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위부터)한화 유승안 감독, 삼성 김응용 감독, (왼쪽아래부터)LG 이순철 감독, 롯데 양상문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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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7일 광주 무등경기장
기아와 현대와의 시범경기가 벌어진 광주 무등경기장. 원정팀인 현대 선수들이 먼저 몸을 푸는 동안 더그아웃에 현대 김재박 감독(50)이 나타나 기자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눴다.
40대 신인 감독들이 대거 등장하는 바람에 김응용 감독(63·삼성)에 이어 졸지에 ‘넘버2’에 오른 소감을 묻자 “승부의 세계에서 나이가 많고 적은 게 무슨 소용 있느냐”며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도 “선후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즌 후 어떤 성적표를 받느냐에 따라 나잇값을 하는지 못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렸다.
김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자율야구’다. 선수한테 많은 부분을 맡기며 신뢰를 보내는 타입. “감독이 선수를 안 믿으면 어떻게 야구하겠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각오를 하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는 게 감독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믿은 선수가 ‘배신을 때리는’ 플레이를 하면? 아예 말을 안한다. 그게 진짜 화난 김 감독의 모습이다.
기아의 김성한 감독은 더그아웃보다는 기자실을 선호한다. 현대전을 앞두고서도 더그아웃 대신 기자실을 찾아 특유의 입담을 선보이며 기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현대 김재박 감독이 기아의 타선을 부러워한다’고 전하자 김 감독 왈, “그렇지가 않은데… 작년에 별 볼일 없었던 심재학에다 다른 팀에서 안 데려간 마해영, 그리고 장성호는 팔꿈치 부상까지 당했고. 그렇게 따지면 손지환이 제일 낫네”라며 농을 치는 식이다.
김 감독이 말하는 자신의 더그아웃 스타일은 생각 외로 얌전하다는 것. “작전을 자주 걸지 않는다. 선수를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게 지난해와는 조금 달라진 부분”이라면서 “나야말로 ‘부드러운 남자’인데 언론에서 자꾸 무섭게만 그린다”고 불만스러워했다.
3월23일 잠실경기장
LG와 기아의 잠실전이 벌어진 지난 23일, LG 감독실에서 이순철 감독을 만났다. 손수 녹차를 타서 내오는 모습에선 승부사의 근성이나 ‘독사’ 등의 이미지는 흔적조차 없었다. 그는 초보 감독으로서의 고충에 대해 감독이 쉬운 직업은 아니라며 시범경기 동안의 더그아웃 체험에 대해 털어 놓았다.
“모든 것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투수 교체 타이밍이나 상대팀과 심리전을 벌일 때나 지명타자를 내세우는 부분 등 감독의 생각이 모든 경기에 반영되다 보니 그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얼마나 많이 참고 기다려줄 줄 아느냐에 따라 올 시즌 성적이 달라질 것이다.”
이 감독은 자신의 이미지가 김성한 감독과 비교되는 데 대해 무척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특히 현역시절 해태의 ‘군기반장’을 도맡으며 확실한 위계질서를 세웠던 장본인이라 ‘카리스마’라는 단어조차도 거북스러워했다.
▲ (왼쪽위부터)현대 김재박 감독, 기아 김성한 감독, (왼쪽아래부터)두산 김경문 감독, SK 조범현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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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와 이리 좋노? 면도했나? 그건 아닌 것 같고, 어제 너무 잘 쳐서 얼굴이 핀 거가?”(롯데는 하루 전날 한화와의 원정 경기에서 홈런 5방을 포함해 무려 15득점을 올렸다)
이성득 PSB 해설위원이 시합을 앞두고 선수 명단을 유심히 보는 양상문 감독에게 던진 인사에 더그아웃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어제는 감 잡았으니 오늘 한번 지켜봐야지예.” 양 감독의 대답에서도 지난해와는 달라진 롯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양 감독은 “사람의 직책이 바뀌었을 때 변화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기 모습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로 ‘신인 감독’으로서의 자신감을 피력했다.
롯데전을 위해 원정 온 두산 김경문 감독의 얼굴은 동안이면서 항상 미소가 담겨 있었다. 시합에 앞서 훈련하는 선수들을 지켜보는 김 감독과 더그아웃으로 장비를 가지러 오는 선수들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가벼운 농담이라도 주고받으며 야구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 점에 대해 김 감독은 “감독이 바뀌어도 야구는 똑같다”고 운을 뗀 뒤 “선수들이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제스처”라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소개했다.
상대팀인 롯데 양 감독과의 경쟁의식에 대해 김 감독은 “다른 팀 감독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은 환경에서 시즌을 시작할 수 있는지가 관심거리”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날 롯데전에서 김 감독이 이끈 두산은 9회 초 대역전극을 펼치는 끈질긴 모습을 보였다.
3월26일 인천 문학구장
SK 조범현 감독은 ‘포커페이스’가 딱 들어맞는 표정 없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시범경기라서 여유가 있을 법하지만 조 감독은 공격 타순을 고민하고 야수들의 컨디션을 직접 확인하느라 무척 바쁜 모습이었다. 조 감독은 “지금 시범경기에서는 어떤 라인업이 최대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궁합을 맞추는 시기”라면서 배필을 찾아주는 아버지 심정에 비유했다.
SK의 더그아웃은 베테랑 이상훈이 마무리로 합류하며 정신적으로 한층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조 감독은 “초반에 선수들이 득점을 어떻게 해 주느냐가 관건”이라면서 ‘집중력 있는 야구’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3월26일 대구경기장
삼성과 1-1로 비긴 뒤 선수들을 모아놓고 쓴소리를 퍼부은 한화 유승안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기다리고 있던 송규수 단장이 악수를 청하자 “비긴 날은 원래 악수 안하는데…”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담배를 피워 문 유 감독은 감독 부임한 지 1년6개월이 됐다면서 “작년에는 앞장서서 선수들을 끌고 갔는데 올해는 뒤에서 밀고 가는 스타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올해 한화 전력이 지난해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에 한발 물러나서 지켜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내용.
“지난해에는 더그아웃에서 요란할 정도로 유난을 떨었다. 아무래도 마음은 급하고 선수들은 안 따라주다보니 말과 행동으로 모든 걸 표현했다. 올해는 좀 조용히 있으려고 한다. 선수들이 도와주리라 믿는다.”
이날 3루 더그아웃에서 경기 후에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있던 김응용 감독은 ‘한국이 싫다’며 미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오고 싶다’고 해서 귀국한 메이저리그 출신 오리어리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자신과의 불화설로까지 비춰진 오리어리가 돌아온다고 해도 결코 반갑지가 않다는 것.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오리어리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을 나열할 정도였다.
“난 걔 건드리지도 않았다. 말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감독이 싫어서 떠났다니…. 그럼 나 말고 미스코리아를 앉혀놔야 하지 않겠어. 험상궂은 내 얼굴 보고 지레 겁먹은 거니까. 오는 놈 말리진 않겠지만 한 번 ‘가출’한 사람은 또 나가게 돼 있다니까.”
더그아웃에서의 김 감독은 역시 이미지가 강했다. 제스처나 언어 등에서 김 감독 특유의 카리스마가 철철 넘쳐흘렀다. 김 감독이 앉는 더그아웃 전용 의자는 다른 더그아웃에선 찾아볼 수 없는 ‘회장님’ 의자였다. 올 시즌 우승을 자신하는 김 감독의 야심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두고 볼 일이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