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밴드, 감시·검열 피해 우연 가장한 즉흥 공연…‘성밍쯔빙’ ‘얼리필링’ 등 중국 체제 노골적 비판
낮에는 대학에서 전산정보학을 가르치는 장 씨(38)는 밤이 되면 백팔십도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펑크밴드 ‘니코틴’의 프런트맨으로 활동하는 그는 중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인 ‘우한교도소’의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마치 영혼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듯 열정을 내뿜는다. 그에게 펑크 음악은 일상의 좌절감을 해소시키는 창구다. 야윈 어깨에 전자 기타를 둘러메고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흔들며 음악을 연주하면 해방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 ‘니코틴’ 밴드의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청중들 역시 같은 감정을 느낀다.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펑크 밴드 클럽에 하필 ‘교도소’라는 이름 붙여진 데는 반어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이곳은 점점 더 억압과 통제가 심해지고 있는 중국에서 마지막 남은 몇 안 되는 ‘자유의 보루’로 간주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거리에서 버스킹을 할 때에도 미리 문화여유부에 노래를 신고하고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또한 곳곳에서 숨어 활동하는 취미활동 감시단은 체제를 비난하거나 반정부를 외치는 문화예술인들을 스파이 앱을 통해 신고하고 있으며, 반항적인 가사를 담은 음악은 체제 전복 행위로 간주돼 금지된다.
사정이 이러니 중국의 펑크 뮤지션들은 다른 나라의 펑크 뮤지션들과는 전혀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혹시 전화가 도청되고 있나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행여 공연 금지 명령을 받을까, 아니면 징역형을 선고 받을까 늘 전전긍긍하고 있다.
펑크 밴드와 같은 저항 정신을 담은 그룹들이 공업도시 우한에서 유행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 내에서 우한은 ‘저항’과 ‘반란’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도시다. 1911년 쑨원이 이끈 혁명파가 일으킨 우창 봉기가 일어난 곳이 바로 우한이었다. 이 혁명은 순식간에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1개월 이내에 거의 모든 성에서 유사한 봉기가 일어났다. 결국 이로 인해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이 일어났으며, 그 후 중국인들 사이에서 우한은 중국 혁명의 요람으로 널리 알려졌다.
공산당의 숙적인 국민당의 중심지로 발전했던 우한이 중국에서 가장 공산당 색깔이 옅은 지역인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배경 때문에 우한에서 활동하는 펑크 밴드들은 오래 전부터 늘 가난, 자유,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을 노래해왔다.
사실 펑크 음악이 중국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80년대 경제 개혁이 이뤄진 후에야 영국의 조지 마이클이나 전자음악의 선구자인 프랑스의 장-미셸 야레와 같은 서방세계 스타들이 베이징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9년에는 천안문 광장에서 피비린내 나는 학생 시위가 일어나는 동안 조선족 출신의 로커인 추이젠(최건)이 부른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라는 노래가 학생들 사이에서 해방 운동의 찬가가 됐다. 당시 이 노래는 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이유로 반정부 시위대 사이에서 애창곡으로 불렸다. 추이젠은 당시 이 노래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현재까지 중국 록의 대부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혁명의 움직임은 거기까지였다. 인민해방군의 탱크에 시위대들이 진압당한 후, 베이징에서는 더 이상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희미하게나마 저항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곳은 베이징이 아니었다. 베이징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우한이었다.
우한에서 저항 정신을 담은 펑크 음악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몇몇 틀에 얽매이지 않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펑크 음악은 마약, 술, 경찰 폭력 그리고 점차 증가하는 사회적 압박에 대해 노래하면서 저항의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우한의 펑크 뮤지션들은 비교적 기득권 세대인 베이징의 중산층 로커들과는 달리 민감한 정치 문제를 다루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가령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펑크 밴드인 성밍쯔빙(生命之饼·SMZB)이 그렇다. 지난 20년 동안 다른 밴드들이 규제와 검열로 인해 해체됐는데도 불구하고 SMZB는 명맥을 이어왔다. 당국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담긴 이들의 노래는 중국에서는 금지됐지만, 아직도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찾아 들을 수 있다. 이들이 부른 노래들은 일반 시민들이 언급하면 몇 년 징역형을 선고받을 만한 주제들이 대부분이었다.
