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 무렵 프로기사 최정의 당찬 각오였지만 5년이 흘렀어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본인도 기억한다고 말하고는 싱긋 웃는다. 하지만 목표가 변경된 것은 아니다. “물론이지요. 아직 노력하고 있어요.”
말뿐이 아니다. 성과도 내고 있다. 올해 최정은 한국바둑리그 ‘바둑리거’로 뽑혔고 여자바둑리그에서는 소속팀 부광약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 페어바둑최강전에서는 박승화와 짝을 이뤄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8월 23일 기준 47승 14패로 40승 13패의 박정환 9단을 따돌리고 최다승, 최다대국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승률은 77%로 79%의 변상일에 이은 2위.
이쯤 되면 ‘최정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2일 여류 국수전 16강전을 마친 최정 6단과 한국기원 2층 기자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8월 현재 47승 14패로 다승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최정 6단. 이 기세라면 연말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프로바둑의 꽃 최다승상을 받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서능욱 9단과 오유진의 대국을 끝까지 봤다. 유진이가 돌을 거두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우리가 이기려면 10승이 필요한데…. 이창호 사범님도 계시고. 흐흐, 자신 없다.”
―신사팀이 시니어리그를 통해 강해졌다면 숙녀팀은 오히려 여자리그를 치르면서 약화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 어떻게 보는가.
“그것보다 지지옥션배는 절대적으로 부담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자 기사들이 앞서고 있으면 잘 두는데 뒤져 있는 상태에서 나오면 부담감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개인적으로 4~5번째 순서에 박지은 9단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은이 언니도 뒤에 나오는 바람에 실력을 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한국바둑리그 BGF리테일CU팀 소속으로 2승 2패를 거두고 있다. 첫 바둑리그 출전인데 소감이 어떤가.
“2승 2패…. 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최악을 가정하면 4전 전패도 이상하지 않은 실력인데 2승을 했으니 만족스럽기도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3승도 가능했는데 못했으니 아쉽고 그렇다.”
―평소 바둑 공부는 어떻게 하는가.
“한국기원 4층에 마련된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이 전부다. 매주 월~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상비군이 생겨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합 스케줄이 많아 빠지는 경우가 많다. 아쉽다.”
―공부량이 부족하다고 느끼진 않는가.
“아니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집중해서 2~3시간 공부할 수 있으면 만족하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최정 6단은 요즘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클럽에서 PT를 받고 있다고.
“즈잉이(최정은 위즈잉을 이렇게 부른다)가 한 살 어린데 어찌된 일인지 참 부담스런 친구다. 처음 만났을 때 6연패를 당했었는데 그때부터 껄끄러웠다. 이후 4연승을 거둬서 극복했는가 싶었는데 최근 다시 연패 중이다. 하지만 연패 중이어도 내가 실력이 뒤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용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어릴 때 고민이 더 많았다. 얼마나 즈잉이에게 스트레스를 받았느냐면 한번은 국가대표 훈련 중 이창호 9단을 멘토로 모셔서 고민을 상담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이창호 사범님께 제가 이렇게 질문을 던졌었다. ‘사범님, 이상하게 잘 안 되는 상대가 있는데 어떻게 극복하면 좋겠습니까’라고. 옆에서 다른 기사들이 “위즈잉?”이라고 되묻는 바람에 다 들통 날 정도로 즈잉이는 내게 심각한 고민의 대상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질문에 이창호 9단이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하더라. 그때 좀 놀랐다. 난 전성기 이창호 9단에게 그런 고민은 없을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루이나이웨이 9단이 어린 이창호 9단에게 큰 고민 대상이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알아낸 극복 방법? ‘그냥 없다’며 웃으시더라.”
―SG배 페어바둑최강전에서 박승화 7단과 짝을 이뤄 2연패에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솔직히 박승화-최정이 최강 조합처럼 보이진 않는데 의외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페어 체질인 것 같다(웃음). 농담이고 승화 오빠가 배려를 참 잘해준다. 페어는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 100점은 아니어도 80점짜리 함께 꾸준히 두다보면 결국 기회가 온다.”
―박승화 7단이 올해 군대를 간다던데 그럼 내년에 짝을 이뤄보고 싶은 기사가 있는가.
“이세돌 9단. 그의 생각이 궁금하니까 한번 팀을 이뤄보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세돌 9단과 팀을 이룬다면 우승은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9단의 수읽기를 받치기란 정말 어려우니까. 이번에 이세돌-박지은 팀과 대국을 해봤는데 지은이 언니가 도중 무척 난감해하는 장면이 많았다. 그런데 지켜보던 나조차도 정말 어려워서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우승을 욕심낸다면 박정환 9단이다. 이번에 세계 페어대회에서 짝을 이뤘는데 정말 편안했다.”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한국바둑리그와 중국 주최 이민배.”
―바둑을 제외한다면.
“운동. 요즘 다이어트 중이다. 먹는 것을 줄여보려 했는데 그건 정말 내게 맞지 않는 방법인 것 같아 운동으로 바꿨다. 운동은 좋아한다. 헬스클럽에서 PT를 받고 있다. 할 만하다.”
―최정도 입단 5년 차, 이젠 스무 살이 넘었다. 어릴 때 스무 살 자신의 모습을 그려봤을 텐데, 현재 모습, 만족하는가?
“당연히 만족스럽지 않다.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래도 여전히 꿈은 남자 기사들과 겨뤄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현재 국내 랭킹이 50위권 언저리인데 3년 안에 20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