐요. 그분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양쪽을 취재하는 기자분들이 오히려 둘 사이를 이상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조금씩 찜찜하긴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만약 그랬다면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현재 김동성은 오는 4월 열리는 올림픽대표팀 선발전에는 출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아직 몸 상태가 60%밖에 회복이 안된 탓에 90% 이상의 컨디션을 회복한 이후 내년쯤에나 선발전 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 이미 쇼트트랙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그가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려는 이유가 뭘까.
“잘하면 본전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정말 그래요. 못하면 절 두 번 죽이는 일이 되겠죠. 솔직히 안톤 오노 때문이에요. 물론 (안)현수가 오노와 싸워 이긴 적은 있지만 모든 국민들이 오노는 김동성이 이겨주길 바란다고 믿어요. 은퇴하기 전에 그걸 이루고 싶어요. 그런 다음 물러날 겁니다.”
잠시 동안 맛보았고 앞으로도 인연을 이어갈 연예계 생활은 어떠했을까.
“제가 방송활동을 한다고 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신 것 같아요. 운동선수가 그것도 숫기가 ‘젬병’인 제가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었어요. 전 여유를 가지고 적응기를 거친다고 생각했는데 시청자나 팬들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조금씩 나아지겠죠. 다소 어눌하고 딱딱하고 어색한 이미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워질 거라고 믿어요.”
김동성은 쇼트트랙만큼 연예계 생활도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특히 말수가 적은 모습으로 인해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기 일쑤였다고. 아는 사람 외에는 직접 다가가서 말을 붙이지도 않았고 대기실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며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탓에 다양한 ‘안주거리’를 양산해내면서 선수 출신의 어정쩡한 연예인 지망생으로 비춰지기만 했다.
“하지만 저란 사람을 아는 분들은 태도가 달라졌어요. 저랑 조금이라도 얘길 나눠보거나 술을 한잔하신 분들은 그때부터 제 팬이 돼서 절 격려해주셨어요. 신동엽, 남희석, 강호동, 강병규 형들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앞으론 많이 달라질 거예요. 이젠 많이 익숙해졌으니까.”
김동성은 가장 아닌 가장이다. 고2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면서 집안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서다보니 운동선수로 만족하고 살기엔 유명세에 비해 실질 소득이 너무 적었다고 한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제가 엄청난 부자인 줄 아세요. 쇼트트랙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따서 연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 연금은 정말 얼마 안돼요. 운동만 해선 가족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요. 그런 절박함이 운동 외적인 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꼭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
김동성은 그렇게 ‘까지지도’ ‘싸가지가 없지도’ 또 ‘대책없이 일만 벌이는’ 철부지도 아니었다. 청년 가장으로서의 고민과 갈등도 무척 깊었고 쇼트트랙에 대한 사랑과 포부도 1인자다웠다. 짬봉밥에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배갈’ 한 잔을 주고받는 짧은 시간 동안 무척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친해진 게 아니라 아마도 그를 제대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김동성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