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LPGA 투어 우승 경력이 없는 박성현이 내년 시즌 LPGA 풀시드를 받게 된 배경이 뭘까. 지금까지 한국 선수가 LPGA투어 카드를 획득하는 방법은 퀄리파잉스쿨, LPGA 2부투어, 그리고 초청 선수로 출전한 LPGA투어 대회 우승 등 3가지였다. 그런데 박성현은 올 시즌 7차례 LPGA투어(4개의 메이저대회 포함)에 출전해서 68만 2000달러(LPGA 상금랭킹 22위)의 상금을 벌어들이며 LPGA투어 전 경기 출전권을 획득했다. LPGA투어 비 멤버인 국내 선수가 순전히 상금만으로 미국 무대에 입성하는 건 박성현이 처음이다. 즉 우승 트로피가 없어도 LPGA투어 대회에서 상금만 잘 모은다면 투어 진출의 기회가 온다는 걸 박성현이 입증했다. 참고로 KLPGA 투어 상금랭킹 3위 이내면 LPGA 투어 5대 메이저대회에 모두 출전 가능하다.
박성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LPGA 진출과 관련 질문을 해오는 기자들에게 “아직까진 고민 중”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LPGA 투어에 가면 먼 이동 거리, 음식, 언어 문제 등이 걸리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LPGA 진출을 선언한 박성현. 사진제공=세마스포츠 제공
그러다 지난 10월 28일 박세리를 비롯해 신지애, 최나연, 양희영, 안시현 등 톱 여성 골퍼들을 보유하고 있는 세마스포츠가 박성현과 마케팅 및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는 발표가 나면서 박성현의 미국 진출은 가속도를 내게 됐다. 박성현과 세마스포츠의 만남은 LPGA투어 진출이란 방향을 정하면서 손을 잡을 수 있었고, 11월 7일 박성현은 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진출을 결심한 배경과 향후 계획, 목표 등을 밝혔다.
박성현의 LPGA 진출 선언은 분명 축하와 격려를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일부 골프 전문 기자들은 박성현이 시즌 마지막 대회인 ADT 캡스 챔피언십 출전을 포기하고 미국 진출을 서두르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골프 전문 A 기자는 이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박성현이 세마스포츠랑 계약하기 전까지만 해도 올 시즌 대회는 다 마칠 예정이라고 직접 얘기했었고, 나도 들었다. 그런데 세마와 계약하자마자 LPGA 진출이 가시화됐고 지난주 with YTN대회를 마치자마자 시즌 잔여 대회를 포기하고 미국 진출을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박성현의 미국 진출은 진심으로 축하해 줄 일이다. 그러나 KLPGA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회가 많이 남은 것도 아니고, 이벤트성 대회를 포기하더라도 시즌 최종전에는 출전해서 팬들에게 직접 고별인사를 하는 게 수순 아니었나 싶다. 2015 시즌을 끝으로 KLPGA를 떠났던 전인지하고 비교되는 부분이 많다. 전인지도 당시 어깨 부상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대회 출전을 강행하며 팬들에 대한 예의를 나타냈다. 갈 때 가더라도 좋게 마무리 짓고 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아쉬움이 크다.”
박성현은 지난 11일 개막한 ADT 캡스 챔피언십 출전을 포기하면서 1포인트 부족했던 KLPGA 대상 수상도 무산됐다. KLPGA 대상은 박성현보다 1포인트 앞선 고진영한테 돌아갔다.
또 다른 B 기자도 A 기자와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박성현이 일찍 미국에 들어가서 퀄리파잉스쿨을 준비하는 거라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박성현은 이미 내년 시즌 LPGA 풀시드를 확보한 상태다. 단순히 휴식을 취하면서 미국 진출을 대비하겠다는 이유로 출전을 약속했던 시즌 최종전에 나가지 않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이번에 박성현과 계약을 맺은 세마스포츠의 행보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성현은 지난 2013년 주방가구 전문업체 넵스와 3년간의 후원 계약을 맺었고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된다. 박성현의 LPGA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골프계에선 박성현이 내년 시즌 어느 회사의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쓰게 될지에 대해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국내 무대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린 박성현의 미국 무대 진출은 몸값 상승과 궤를 함께 한다는 것.