1996년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SMZB 밴드를 결성했던 우웨이(47)는 “나는 항상 전화기 두 대를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심카드가 없는 스마트폰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 중 여섯 시간만 켜져 있는 오래된 노키아 벽돌폰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검열과 규제가 심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얼마나 심하기에 그럴까. SMZB의 대표적인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마오의 대기근’의 경우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 노래는 중국 역사상 가장 큰 비극으로 여겨지지만 중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입 밖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는 마오쩌둥 시절의 3년 대기근을 비판하는 곡이다. 1950년대 말 중국에서 발생한 대기근은 유례없는 최악의 흉년으로 기록돼 있다. 이를 노래한 가사 중에는 “붉은 태양은 수천 구의 시체 위를 비추고” “사람들은 지도자의 이미지를 숭배하고, 어린 아이들의 인육을 먹지”라는 구절도 있다.
‘행복한 정치범 수용소’라는 제목의 또 다른 곡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일어난 문화혁명을 다루고 있다. 이 곡의 가사 역시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다”라는 식으로 당국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들은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부터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10년여 전부터 체제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은 수감되기 시작했고, 대다수 NGO와 시민단체들은 해산됐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누구도 감히 중앙 정부를 비난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서 시대를 비판하는 청년 문화가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30대 초반인 SMZB의 막내 멤버인 투더우는 “확실히 예전보다는 펑크 뮤지션들이 많이 줄었다. 우한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는 주로 심각한 문제보다는 표면적인 문제들만 다루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이발소를 운영하는 그는 밤이 되면 ‘우한교도소’에서 밴드 연주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더 이상 감시와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당국이 ‘우한교도소’의 사장을 소위 말하는 ‘티타임’에 초대하는 횟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타임'이란 다시 말해 심문을 말한다. 최근 있었던 마지막 심문은 다섯 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그 이후로 ‘우한교도소’는 더 이상 공연을 열 수 없게 됐다.
이에 밴드들은 다른 해결방법을 찾아냈다. 정식으로 공연을 하는 대신 ‘우연히’ 함께 클럽에 모인 사람들이 재미삼아 연주를 하는 식으로 ‘즉흥적인’ 공연을 하고 있다. 우연을 가장한 공연인 셈이다.
최근 발매한 SMZB의 새 앨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디 이스트’는 이전의 저항 노래보다 내용 면에서는 훨씬 덜 노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당국은 이 가운데 네 곡을 금지했다. 다분히 체제 비판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중국 내에서는 앨범 커버를 제거한 채 판매할 것을 명령했다. 쓰러진 마오쩌둥 동상이 담긴 사진이 문제였다.
우한의 젊은 세대들은 “최후의 안식처는 역시 음악”이라고 말한다. 새롭게 결성된 인디 밴드인 ‘얼리 필링’ 멤버들 역시 그렇다. 순진한 얼굴을 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연주하는 멜로디는 몽환적이다. 예전의 펑크 록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선배들의 음악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사실 '얼리 필링'은 어떻게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결성된 밴드다. 키보드 연주자는 원래 일본 유학을 계획하고 있었고, 보컬은 미국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으며, 기타리스트는 석사 과정을 밟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한에 주저앉게 된 이들은 대신 열정을 담아 밴드를 결성했다.
기타리스트인 완케는 “팬데믹 초기에 전화 심리치료상담사로 일했는데 매일 응급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다음 날 연락이 끊겼다. 도시 반대편 끝에 있는 격리시설로 이송됐거나, 아예 행방이 묘연해졌다”라며 충격적이었던 시간을 회상했다.
궁극적으로는 기자가 꿈이었던 완케는 이를 포기하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중국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음악과 예술은 그나마 아직은 자유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포쿠스’는 "이런 자유마저도 근래 들어 점차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음악은 청춘들이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곳인 듯하다"라고 전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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