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활기와 달리 최근 태국의 경제 기류는 심상치 않다. 2024년 경제성장률은 2%대에 그쳤고, 공공부채 비율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어섰다. 태국 정부는 19조 원 규모의 현금 지급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여기에 미국이 태국에 상호 관세율 36% 적용을 예고하면서 태국 경제는 불안정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태국 정부는 현금 지급 정책이 내수 경제를 살릴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거세다. 일요신문은 4월 23일 오후 태국의 제1당인 인민당(People's Party) 사무실에서 시리카냐 탄사쿨 부대표를 만났다.

인민당은 2023년 5월 태국 총선에서 MZ세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아 제1당을 차지하며 ‘오렌지 혁명’을 이끈 전진당(Move Forward Party)의 후신이다. 전진당은 왕실모독제 형량 완화, 징병제 폐지 등 군부가 부담스러워하는 공약을 앞세웠다가 친군부 세력의 견제에 의해 2024년 8월 정당 해산됐다. 그러나 전진당의 후신으로 창당된 인민당은 여전히 하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보유한 제1당이자 제1야당이다. 현지 한국 교민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선 정당 해산이 대단히 큰 사건이지만 현재 태국에선 일상적인 상황이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시리카냐 의원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현금 지급 정책 ‘디지털 월렛’에 대해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을 짚었다. ‘이 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국가의 재정 지출은 그 목적이 명확해야 하는데 디지털 월렛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고 답했다. 정부가 돈을 썼다면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 역시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기 부양책의 성공 여부는 자금 배분의 명확성과 목적성에 달려있다. 명확하고 투명한 계획 없이 대규모 재정 지출이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미래의 경제적 위험을 키우게 되는 꼴”이라며 “정부가 지금처럼 16세 이상 전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돈을 나눠준다면 정작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층은 제대로 지원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팬데믹 당시 집행한 1450억 바트의 현금 지원 제도 역시 기대했던 경제 성장 효과를 거두지 못 했다”고 덧붙였다.
어떤 정책이든 명암은 있다. 특히 현금 지원 정책의 경우 민생 회복이라는 목적성이 강하다. 시리카냐 의원 역시 취약계층과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1, 2차 지원의 경우 일시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선 동의했다. 민생 지원 차원에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빈부격차의 근본적 해소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경제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본래 목표였던 경제적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리카냐 의원은 “GDP는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고 개인 소비 지수(PCI)도 완전히 정체된 추세를 보였다”며 “현금 지급 정책은 일시적으로 소비 진작을 시킬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정부 지지율은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해당 정책이 정부 지지율에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시리카냐 의원은 “100% 그렇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3차에 이어 4차 지원까지 진행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정부 돈을 받게 된다. 지지율이 올라가는 건 당연하다”고 내다봤다.

시민들은 푸어타이당이 권력 앞에서 정치적 결탁을 했다며 분노했다. 푸어타이당과 군부 측이 만남 당시 마셨던 민트초코 음료는 태국에서 배신을 상징하는 음료가 됐다. 실제 일부 카페에선 해당 메뉴의 판매를 일시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집권당 입장에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셈이다.
그럼에도 디지털 월렛 정책은 여전히 손볼 곳이 많다. 태국 정부는 경기 부양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5000억 바트(약 21조 3900억 원)가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이 금액을 전액 차입할지 기존 예산 일부를 재조정할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시리카냐 의원은 “야당은 디지털 월렛 정책을 꾸준히 반대했지만 정부가 밀어붙이니 어쩔 수 없었다”며 “대신 정부에 추가 차입을 최대한 피하고 집행 과정에 위법이 없도록 하라는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시리카냐 의원은 전진당 소속 시절부터 해당 정책의 헌법 위반 위험성을 지적해왔다. 그는 “디지털 월렛 정책을 시행할 목적으로 추가 차입이 이루어진다면 태국 헌법 140항이나 2018년 국가 재정 및 금융 규율법(the State Fiscal and Financial Disciplines Act 2018) 53항을 위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금을 지급한 1, 2차와 달리 3차 지원은 ‘탕 라트’라는 앱을 통해 디지털 화폐로 제공된다. 스마트폰이 없거나 앱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지원금이 어떻게 제공될지도 문제다.
태국 부패방지위원회(NACC: National Anti-Corruption Commission)는 디지털 월렛 정책이 특정 집단이나 대기업이 아닌 일반 대중과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대도시에 거주 중인 개인은 정책의 취지와 달리 대형 쇼핑몰이나 체인점에 지원금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태국=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