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바둑협회 신상철 회장의 개막식 인사말대로 바둑이 체육으로 노선을 바꾼 이래 처음으로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선을 보였다. 전국체전에 처음으로 입성한 바둑 종목은 남녀 일반부 단체전과 고등부 혼성개인전, 일반부 혼성페어전 등 총 4개의 금메달을 놓고 전국 17개 시·도 대표 170여 명이 참가해 열띤 경합을 벌였다.
4개 종목 금메달리스트들이 한 자리에 섰다. 이들이 전국체전 바둑 첫번째 금메달 주인공이다.
2003년 전라북도 전국체전부터 동호인종목(전시종목)으로 참가한 바둑종목은 2014년 제95회 전국체전에서 시범종목으로 승격됐다. 이후 2015년 1월 27일 열린 대한체육회 제12차 이사회에서 2015년 제4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와 2016년 제97회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의 참가가 결정됐었다.
10월 8일 오후 1시. 충남 예산군 생활체육관. 전국체전에 바둑이 처음 선보이던 날, 체육관에 모인 선수들의 눈빛과 분위기는 전과 달랐다. 운동복 차림의 선수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고 감독, 코치들은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분주히 체육관을 누볐다. 이젠 시범종목이 아니라 정식종목이 된 만큼 선수들의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시범종목으로 치러질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지난 2003년 전시종목으로 입성한 이후 무려 13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바둑은 그렇게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안고 힘차게 첫 발을 내디뎠다.
이틀 간 열전을 펼친 결과 남자 일반부 단체전에서는 경기 팀(김정선, 김정훈, 박지흠, 이상빈)이 결승에서 부산 팀을 꺾고 첫 전국체전 단체전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여자 단체전에서는 충북(김봄, 도은교, 진유림)이 금메달을, 전남(김지은, 김태현, 김희수, 장윤정)이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밖에 일반부 혼성 페어전에서는 서울의 송예슬-진승재 페어가 대망의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또 고등부 혼성 개인전에서는 전남의 이용빈 군이 서울의 김대휘 군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전국체전 바둑종목의 특이한 점이라면 선수들의 연령이 대폭 낮아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각종 아마추어 바둑대회를 이끌었던 50대 이상 시니어 기사들이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성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시도 협회들은 다투어 실력이 뛰어난 주니어 기사들을 전국체전 선수로 선발했고 그 결과 전통의 아마강호 조민수, 박영진, 박성균 등은 선수로 출전하지 못했다.
여자 선수들의 위상이 높아진 점도 주목된다. 이번 체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자 선수들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는데 그 이유는 여자 단체전과 혼성 페어 부문에도 메달이 배정되었기 때문. 여자 단체전과 혼성 페어에는 각각 15개 시도가 참가했으니 여자 선수만 60여 명이 전국체전에 나선 셈. 과거 아마 바둑대회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여자 선수들은 수가 적어 앞으로 시도 간 치열한 선수 쟁탈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충청남도 예산군 생활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체전 바둑종목 대회장 전경. 바둑은 무려 13년의 기다림 끝에 정식종목이 됐다.
그렇다면 바둑의 전국체전 입성은 바둑계에 어떤 효과가 있을까. 이번 대회 경기도 대표로 혼성 페어전에 출전한 하성봉 아마 7단(36)은 전국체전이 아마바둑 역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대회장 전체의 격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180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대부분 선수들의 목표가 프로 입단이었다면 이제는 전국체전 입상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는 게 크다. 만일 수백만 원의 우승상금이 걸린 바둑대회 우승과 전국체전 금메달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이젠 대부분의 선수들이 금메달을 선택할 것이다. 아마 입단과 금메달 중 하나를 고르라 해도 금메달을 택할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국체전 금메달이란 훈장은 다른 종목을 봐도 그렇듯이 그 사람의 인생에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이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전국체전과 소년체전에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일선 학교와 시도 체육회에서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선수 발전 지원금과 격려금도 나온다. 또 학교 바둑부와 시도별 실업팀의 창단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바둑인들의 진로도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세종특별자치시 바둑협회 전무이사 직함으로 전국체전에 모습을 보인 김성룡 9단(42)도 아마바둑의 미래를 밝게 본다. “과거에는 연구생 출신 이무기들의 미래가 입단밖에 없었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입단해도 랭킹 50위 안에 들지 못하면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벌지 못한다. 차라리 아마 쪽에 남아 바둑과 관련된 직종을 구하면서 실업팀 입단 등을 고려하는 게 좋다고 본다. 시도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세종시 같은 경우 인구가 적어 전국체전 금메달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금메달 포상금이 꽤 된다. 최근 몇 년간 세종시 소속으로 금메달을 딴 테니스 선수는 월 200만 원 정도를 매년 경기력 향상금이란 명목으로 지원받은 것으로 안다. 굳이 돈과 연관짓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아마추어에 남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바둑은 처음으로 전국체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지만 전체 점수에 합산되는 종목별 점수는 아직 배정받지 못했다(총 점수로 순위를 정하는 종합 부문 점수는 이번 대회에 한해 임의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또 체육에 어울리는 룰 정비 또한 개선이 시급하다. 바둑의 체육을 향한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