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올해 성장률 1.5%로 하향, 수출·소비·투자 동반 부진 위기…구조적 문제 빠른 극복 어려워
[일요신문]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졌다. 나라 안팎 상황이 모두 어려워 탈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수출은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에, 내수는 저출생·고령화에 직면하면서 경제 성장이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부동산도 가계 부채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발목이 잡혔다. 정부와 민간 모두에서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일본보다 더한 장기 불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25일 불과 석 달 만에 올해 성장률 전망을 1.9%에서 1.5%로 0.4%포인트(p)나 낮췄다. 상반기의 3분의 1가량이 지난 시점에서 전망한 올해 상반기 우리 경제 성장률은 0.8%다. 미국(2.4%)은 물론 일본(1.5%), 유로존(0.9%)보다 낮다. 글로벌 꼴찌 수준이다. 탄핵 국면 해소와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 등에 힘입어 하반기 성장 전망은 2.2%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트럼프 정부에 따른 불확실한 대외 여건을 고려하면 낙관은 어렵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마친 후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우리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 소비, 투자 등 3대 분야가 모두 부진하다. 지난해 6.3% 늘어난 수출은 올해와 내년 0.9%, 0.8% 성장하는 데에 그칠 전망이다. 올해 전망치는 지난해 11월 전망 때보다 무려 0.6%p나 뚝 떨어졌다. 반도체는 고성능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자동차는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트럼프의 관세 장벽에 막혀 고전이 예상된다. 중국 제조업의 초저가 수출도 전망을 어둡게 하는 변수다.
민간소비 증가율도 1.4%로 지난해(1.1%)보다는 높겠지만 3개월 전 전망치보다 0.6%p나 낮은 수치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2024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전년보다 3.5% 늘어난 289만 원이었다. 물가상승을 반영한 실질소비지출은 1.2% 증가에 그쳤다. 소비지출을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평균소비성향은 69%로 1.1%p 내렸다. 지난해 3분기(-1.3%p) 이후 두 분기 연속 하락세다.
투자도 부진하다. 지난 11월까지 3%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던 설비투자는 증가폭이 2.6%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우리 대기업의 대미 설비투자 확대를 주문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숫자다. 지난해 2.7% 감소한 건설투자는 올해 그보다 더 깊은 2.8% 축소가 예상된다. 2022년부터 건설 수주가 감소한 데다 부동산 PF 구조조정도 더디고, 정부의 연간 사회간접시설(SOC) 예산까지 축소됐기 때문이다.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는 국내외 기관을 통틀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은보다 낮은 곳은 지난해 12월 1.7%에서 1.3%로 낮춘 JP모건뿐이다. JP모건은 국내에 지사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글로벌 투자은행(IB)이기도 하다. JP모건도 정치 불안과 내수 위축, 수출 부진을 지적했다.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한은보다 낮은 1%로 제시한 점도 눈에 띈다.
지난 2월 19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차들이 세워져 있다. 사진=연합뉴스문제는 이 같은 저성장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과거 고도성장에 너무 익숙해서 1.8%라고 하면 위기라 하는데, 우리 실력이 그 정도”라며 “신성장동력을 키우지 않고 해외 노동자도 안 데려오는데 1.8% 이상으로 성장하려면 재정을 동원하고 금리를 낮춰야 하는데 그러면 나라 전체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논의되고 있지만 일종의 진통제인 만큼 과도하게 사용하면 부작용이 클 수 있고, 금리 인하도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경기대응 여력이 조기에 소진되고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창용 총재의 설명이다. 당장 추경 규모와 효과도 조기 대선 가능성과 내년 지방선거 일정 등을 감안하면 예측이 쉽지 않다. 예산 사용처를 두고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증시에서도 확인된다. 올 들어 코스피는 10%, 코스닥은 13% 넘게 올랐다.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을 친 미국, 일본 증시보다는 낫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성장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과 유럽만 못하다. 올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중국에 투자하는 경로인 홍콩 증시는 20% 가까이 급등했고,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성장 부진을 겪고 있는 독일도 닥스(DAX30) 지수가 12% 이상 올랐다. 독일 증시는 지난해에도 18% 넘게 상승했다.
내수 부양에 나선 중국은 딥시크(DeeSeek) 이후 인공지능(AI) 등에 대해 3년간 2000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독일은 새로 총리에 오를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CDP) 대표가 감세와 개헌을 통한 재정지출 확대를 예고했다.
2023년 이후 우리 정부는 재정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연구개발이나 SOC 투자에는 소극적이었다. 특히 반도체 불황으로 세수 부족까지 겪으면서 새로운 혁신에 대한 대규모 R&D(연구개발) 투자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그 사이 주력기업들의 경쟁력도 눈에 띄게 약화됐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올 들어 시장수익률을 웃도는 곳은 SK하이닉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네이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뿐이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크지는 않은 곳들이다. 기존 우리 경제의 간판으로 꼽히는 기업들 상당수가 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애매한 가계부채 관리방안, 목적은 부동산 띄우기?
정부가 올해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이 애매하다. 위험 관리는 강화한다면서 총액은 늘리는 쪽이다. 민간 금융회사들은 관리하면서 정책 대출은 확대하는 방향이다. 최근 서울은 강남 일대 토지거래허가제 해제로, 지방은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방침으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모습이다. 조기 대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띄우기를 통한 내수 부양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위원회 권대영 사무처장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5년도 가계부채 관리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정부는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 상한을 3.8%로 정했다. 명분은 경제성장률 전망(1.8%)에 물가상승률 전망(2%)을 더한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다. 우리나라 명목 GDP 성장률은 2021년(7.9%) 이후 2022년 4.6%, 2023년 3.3%, 2024년 5% 중반 등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가계대출 증가율이 명목성장률을 웃돈 것은 2021년 9.7%가 마지막이다. 이후 2022년에는 3.1%, 2023년 -0.6%, 지난해 2% 중반 등으로 명목 성장률 수치를 하회했다. 4년 만에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를 명목 성장률 수준까지 높인 셈이다.
정부는 올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지난해 수준(90.5%)에서 관리할 방침이다.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한국은행의 1.5%보다 높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웃돌게 되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까지 안정시키려는 정부 목표와 거리가 멀어진다.
중요한 것은 수요다.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RS) 적용을 받지 않는 정책대출이다. 3단계 스트레스 DSR이 7월부터 실행하면서 정부는 자녀가 있는 가구의 보금자리론 소득요건을 1자녀는 8000만 원에서 9000만 원으로, 2자녀는 9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올렸다. 소상공인과 지방 등 취약 부문 지원을 위해 생활안정자금 용도의 보금자리론도 일부 재개했다. 인터넷전문은행에도 보금자리론 취급을 허용하기로 했다. 접근성 개선도 수요확대 요인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시장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서울은 2월 들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풀린 강남지역은 물론, 강북 등 비강남권까지 급매물이 팔리고 호가가 오르고 있다. 거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월 27일 조사 기준 2월 서울 아파트 매매 신고 건은 총 2111건이다. 이 추세라면 2월 총거래량은 4000건을 넘어서면서 지난해 8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서울 아파트 시장이 뜨거워지면 수도권까지 온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 대출 대상이 되는 6억 원 이하 아파트는 주로 수도권에 많다. 7월 스트레스 DSR 시행 전 완화된 기준의 정책 대출을 활용해 집을 사려는 수요가 몰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