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승균 전주 KCC 감독. 사진제공=KBL
지난 2월 21일 전주 KCC는 창단 후 최초로 정규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했다. 12연승을 내달린 끝에 이룬 쾌거였다. 무엇보다 올 시즌 코치에서 신임 감독으로 팀을 이끈 추승균 감독이 지도자로 첫 우승을 이뤘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선수 시절 5차례(1997~1998, 1998~1999, 1999~2000, 2008~2009, 2010~2011시즌)나 챔피언에 올랐던 추 감독이지만 사령탑 부임 첫해부터 정규리그 우승을 일군 뒤 “선수 때보다 더 떨리고 감회가 새롭다. 챔피언결정전이 남아 있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추 감독은 코치 신분으로 허재 감독을 보좌해 오다 허 감독이 지난 시즌 막판에 갑자기 사퇴하는 바람에 사령탑에 오른 케이스다. 10년 동안 진하게 밴 허 전 감독의 색깔을 걷어내고 자신의 스타일을 입히기까지 꽤 오랜 노력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추 감독. 무엇보다 의견 제시만이 아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도자 자리가 꽤 무겁게 다가왔다는 얘기도 전한다. 추 감독은 “팬들이 보기엔 불만족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선수들을 끌고 가는 내 입장에선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며 “그동안 감독이 실수한 것은 있었어도, 선수들이 잘못한 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는 말로 ‘형님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줬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은 ‘숙명의 라이벌’ 삼성화재에 밀려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호철 전 감독이 ‘타도 삼성’을 외치며 분전했지만 삼성화재란 커다란 벽 앞에서 현대캐피탈은 매번 쓴맛을 맛봐야만 했다. 그런 배구계 판도를 최태웅 감독이 뒤흔들었다. 먼저 최 감독은 1999년 실업팀 삼성화재에 입단 후 슈퍼리그(V리그 전신)에서 4번, V리그에서 4번 우승을 일구며 김호철-신영철로 이어지는 한국 배구 세터의 계보를 이어갔다. 2010~11시즌을 앞두고 삼성화재가 선수 최태웅을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고, 현대캐피탈이 최태웅을 지명하면서 라이벌 팀으로 이적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 이적이 그의 배구 운명을 바꿔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V리그 사상 최초로 현역 선수가 감독으로 직행한 ‘깜짝 인사’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 사령탑에 오른 최 감독은 팀 색깔로 ‘스피드 배구’를 장착시켰다. 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경기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팀 색깔을 제대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최 감독의 리더십 아래 현대캐피탈은 후반기 18연승의 대질주를 보이며 정규리그를 제패했다. 역대 최초로 데뷔 시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감독으로 꼽히면서 단숨에 명장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최 감독은 정규리그를 치르며 느낀 소회를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그동안 경기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선수들을 다그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경기를 마친 이후에는 내 감정이 개입될까봐 선수들에게 경기에 대한 얘길 일절 꺼내지 않는다. 그 다음날 미팅을 통해 경기 영상을 보며 하나씩 체크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젊은 선수들이다보니 분위기를 많이 타는 편이다.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때도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코트에서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경기장에서 소리치고 화를 내봐야 선수들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감독이라고 무게 잡고 근엄하게 서 있는 것보다 선수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 사진출처=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우승, ‘신의 한 수’가 있었다
추승균 감독은 시즌 전 유니폼에 새겨져 있던 별(우승 상징) 5개를 떼어 달라고 구단에 주문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별 6개를 새롭게 붙이자는 의미였다. 추 감독의 리더십이 돋보인 부분은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전임 감독인 허재 전 감독이 속정이 깊은 대신, 선수들에 대한 감정 표현이 다소 거칠었고, 이로 인해 선수들이 상처받는 걸 옆에서 지켜봤던 그는 팀을 맡은 이후엔 선수들에게 ‘칭찬 릴레이’를 펼쳤다.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법, 야단치는 상황,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고민하고 연구했다. 코치 때 선수들과 가까이 스킨십을 했던 부분도 도움이 됐다. 내가 코트에서 가장 만족하는 순간은 승리가 아니다. 선수들과 통했다는 생각이 들 때다. 그 느낌이 굉장히 짜릿하다. 그래서 내가 기자들과 인터뷰 때마다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전주 KCC는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10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단신 안드레 에밋(1m91cm)을 뽑았고, 시즌 중 에밋과 겹치는 리카르도 포웰을 인천 전자랜드의 센터 허버트 힐과 트레이드하는 모험을 택했다. 이는 결국 우승으로 가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최태웅 감독은 올 시즌 주목받는 어록을 탄생시켰다. 2월 9일 만원 관중 앞에서 열린 OK저축은행과의 3세트 중 수세에 밀리자 작전타임을 불러선 “여기 있는 모든 관중들이 너희를 응원하고 있다. 그 힘을 받아 경기를 한번 뒤집어보자”고 말했고, 이후 드라마처럼 역전승을 거뒀다.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는 선수들을 향해 “실패하는 오늘이 없다면 내일도 오늘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독려했고, 18연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최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선수들이 코트를 놀이터라고 생각하길 바랐다”면서 “그 놀이터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즐기면서 배구를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라고 설명했다.
최 감독은 시즌 내내 ‘스피드 배구’가 잘하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지만, 잘못하면 엄청난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에 시달렸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성적이 안 나온다고, 선수들이 힘들어한다고,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미래’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장신 세터, 젊은 세터로 팀 색깔을 바꾼 부분도 이런 시도를 하지 않으면 3~4년 후에도 바꾸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만의 확실한 색깔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선수들의 고정 관념을 바꾸는 데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선수들은 ‘왜 나쁜 공을 때려야 하느냐’라는 의문을 나타낸다. 이전까진 세터가 안정감 있게 올려준 공을 강하게 때리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고정관념을 바꿔나갔고, 설령 패하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우리 색깔을 갖고 가자고 결심했다.”
#챔프전 우승을 염원하는 두 감독의 ‘동상동몽’
추승균 감독이 이끄는 전주 KCC는 지난 19일부터 고양 오리온스를 상대로 2015-2016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을 치르고 있다. 팀 창단 후 최초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통합우승을 노리는 KCC와 13시즌 만에 다시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오리온스의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초보 감독 추승균과 베테랑 추일승 감독(53)이 붙는 바람에 농구계에선 이번 챔피언결정전을 ‘추의 전쟁’이라고도 표현한다.
추승균 감독은 대전 현대 시절 이상민, 조성원과 함께 97~98 시즌 이후 챔피언 2연패를 이뤘고 KCC에서 챔피언 반지 3개를 더했다. 챔프 반지 5개는 양동근(모비스)과 함께 KBL 최다타이 기록. 이젠 지도자로 남은 다섯 개의 손가락에 챔프 반지를 끼우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18일부터 한양대 선배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42)과 V리그 왕좌를 놓고 승부를 펼치고 있다. 선수 시절 ‘삼성화재 왕조’를 함께했던 두 감독은 창(현대캐피탈)과 방패(디펜딩 챔피언 OK저축은행)의 심정으로 5판 3승제의 챔피언결정전을 치르는 중이다. 일찌감치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한 최 감독은 2주 동안 휴식을 취하며 챔프전을 준비했고, OK저축은행은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후반기에 주춤하며 2위에 그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화재를 2-0으로 꺾고 챔프전에 오르며 기세가 살아났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앞두고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하는 최태웅 감독. 만약 그가 감독 첫 해에 챔프전 우승까지 거머쥔다면 V리그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