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43명만 달성한 대기록…이번 시즌 득점왕 가능성도 남겨둬
#새로운 역사, 단일 시즌 빅리그 20골
단일 시즌 리그 20골은 '개척자' 차범근조차 이르지 못한 기록이다. 그의 개인 최고 기록은 1985-1986시즌의 17골이다.
차범근 이후 지속된 유럽 리그 도전사에서도 손흥민의 기록은 독보적이다. 프리미어리그 땅을 최초로 밟았던 박지성의 최다골 기록은 5골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전 PSV 에인트호번에서는 7골을 기록한 바 있다. 박지성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 장기간 활약했던 기성용의 커리어 하이 기록은 8골이다.
손흥민과 유사한 공격 포지션에서도 20골에는 미치지 못했다. 설기현은 유럽 첫 진출 무대였던 벨기에에서 12골을 넣은 경험이 있다. 프랑스에서 족적을 남긴 박주영과 현재의 황의조도 최다골 기록이 12골이다.
앞서 2003년 호주 공격수 마크 비두카가 20골을 넣은 바 있다. 하지만 당시 호주는 아시아축구연맹 소속이 아닌 오세아니아 소속이었다. 호주는 2006년부터 아시아로 편입했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이란의 사다르 아즈문, 메디 타레미, 알리레자 자한바크시 등이 각각 러시아, 포르투갈, 네덜란드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들 중 타레미는 이번 시즌, 자한바크시는 2018년 한 시즌 20골을 넣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득점 기록은 손흥민의 기록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다. 뛰는 무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손흥민이 활약 중인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는 물론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앙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현재 유럽축구연맹(UEFA)이 밝힌 유럽 리그 랭킹은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 순이다. 러시아는 오스트리아, 스코틀랜드에 이어 10위에 올라있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득점왕 등극 가능성도 남겨두고 있다. 현 득점선두 모하메드 살라를 단 2골 차로 따라잡았다. 살라가 최근 4경기 연속 골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도 손흥민에게는 긍정적이다.
#전설적인 선수들 골기록 넘어서
잉글랜드 1부리그가 '프리미어리그'라는 이름으로 개편된 1992년 이후 한 시즌 리그 20골 고지를 밟은 선수는 단 43명이다. 이들은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골(260골)에 빛나는 앨런 시어러(잉글랜드)를 비롯해 세르히오 아구에로(아르헨티나), 티에리 앙리(프랑스), 루드 반 니스텔루이(네덜란드) 등 화려한 면면을 자랑한다.
이번 시즌에만 20골을 넣으며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통산 90골을 기록하게 됐다. 이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에서 전체 41위의 기록이다. 페르난도 토레스(85골), 에당 아자르(85골), 데니스 베르캄프(87골) 등 전설적인 선수들의 골기록을 이미 넘어섰다.
프리미어리그 내 외국인 선수로 범위를 좁히면 순위는 더욱 올라간다. 비두카(92골), 올레 군나르 솔샤르(노르웨이, 91골)에 이은 20위다. 104골의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 크리스티아노 호날두(포르투갈)마저 다음 시즌이면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
손흥민의 골 기록이 더욱 가치가 높은 이유는 단 229경기 만에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그간 229경기에 나서 1만 5909분을 소화했다. 177분당 1골을 기록한 셈이다. 이는 같은 포지션에서 리그 최고 자리를 놓고 다투는 사디오 마네(세네갈, 187분당 1골)는 물론 전설적인 공격수 웨인 루니(잉글랜드, 183분당 1골)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완벽한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건
주로 중앙 공격수 포지션에서 많은 득점이 나왔던 과거와 달리 현대 축구의 전술 변화로 측면 자원의 득점도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리그 20골은 시대를 막론하고 훌륭한 기록이다. 한 팀이 우승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20골 이상을 넣을 수 있는 공격수'가 꼽히기도 한다.
명실상부 리그 최고 공격수, 월드클래스 선수 반열에 오른 손흥민이지만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우승컵이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에서 20골 이상을 기록한 선수들 43명은 대부분 자신의 커리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아구에로(맨체스터 시티), 드로그바(첼시),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강팀에 소속됐던 이들은 리그는 물론 갖가지 대회에서 무수한 우승컵을 안았다.
43명 중 20명은 리그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다수는 크고 작은 컵대회 우승 경험이 있다. 장기간 리그 우승에 실패했던 리버풀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로비 파울러(잉글랜드)는 리그 트로피만이 없을 뿐 FA컵, UEFA컵 등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리버풀에서 정상급 공격력을 자랑하던 루이스 수아레즈도 잉글랜드 리그컵 우승 경력이 있으며 이후 스페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무수한 트로피를 들었다.
독일 레전드 공격수 위르겐 클린스만이나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네덜란드), 비두카 등은 잉글랜드 외 무대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클린스만은 잉글랜드 입성 이전 이미 독일 대표팀에서 월드컵 챔피언 자리에 올랐고 하셀바잉크, 비두카 등도 중소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했다.
43명의 20골 이상 득점자 중 결국 단 한 번의 우승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단 5명뿐이다. 39명은 최소 리그컵에서라도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을 만끽했다. 불운의 5명은 스탠 콜리모어, 맷 르티시에, 앤디 존슨 그리고 손흥민과 해리 케인이다.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난 스탠 콜리모어와 앤디 존슨은 커리어 내내 노팅엄 포레스트, 사우스햄튼, 크리스털 팰리스 등 비교적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활약해 우승에 실패했다.
토트넘 핫스퍼에서 나란히 뛰고 있는 케인과 손흥민도 이들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둘에게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다. 토트넘은 지난 2019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바 있다.
케인과 손흥민으로선 토트넘 선배들의 발자취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 속에서 토트넘 구단의 전력이 우승권을 위협할 정도로 강한 시기는 길지 않았다. 이에 토트넘에서 20골 이상을 기록했던 레스 퍼디난드, 가레스 베일 역시 우승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들은 각각 1999년과 2008년 리그컵에서 우승에 성공하며 족적을 남겼다. 현재의 토트넘 역시 리그컵이나 FA컵 같은 대회가 현실적 목표가 될 수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선수들이 우승을 위해 이적을 택하기도 했다. 반면 손흥민은 2021년 토트넘과의 계약 연장을 선택했다. 계약서상 2025년 여름까지 토트넘에서 활약하게 됐다. 토트넘은 어느 팀보다도 우승컵이 간절한 구단이다. 이들의 역사에서 2008년 리그컵이 마지막 우승이었다. 손흥민을 보유한 토트넘이 향후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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