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보금자리론 공급 효과 수도권 집중 두드러져…대학병원도 양극화, 지방 주거환경 악순환 우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전국 주택매매가격지수는 6월 전월대비 0.06% 하락하는 데 그쳤다. 2022년 6월 이후 최저 낙폭이다. 서울과 수도권이 1년여 만에 반등했다.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전국이 0.04% 하락하며 지난해 4월 이후 가장 작은 낙폭을 보였다. 서울이 5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상승하고 수도권이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으로 반등한 덕분이다. 나머지 지역(광역단위 기준)은 아파트와 주택 모두 전월 대비 지수가 하락했다.
#특례보금자리론 매수 부추겨…수도권 최대 수혜
집값 반등의 일등공신은 규제완화다. 정부가 보유세 부담을 줄여주면서 집을 사려는 이들이 늘었다. 자금이 문제였는데 규제 혜택이 큰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이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집값이 9억 원 이하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55∼80% 내에서 최대 5억 원까지 고정금리로 빌릴 수 있다. 소득 요건이 없고 무엇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더 낮은 금리의 대출상품으로 갈아타더라도 중도상환수수료가 없다.
주택금융공사(HF)가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최근 제출한 자료를 보면 7월 1일∼27일 특례보금자리론 심사를 통과한 유효신청 금액 2조 4328억 원 가운데 80.3%인 1조 9537억 원이 신규 주택 구입 목적이었다. 전월(76.7%)보다 비중이 늘었다.
특례보금자리론 공급과 함께 서울 외곽과 경기·인천 지역에서 가격 9억 원 이하의 일부 아파트값이 큰 폭으로 반등했다. 특히 30대의 서울 아파트 ‘영끌’이 주목할 만하다. 올 상반기 서울 아파트 30대 매입 비중은 32.9%로 지난해 하반기(24.2%) 대비 급반등했다. 전국 아파트시장에서 30대 매입비중은 26.8%다. 4050 대비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30대는 지난해 하반기 DSR 규제가 확대되면서 사실상 서울과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살 돈을 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 특례보금자리론이 공급되자 다시 자금을 마련해 주택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의 공급 한도는 없지만 정부가 약속한 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정부는 올해 공급될 특례보금자리론을 39조 원 정도로 예상했는데 7월까지 이미 31조 원이 심사를 통과했다. 특례보금자리론 재원은 주금공이 채권(MBS)을 발행해 조달한다. 주금공은 자기자본의 50배까지 MBS 발행이 가능하다. 한도가 꽉 차도 정부가 추가 출자를 하면 그보다 50배의 자금을 추가 공급할 수 있다.
#코로나19 기간 돈 번 부자들 주택시장으로
한국은행이 7월 발간한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 및 평가'를 보면 2020~2022년 가계의 초과저축 규모는 101조~129조 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한은은 초과저축이 유동성 높은 금융자산 형태여서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초과저축의 주체는 고소득 자산가일 가능성이 크다. 한은의 정기예금 통계를 보면 2020~2022년 전체 계좌수가 13.19% 늘 때 1억 원 이상 계좌는 29.37%를 증가했다. 액수로도 1억 원 이하 예금액이 25.7% 늘어날 때 1억 원 이상 계좌는 30.8%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저금리와 자산시장 팽창 과정에서 부자들이 초과현금을 크게 늘린 결과로 추정된다.
서울 주요지역의 중형 이상 아파트는 최소 15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새 아파트도 분양가가 보통 3.3㎡(약 1평)당 30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LTV가 50%로 높아지고 15억 원 이상 주택도 대출이 가능하지만 매수 시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최근 KB부동산 월간시계열자료를 보면 전국 6월 전용 면적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대형 평형이 95.3으로 가장 높았다. 아파트값이 가장 비싼 서울은 대형이 99.4, 중대형 93.7, 중형 92.8, 중소형 90.4, 소형 87.2로 클수록 인기가 높았다. 분양시장도 마찬가지다. 직방이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7월 전국 1순위 청약경쟁률은 17.8 대 1로 6월(7.1 대 1)보다 크게 높아졌는데 서울이 101.1대 1로 가장 치열했다.
지방의 부자들도 서울 집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올해 1~6월 서울 아파트 매매는 1만 7509건으로 전년 동기(9931건) 대비 76.3% 늘었다. 외지인 비율은 26.1%(4565건)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19년 20.3%, 2020년 23.5%, 2021년 20.5%, 2022년 21.5% 등으로 높아지다 올해 신기록에 도전하는 모습이다. 같은 기간 서울 거주자의 수도권과 지방 아파트 매입 비중은 5.4%로 작년 하반기(5.5%)보다도 적었다.
#병원도 사라지는 지방…주거환경 더 나빠질 듯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집값 상승은 결국 주거 환경과 일자리 때문이다. 굴뚝형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지방에 있던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노인 등 고령인구의 지방 거주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최근 수도권 9개 대학병원이 수도권에만 6000병상 규모의 11개 분원을 개원하기로 했다. 의대 정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대학병원이 늘면 중소형 병원이나 지방에서 의사들을 영입해야 한다. 지방 의료 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20년간 전국에 개설된 대학병원 총 16곳 가운데 9개가 수도권이었다.
구매력을 가진 지방 자산가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진출하면 지방 주택시장의 수요는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약해진 수요는 향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낮추게 된다. 최근 지방을 중심으로 늘어난 미분양도 집값 반등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한편 7월 초 기준으로 부동산R114가 집계한 아파트 가구당 평균가격은 서울이 12억 9490만 원, 5개 광역시가 4억 4135만 원, 기타 지방이 2억 6557만 원이다. 서울의 평균 집값은 2000년 2억 382만 원에서 6.35배 올랐지만, 지방은 6551만 원에서 4.05배 오르는 데 그치면서 격차가 3.1배에서 4.9배로 벌어졌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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