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ESG 전도사’로 불리지만…자사주·이사회·친환경 숙제 풀어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을 맡은 후로도 ESG의 중요성을 설파해 ‘ESG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관련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해외 주요 ESG 지표를 엄격히 대입할 경우 SK그룹이 높은 점수를 인정받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SK그룹이 사회책임 경영 목표와 환경 경영 목표를 더 구체화하고, 주주 권리를 보장하는 이사회 경영을 실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SK(주) 주식 넷 중 하나는 자사주
전문가들이 SK의 지배구조가 다소 미흡하다고 평가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자사주다. SK(주)가 보유한 자사주는 1802만 3811주로, 지분율로 환산하면 24.31%에 이른다. 최태원 회장의 SK(주) 지분율(17.50%)보다 높고, 특수관계자를 모두 포함한 지분율(26.36%)과도 엇비슷하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지주회사 중 SK만큼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SK(주)의 자사주가 유독 많은 것은 SK그룹의 복잡했던 지주회사 전환 역사 때문이다. 현재의 SK(주)는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였던 SK그룹의 시스템통합(SI)업체 SK C&C와 SK(주)가 합병하면서 만들어졌다. SK C&C가 당시 보유했던 SK(주) 주식 1494만 주가 합병비율에 따라 1101만 주의 합병신주로 바뀌면서 모두 자사주가 된 것이다. SK(주)는 합병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주가 안정 목적으로 자사주를 취득해 현재의 자사주 보유량을 갖게 됐다.
상법상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그렇지만 기업을 분할하거나 합병하는 과정에서 의결권을 되찾는 경우가 많아 오너 일가의 지배력 구축에 악용되는 사례가 꽤 있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처럼 자사주를 취득하면 곧바로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가 2018년 11월 22조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 것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본인을 위해 자사주를 활용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현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지만 SK(주)는 자사주 소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자연스럽게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라는 숨은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SK(주)는 미국계 자산운용사 돌턴인베스트먼트와 라이프자산운용으로부터 자사주를 소각하라는 공개서한을 받기도 했다.
SK(주)가 자사주를 소각했던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SK C&C와 SK(주)가 합병할 때 두 회사가 동시에 자사주를 소각했다. 다만 국민연금은 당시 합병 후 자사주 소각을 진행한다는 이유로 두 회사의 합병을 반대했다. SK(주)의 자사주가 SK C&C보다 더 많았기 때문에 합병 전에 자사주를 소각했다면 SK(주) 주가가 더 높은 상태에서 합병해 주주들에게 유리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SK(주)는 지난 3월에도 주주권리 강화를 위해 매해 시가총액의 1% 이상을 자사주로 사들이겠다고 발표했지만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소각밖에 없다”며 “소각 계획을 묻는 말에는 계속 검토하겠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중복 상장 논란…"이사회 입장 밝혀야"
ESG 경영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인 주주권리 강화를 위해 SK(주) 이사진이 계열사 상장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장한 계열사는 지주회사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주주 손해로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2010~2021년 모자기업 동시 상장 157개 사례에 대해 실증분석을 진행한 결과 기업가치 측면에서 물적분할 및 모자회사 동시상장의 부정적 효과가 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SK그룹은 최근 몇 년간 주요 계열사의 신사업을 분할한 후 상장시키는 방식으로 재미를 봤다. 당장 지난해는 SK바이오사이언스,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이 신규 상장하면서 시가총액이 크게 늘었다. 올해의 경우 SK쉴더스, 원스토어 등이 상장을 추진했지만 공모시장 불황 등의 이유로 철회했다. SK에코플랜트, 티맵, 11번가 등도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현재 주가 시장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앞날을 장담할 수는 없다. 증권가에서는 배터리 업체 SK온이 상장을 추진한다면 흥행을 예상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의 사례처럼 비판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반발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을 맡고 있는 김규식 변호사는 SNS를 통해 “상장회사 이사회가 구성원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라는 상법은 단순히 외부 인사를 선임하라는 것이 아니라 대주주 및 경영진과 독립된 이사를 앉히라는 뜻”이라며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굳이 물적분할 자회사를 동시 상장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 자체가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우리도 이사의 회사·주주에 대한 선관의무, 충실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친환경 사업 계획도 구체적으로 알려야
SK그룹 계열사들은 구체적인 친환경 사업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일례로 SK(주)는 2025년까지 친환경 사업에 14조 4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고, SK E&S는 2025년까지 수소 공급능력을 연 28만 톤(t)까지 끌어올려 기업가치 35조 원을 인정받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기 실행 스케줄 공개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당장 연내 친환경 사업 실적 목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실적만 놓고 보면 SK(주)의 친환경 사업은 존재감이 미미하다. SK(주)의 실적을 뒷받침하는 사업은 대부분 화석연료 부문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이 SK(주)에 대한 목표주가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반영한 자회사 가치를 분석한 결과, 정유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의 비중이 12%로 상장사 중 가장 높았다. 비상장 자회사 중에서도 바이오 계열사를 제외하면 천연가스 사업을 하는 SK E&S 비중이 11.5%로 가장 높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펀드 매니저는 “아직 SK이노베이션과 SK(주)는 친환경 에너지 기업보다는 정유회사로 인지된다”며 “구체적인 연내, 또는 내년 목표치를 제시하면 기업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SK(주) 측은 이와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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