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스타벅스도 ‘주류’에 손 뻗어…뉴트렌드 자리매김? 궁여지책 카드? MZ세대 반응은 엇갈려
패션업계에선 현대백화점그룹 패션기업 ‘한섬’의 움직임이 발 빠르다. 한섬은 현재 서울 성동구에 있는 ‘EQL 그로브’ 의류 편집숍에서 음료 등을 파는 F&B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서울 성동구에 개점한 한섬의 수입 브랜드 편집숍 ‘톰그레이하운드’의 MZ세대 특화 매장 ‘톰지’도 지난해 10월 말부터 올해 초까지 타코매장과 협업해 맥주와 테칼라, 칵테일 등 주류를 한시적으로 판매했다. 한섬은 오는 25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을 변경해 ‘주류판매업’을 신규 사업목적에 추가할 예정이다. 주류 판매 복합매장 운영에 한동안 힘을 불어넣을 기색이다.
식품업계에선 카페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적극적이다. 술이 포함된 신 메뉴를 개발하거나 주류 판매를 위해 영업방식을 변경하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관광상권 특화매장인 부산 해운대 엑스더스카이점과 제주지역 1곳 등 2개 매장에서 알코올이 들어간 칵테일 음료를 출시할 예정이다. 부산 해운대 매장은 이달 말부터 칵테일을 판매할 예정으로, 앞서 ‘휴게음식점’으로 허가받은 매장 영업 방식 분류를 ‘일반음식점’으로 변경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투썸플레이스는 지난해 말 세계 3대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 12년’을 넣은 케이크와 하이볼 등을 서울‧경기권 일부 매장에서 한정 판매해 소비자들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보다 발 빠르게 주류 소비자 공략에 나섰던 H&B(헬스·뷰티) 매장이나 편의점 기업들은 MZ세대에 특화한 매장을 새로 내거나 판매 주종을 더 늘려가는 추세다. 화장품과 뷰티 소품 판매가 주력인 CJ올리브영은 그동안 음료‧주류 매대에서 주로 캔와인과 하이볼을 판매해왔지만 최근에는 전통주, 위스키, 와인 등으로도 판매 품목을 확대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2024년 3월 기준 전국에 주류 강화형 점포 100여 곳과 주류 특화 점포 7500여 곳을 운영 중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2022년 선보인 주류 특화형 플래그십 스토어 ‘GS25전주본점’은 총 매출의 약 65%가 주류 매출로 발생한다”며 “특히 위스키, 칵테일이 초강세를 보이며 전체 주류 매출 신장을 견인했는데 MZ세대를 중심으로 칵테일을 즐기는 트렌드가 크게 확산된 결과로 풀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업계 최초로 주류특화매장을 선보인 이마트24는 현재 전국 점포의 70%가 넘는 5000여 곳에서 주류특화매장을 운영 중이다.
유통시장에선 코로나19 이후 이른바 ‘혼술’ ‘홈술’ 문화를 주도해 온 MZ세대를 위스키나 와인 등의 주요 소비층으로 인식한다. 국내 주류 시장의 성장 이유도 이들에서 찾는다. 실제로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하이볼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위스키 수입량이 2021년 1만 5661톤에서 2023년 3만 586톤으로 95.3%나 뛰었다. 위스키 한 해 수입량이 3만 톤을 넘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옷가게 등 오프라인 매장들의 주류 취급은 MZ세대의 매장 체류 시간을 늘려 매출 증대 효과까지 덤으로 노리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는 “패션 등 의류 판매 매장은 어떤 필요에 의해 가는 곳이고, 그 필요가 끝나면 매장을 나올 수밖에 없는데 주류를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를 끌어들임과 동시에 매장 체류 시간을 증가시킬 수 있다”며 “크로스셀링(교차 판매)을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콜라보라는 이름으로 이색적인 경험과 색다른 공간을 소비자에게 제공해, 다양한 경험을 선호하는 MZ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속내를 좀 더 들여다보면 어려운 경기 상황 속에 저조한 매출을 타개할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일단 ‘궁여지책’의 카드로 시도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 대부분 오프라인 매장에서 눈으로 물건을 확인한 뒤 쿠폰 등으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매를 하지 않나”라며 “속칭 ‘물장사’로 임대료라도 벌어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영애 교수도 “경기가 어렵다 보니 오프라인 매장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황을 진단했다.
오프라인 매장의 주류 마케팅에 대해 MZ세대의 반응이 다 같지는 않다. 13일 서울 성동구 한 뷰티 브랜드 팝업스토어 앞에서 만난 20대 중반 여성 A 씨는 “옷도 팔고 음료‧술도 다 파는 곳이라고 해서 찾아가진 않을 것 같다”며 “지금처럼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카페를 가고, 옷을 사려면 의류매장을 들르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집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성동구의 한 의류 브랜드 매장 앞에서 만난 28세 남성 B 씨는 “좋아하는 의류 브랜드 매장에서 주류도 같이 팔고 있다고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옷도 구경하고 간단히 술도 마실 수 있으면 오프라인 매장으로 더 자주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시선에선 주류 복합 매장 확산세가 한동안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전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술에 열려 있으면서도 ‘절제’가 있는 MZ세대의 성향이 적극 활용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간의 쓰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MZ세대는 한 공간에서 원스톱으로 다양한 체험을 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며 “주류 업계의 판매채널 확대 수요와 음주에 어느 정도 절제가 있는 2030세대 문화가 만나면서 이들이 간단히 술을 즐길 수 있는 복합공간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류를 의식해 매장의 기능을 늘리다 고유의 색깔이나 정체성이 퇴색되는 ‘악수’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연승 교수는 “(주류 판매가 두드러지면) 장기적으로 고객들에게 매장의 정체성에 혼돈을 줄 수 있다”며 “기업이나 매장에 대해 마니아층이 바라는 전문성(특수성)이 약화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마케팅에서 ‘종합점포’와 ‘전문점포’, 어떤 방향에 무게를 둘지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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