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범경기를 치른 박찬호의 재기 가능성은 일단 높은 것으로 보인다.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꾸준히 등판하는 데 눈높이를 맞춘다면 부활은 성공할 듯하다. 다만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 ||
평균구속
한때 최고 구속 158km를 자랑하던 박찬호의 패스트볼은 지난 2년간 평균 145km 이하까지 떨어졌고, 최고 구속은 150km를 넘기가 어려웠다. 빼어난 제구력은 아니었지만 불 같은 강속구와 발군의 커브, 그리고 괜찮은 체인지업으로 정상의 투수로 군림하던 박찬호는 허리 부상과 함께 탄탄한 하체를 이용하는 파워 피칭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당연히 상체 위주의 피칭으로 구속이 떨어졌고, 이런 구속의 감소는 상대적으로 변화구의 위력마저 떨어뜨려 타자들에게 여지없이 통타당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두 번의 시범경기 결과 박찬호는 각각 최고 151km와 150km를 각각 기록했는데, 이보다 고무적인 사실은 평균 구속을 145km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물론 예전처럼 위력적인 피칭을 보이기 위해서는 평균 구속이 150km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데, 앞으로 구속이 더 빨라질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
통상 시범경기 초반의 구속이 이 정도라면 정규 시즌에는 구속이 더 빨라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나 박찬호의 경우는 겨울 내내 꾸준한 훈련을 거듭해왔다. 그래서 어쩌면 현재가 최고조의 상태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평균 구속 150km대로 복귀할 가능성은 반반 정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제구력
박찬호는 첫 번째 시범경기였던 7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40개의 투구 중에 25개의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확률 62.4%로 평균치를 기록했지만, 12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는 52개의 투구 중에 37개가 스트라이크로 71.2%까지 끌어올렸다.
볼넷도 첫 경기에서는 1회에 흔들리며 3이닝 동안 2개를 내줬지만, 자이언츠전에서는 4이닝을 던지면서 1개만 허용했다. 아메리칸리그의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알링턴 볼파크에서는 볼넷이 다른 구장에 비해 더욱 치명적이다. 장타가 너무 쉽게 터지기 때문에 주자를 걸어서 내보내면 대량 실점의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
볼넷의 갯수도 줄어들었지만,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좋은 징조다. 평균 구속이 150km대에 이르지 못한다고 해도 마음먹은 대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면 충분히 효과적인 피칭을 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구단분위기
지난 2년간 레인저스 구단의 박찬호에 대한 분위기는 냉랭 그 자체였다. 물론 6천5백만달러라는 거액을 투자해 에이스로 데려온 투수가 계속 부진하니 속상한 것은 당연하지만, 마치 사기라도 당한 듯한 냉소적인 분위기로 일관했다.
그러나 박찬호의 지난 2년간의 부진이 본인의 훈련이 부족하거나 성의가 없어 발생한 일이 아님은 구단에서도 분명히 알고 있다. 톰 힉스 구단주는 스프링 캠프에서 박찬호를 만나자마자 ‘올해의 재기 선수상’을 받아달라고 말하며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벅 쇼월터 감독도 다분히 ‘의도적인 신중함’을 보이고 있지만, 두 경기를 치른 가운데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12일 자이언츠전은 박찬호의 투구 내용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박찬호의 2선발 기용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개막전 선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뉘앙스를 풍기며 박찬호의 부활 쪽에 기대를 거는 애드벌룬을 띄웠다.
그를 마치 ‘내놓은 자식’처럼 취급하던 구단에서 거꾸로 적극적인 신뢰를 보낸다면 심리적으로 박찬호가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팀 전력
타선과 수비가 뒤를 받쳐줘야만 투수가 힘을 내고, 안정된 피칭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 하지만 박찬호의 주변 여건은 그다지 좋지 않다.
레인저스는 올 시즌도 AL 서부조의 최하위를 예약한 상태인데, 팀의 간판 타자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하면서 전력은 더욱 약화됐다. 로드리게스 대신 들어온 알폰소 소리아노도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이기는 하지만 로드리게스의 공백을 메울 정도는 아니다.
팀의 중심 타자들이 행크 블레이락, 마크 타셰이라, 소리아노와 같은 젊은 타자들이라 아직도 배우는 단계에 있다. 노장 브라이언 조단, 브래드 풀머 등 새 얼굴들이 얼마나 역할을 해줄지 모르지만, 후안 곤잘레스, 라파엘 팔메이로, 칼 에버렛 등도 모두 빠져나가 예전 같은 타격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비력 역시 마이클 영이 유격수로 가기는 했지만, 작년에 19개나 실책을 범한 새 2루수 소리아노는 영에 비해 월등히 수비력이 떨어지고, 포수와 중견수 자리도 아직 믿음직스럽지는 못하다. 팀 전력은 박찬호의 재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예상
박찬호는 2차전에 앞서 오른쪽 옆구리 뒤쪽 근육 통증으로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상당히 좋아진 편이다. 그러나 최근 2년간 거의 공백기에 가까운 시기를 보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전같이 15승, 18승씩을 당장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박찬호의 입장에서는 올해는 성적보다는 몸과 마음을 확실하게 다지는 ‘재기의 해’로 삼는 것이 시즌을 임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상없이 35번의 경기를 꾸준히 등판해 시범경기 정도의 능력만 계속 유지한다고 해도 10승 이상은 거둘 수 있다. 올해는 재기의 발판을 만드는 해로 삼고, 팀 전력이 훨씬 강화될 2005년을 노리는 것도 하
나의 방법이다.
지레 시즌을 포기할 필요는 절대 없지만, 무리한 목표로 중압감을 가중시키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이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