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jhlee@ilyo.co.kr | ||
뷰 세례를 받았기 때문.
하지만 그는 ‘취중토크’라는 타이틀에 대해 호기심과 흥미를 표현하며 이내 눈을 빛냈다. 다소 건방지거나 ‘까졌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초반부터 여지없이 무너뜨렸던 김승현은 재치있는 유머와 앞뒤 가리지 않는 솔직함으로 분위기를 차츰 ‘업’시켰다.
정규시즌이 끝나고 이틀 동안 ‘회포’ 푸느라 술 좀 마셨다는 ‘오프 더 레코드’를 틀어대며 녹록지 않은 입담을 과시하던 김승현은 ‘애주’라고 꼽은 소주가 앞에 놓여 있는데도 입술만 적시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플레이오프를 앞둔 긴장감 때문이거나 아니면 전날 무리를 했기 때문이리라.
‘피부가 장난 아닌데’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나이스 가이’ 김승현과의 기분 좋은 데이트를 시작해 본다.
지금까지 만난 농구선수 중 가장 ‘만만해’ 보였다. 순전 김승현의 키 때문이다. 178cm라고 알려져 있지만 옆에 서보니 약간의 오차가 있는 듯했다. 예상보다 작고 왜소한 체격도 놀라웠지만 이런 몸으로(?) 농구계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존경스러웠다.
한때 스캔들로 비칠 정도로 영화배우 김선아와 친누나 이상으로 절친하게 지낸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김승현도 “선아 누나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만큼 가깝게 지내는 사이지만 그 ‘좋아한다’는 의미가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결혼=구속’이라고 생각한다는 김승현은 그 이유에 대해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삶은 사라지고 오로지 가정을 위해 사는 선배들의 생활을 지켜보며 더욱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2003∼2004프로농구 정규시즌에서 4개의 타이틀을 거머쥔 김승현(맨 왼쪽). 나머지는 어린시절 사진. 사진제공=월간점프볼 | ||
결혼하면 아이 때문에 버틴다? 김승현이 한동안 결혼하기 힘든 절대적인 이유다. 결혼하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이상형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개성 만점의 ‘김승현식’ 이상형을 들어보자.
“전 좀 독특하게 생긴 여자가 좋아요. 눈이 부리부리(?)하고 약간 도도하면서도 애교가 많지 않은 여자, 거기에다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상첨화겠죠.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여자라면 숨이 막혀서 못 살 것 같아요. 연예인 중에서요? 김민선씨 타입이 딱 제가 바라는 이상형이에요.”
요즘 김승현이 인터뷰 때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NBA 진출과 관련된 내용이다. 지난 연말부터 소문처럼 나돌던 해외 진출 문제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구단 관계자의 입을 통해 더욱 구체적인 계획들로 기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승현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소문이 확대되는 게 부담스럽기만 하단다.
“1분이든, 5분이든 NBA에서 뛸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하지만 자꾸 주변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면 정신 집중이 안돼요. 마음이 붕 떠다니는 것 같아서. 플레이오프를 앞둔 마당에 개인적인 문제가 부각되는 것도 그렇고…. 물론 팬들이 지적하시는 것처럼 신체조건이 부적합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이라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1부든, 2부든, 하부리그든 무조건 부딪혀 보고 싶어요. 대우도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해서든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 땅을 밟고 싶은 거죠.”
4∼5월쯤이면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한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진 어떤 말도 믿을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김승현은 체력을 키우고 슈팅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걱정되는 게 언어라며 한숨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땡땡이’ 안 치고 영어 수업 착실하게 들을 걸 그랬나봐요.”
얼마 전 동료들과 함께 관람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김승현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만약 농구선수가 안 됐더라면 영화배우를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영화를 본 뒤 강제규 감독을 존경하고 장동건을 좋아하게 됐다는 김승현은 이렇게 푸념한다.
“에이, 그런데 (전) 키도 작고 눈도 찢어지고 다리도 짧고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네요. 장동건씨처럼 근사한 영화배우가 되려면 말이에요.”