앞의 A 기자는 박성현의 스폰서 계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취재한 바에 의하면 넵스가 박성현에게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넵스 자체가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무대에서 활약하게 될 박성현의 몸값을 맞춰주긴 어려울 것이다. 액수 면에서 서로 합의를 보지 못했고 넵스와의 인연은 올해를 끝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번 기자회견에서 세마스포츠의 이성환 대표가 스폰서 구하기가 어렵다는 얘길 꺼냈었다. 국내 정서도 어지럽고 기업들도 이전처럼 거액을 제시하며 선수 스폰서로 나서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당분간 스폰서를 구하기가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B 기자는 박성현이 곧 대기업과의 계약을 발표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박성현은 전인지와 맞먹는 스타플레이어다. 세마스포츠에서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 건 그냥 하는 말일 것이다. 박성현이 세마와 계약을 맺은 데는 스폰서도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매니지먼트사에서 박성현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상황에서 세마가 박성현과 계약을 이끌어냈다. 그 배경에는 대기업을 기반으로 한 스폰서를 제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스폰서 발표는 시간문제다. 박성현은 충분히 상품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동안 선수들을 후원했던 대기업에서 박성현을 놓칠 리 만무하다.”
한편 세마스포츠의 이성환 대표는 박성현과 관련된 소문과 추측들에 대해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이 대표는 먼저 잔여 대회를 포기하고 미국행을 서두르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공식 대회는 ADT 캡스 챔피언십 하나가 남았지만 이벤트 대회까지 포함하면 많은 곳에서 박성현을 원한다. 어디는 출전하고, 어느 대회는 출전 못하게 된다면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관계자들 입장에선 서운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놓고 박성현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고 고민했지만 결론은 그냥 다 안 나가는 게 낫겠다 였다. 어차피 욕은 먹을 수밖에 없다. 대회 관계자들과 방송 관계자들한테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걸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이 대표는 그동안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한 박성현의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라고 말한다. 남은 대회를 포기하고 치료와 체력 회복에 집중하면서 LPGA 투어를 대비하는 게 더 올바른 선택일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 대표는 그래도 박성현은 끝까지 대회 참가를 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박 프로가 참 착하다.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는 걸 알고 몸이 힘들어도 모든 대회에 다 나가겠다는 얘기도 했었다. 그런데 박 프로를 원하는 데가 정말 많았다. 결국 박 프로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의 정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표는 스폰서 계약 관련해서도 솔직한 입장을 나타냈다. “넵스랑은 사실상 계약이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아름다운 이별’이다. 박 프로랑 넵스 회장님이랑 지금도 문자를 주고받을 정도로 관계가 좋다. 항간엔 금액 면에서 이견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무근이다. 넵스가 해외 무대보다는 국내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후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 것이다. 만약 박 프로가 계속 한국에서 뛰었다면 넵스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지원해줬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성현의 스폰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스폰서 협상은 지금 잘 진행되고 있다. 기자회견 때 스폰서 관련 연락이 없다고 말한 건 농담처럼 했던 얘기다. 스폰서 관련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성환 대표는 세마스포츠의 간판선수인 박세리가 박성현의 미국 생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미 캐디와 스윙 코치 등을 소개해줬고 미국에서 거주할 집도 박세리가 살았던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집 근처에 새 거처를 마련했다고 한다. 세마스포츠에선 박세리가 LPGA에 데뷔했을 때처럼 박성현 전단팀을 꾸려 박성현의 미국 생활을 적극 돕는다고 밝혔다. 전담팀에는 캐디, 코치, 영어 교사 및 매니저 등이 포함된다.
오는 1월 바하마에서 열리는 LPGA 개막전을 목표로 동계훈련을 하게 될 박성현은 기자회견을 통해 LPGA 데뷔 해의 목표를 신인왕이라고 못 박았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