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와 전쟁’ 속 시장 자율성 훼손 논란도…참여정부 김용덕 ‘국제화’, 박근혜 정부 임종룡 ‘금융개혁’ 방점
#금통위원에서 금융위원장으로 온 첫 인물
고승범 위원장은 1962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감독정책과장·기획행정실장과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금융정책국장·사무처장·상임위원 등 요직을 거쳤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한은 금통위) 위원도 연임하며 금융·통화 정책 전문가로 거듭났다. 특히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위기관리 능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승범 위원장은 금통위원에서 금융위원장으로 온 첫 인물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2016년부터 한은 금통위원으로 일했고, 지난해 연임됐다. 이런 이유로 금융정책과 통화정책을 이을 수 있다는 전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그는 7월 15일 열린 금통위에서 위원 7명 중 유일하게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고승범 위원장은 치솟고 있는 가계부채 제어와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정책 초점을 맞췄다. 지난 9월 28일 정책금융기관장들과 취임 후 처음 가진 간담회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취약계층 지원 △가계부채와 자산 가격 상승 등 금융 불균형 완화 △코로나19로 훼손된 시장 기능 복원 △금융발전과 경제성장 등 4가지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대출 만기 연장 등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동시에, 가계부채가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총량·질·증가 속도를 엄격히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가계부채 관리를 핵심 과제로 삼은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고승범 위원장은 지난 9월 10일 서울 전국은행연합회에서 5대 금융지주 회장과 첫 간담회를 갖고 철저한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최근 가계부채 증가 수준은 자산시장 과열과 상호 상승 작용을 유발하는 등 이미 그 부작용이 위험 수준에 가까워졌다”며 “기준금리 인상, 연내 미국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가능성 등 여러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가계부채 관리 강화는 필수이자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만만치 않았던 과제…마지막 금융위원장 공과
고승범 위원장이 가계부채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는 것처럼 최근 정부의 마지막 금융위원장도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을 맡은 김용덕 위원장(재임기간 2007년 8월~2008년 3월)은 금융의 국제화와 금융권 경영 자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신흥시장을 선점하는 동시에 금융허브가 되고자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국내 금융시장은 국내외 금융기관들의 경쟁 심화로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인수합병(M&A)이나 자본 확충, 영업 규제 완화 등을 통한 금융회사의 대형화, 업무 다각화, 해외 진출 지원에 무게를 뒀다.
이명박 정부 말기 재임한 김석동 금융위원장(2011년 1월~2013년 2월)은 당시 유럽발 경제위기가 전세계로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에 대비하는 데에 주력했다. 외환 건전성 확보와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 등 다각적인 조치를 취했다. ‘대책반장’ 수식어가 달릴 만큼 대규모 구조조정 등 위기 관리에 역량을 집중했다. 한국형 헤지펀드 육성 내용을 뼈대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재임기간 내 통과시키지 못한 점, 론스타가 보유 중이던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편법으로 승인해줬다는 비판을 받는 점은 오점으로 남아있다.
박근혜 정부 마무리를 책임진 임종룡 위원장(2015년 3월~2017년 7월)은 박근혜 정부의 4대개혁(공공·교육·노동·금융) 중 하나인 금융개혁에 매진했다. 한국거래소 개편, ISA 도입, 핀테크 도입,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등이 그 예다.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란 계좌 하나로 예금, 주식,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금융상품을 골라 투자할 수 있고 5년간 가입 유지한 경우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을 말한다. 성과연봉제 등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에도 주력했는데, 보신주의 문화가 팽배했던 금융권의 해묵은 관행을 개선했다는 평가와 동시에 노사 갈등을 야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단순 총량 규제, 가계부채 더 악화시킨다?
전임자들과 달리 고승범 현 금융위원장이 유독 가계부채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실제 현재 5대 금융지주 가계대출은 국내 금융권 가계대출 총액의 약 4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그러나 고 위원장이 추진하는 총량 규제 방식은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에 매우 중요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렇지만 최근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총량 자체를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형태로 정책을 펼치면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가계부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수요자들에게는 소득과 신용도에 따라 대출이 나갈 수 있도록 하고, 대출이 어려운 취약계층은 재정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고승범 위원장이 가계부채 문제를 지나치게 과장하면서 현 정부 정책의 근본적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훼손된 금융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기관이 당국 전략에 맞게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 수는 있어도 금융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을 불러내는 등 금융당국의 의제를 따르도록 압박하는 모습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현 정부가 부동산 시장과 부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을 명확하게 짚고, 보다 총체적인 경제 상황을 진단하는 방식으로 시야를 넓혀 가계부채를 어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금융당국이 권력에 종속돼 금융시장에 개입하며 자율성을 훼손했다. 자율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금융사에 대한 자율성, 금융시장의 불공정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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