하지만 어차피 그 말은 ‘겸손’일 수밖에 없는 듯했다. 협찬 받은 정장에다 전속 디자이너가 손질해준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나타난 김승현의 분위기를 다섯 글자로 표현하면? 바로 ‘쥑이는 얼짱’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김승현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NBA 스타로 앨런 아이버슨(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을 꼽는다. 183cm의 비교적 크지 않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슈팅 가드로서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쳐 보이고 있기 때문.
“제가 농구선수치고 작은 키라는 건 인정해요. 그런데 농구 잘하는 것과 키의 크고 작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키 큰 사람이 하는 농구 스타일과 작은 키의 농구선수가 하는 플레이가 따로 있거든요.”
‘단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법’, 뭐 이런 상투적인 질문을 던지려고 하자 ‘그런 거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농구를 잘한다는 뜻인가? 키도 작고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2001~2002시즌 프로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신인상과 MVP 등 여러 타이틀을 독식한 것은 물론 2003~2004시즌에도 베스트 5와 수비 베스트 5, 계량(기록) 부문에서 어시스트와 스틸 타이틀까지 획득할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했다.
축구를 포기한 이유는 버스 타고 등교하는 게 싫어서였다고 한다. 집과 가까운 학교로 전학간 이후 농구부 코치의 설득에 농구선수가 되었고 결국 지금까지 코트에서 뛰고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김승현은 인천 송도고 1학년 때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농구부 코치한테 끽연 장면을 들킨 후 ‘후폭풍’이 무서워 후배 한 명과 서울의 명동으로 도망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느 선수들처럼 학교 탈출 후 지방으로 도망다닌 케이스와 김승현과는 양상이 좀 달랐다. 하필이면 그 많은 도시 중 서울, 그것도 명동이었을까.
“농구 그만두고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려고 했어요. 음식점의 서빙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죠. 정말 당시엔 처절한 각오로 ‘제2의 인생’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한테 잡히는 바람에 다시 학교로 끌려왔죠. 감독님이 어쩔 수 없이 ‘맴매’를 하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매를 맞으며 정신 차렸던 것 같아요. 농구를 정말 재미있게 해야겠다는 그런 각오가 생기더라고요.”
장난기 가득한 생김새 때문인지 어린 시절 ‘사고뭉치’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하자 김승현은 이것마저 밝히면 이미지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꺼내 놓는다. 전학 간 학교에 여자 농구부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여학생들한테 짓궂은 장난을 많이 했다는 것. 예를 들면 여자애들 엉덩이 때리고 도망가기가 주특기였단다.
프로 입단 후 막내 김승현은 팀의 최고참 선수들과 한방을 쓰게 됐다. 그런 상황에선 당연히 선배가 ‘방장’이고 후배는 ‘따까리’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마련. 지금까지 김승현이 ‘모신’ 선배는 소속팀에선 김도명, 박상관, 그리고 대표팀에선 문경은(인천 전자랜드) 등이었다.
‘따까리’의 수칙 제1조는 어떤 상황에서도 선배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휴대폰으로 통화할 상황이 생기면 김승현은 무조건 화장실로 달려갔다. 선배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건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김승현이 ‘방장’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탁월한 정리정돈 솜씨 때문. 특히 선배의 유니폼이나 세탁한 옷을 개키는 일은 김승현의 솜씨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나오니 김승현에게도 ‘따까리’의 한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도래했다. 드디어 올 시즌부터 ‘방장’으로 등극하게 된 것. 현재 김승현의 ‘따까리’는 후배 오용준이다.
농구계에선 김승현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이 있다. 그중 ‘여자가 많다’는 소문은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부채질해온 부분이기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저 정말 여자 많아요. 여자친구들이 많다니까요. 아는 누나들도 많고. 그런데 진짜는 없어요. 안 믿으시죠? 그래서 그런 소문이 나는 거예요. 왠지 많을 것 같은 데 없다고 하니까 자꾸 이상한 기사를 쓰시는 거죠. 아마도 연예인들과의 친분 때문에 더욱더 그런 소문이 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