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산을 깎고 바다를 메워 아파트를 세우고 길을 닦았다. 산속에서 서식지를 잃고 도로에서 생을 마감하는 동물들. 문명의 이기는 인간과 자연의 삶을 그렇게 갈라놓았다.
문명의 이기를 앞세운 인간과의 영역 다툼에서 자연은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가 현재 서 있는 이곳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강원, 경북, 충북의 삼 도에 걸쳐 있는 어래산 아래 소백산과 태백산을 가르는 계곡에 자리한 '늡다리'는 문명이 침범하지 못하는 땅. 이곳에 단 한 채의 집이 있다.
계곡 입구 외부인 출입금지구역에서부터 집까지가 자그마치 10리(4km) 길. 오롯이 두 다리로 걸어야만 당도할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 늡다리에 사는 사람은 오직 한 명 김필봉(58) 씨다.
필봉 씨는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는 이곳을 '꿈꾸는 유배지'라 칭한다. 이곳에 들어온 뒤로 필봉 씨의 수상한 동거가 시작됐다.
밭에 있는 작물을 서리하는 노루와 멧돼지, 뒷산에 발자국만 남기고 사라지는 신출귀몰 산양, 몰래 벌통의 꿀을 훔쳐 먹는 담비, 산에서 떨어진 밤으로 동면 준비를 하는 다람쥐, 필봉 씨와 송이버섯 쟁탈전을 벌이는 청설모, 계곡에 전용 화장실을 만들어놓은 수달, 15년 전 필봉 씨가 목숨을 구해준 계기로 인연을 맺은 구렁이 능순이와 능돌이까지.
적적한 산속에 홀로 사는 필봉 씨는 때로는 식량 경쟁을 벌이고 때로는 먹을 것을 나누며 이웃에 사는 야생동물들과 동거하고 있다.
청청 지역인 늡다리에는 수많은 멸종위기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내리계곡에는 대표적인 환경지표종인 꼬리치레도롱뇽의 집단서식지가 있는가 하면 설악산과 오대산, 월악산을 중심으로 서식한다고 알려진 1급 멸종위기종 산양도 목격되고 있다.
야생동물들의 천국이던 늡다리에 25년 전 발을 들인 필봉 씨는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시멘트 대신 흙으로 집을 짓고 전기는 태양광 충전을 이용해 자연이 허락하는 날만 감사한 마음으로 쓴다. 자연에서 각종 생활 쓰레기며 음식물 쓰레기는 모아두었다가 아랫마을까지 갖고 가서 버리고 화장실 용변은 재를 섞어 묵혔다가 밭 거름으로 돌려준다.
산짐승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마당. 노루가 기껏 심어놓은 참외 모종을 뿌리째 뽑아먹고 가고 담비가 꿀통을 자빠뜨려 놓기 일쑤지만 필봉 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야생동물들이 필봉 씨 마당을 침범한 게 아니라 야생동물들의 앞마당을 자신이 침범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 수많은 야생동식물처럼 인류도 이 넓은 자연을 잠시 빌려 쓰는 세입자에 불과하다는 필봉 씨.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야생동물들과 공존하는 삶을 선택한 필봉 씨의 수상한 동거를 담았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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