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철강’의 불이 꺼지고 있다. 현대제철은 6월 7일부터 포항 2공장의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포항2공장은 건설 현장에 투입하는 H형강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공장이다. 가동률이 10%까지 떨어지자 2024년에도 한 차례 공장이 셧다운됐다. 현대제철은 굴삭기 부품을 생산하는 중기사업부도 매각키로 했다. 포스코도 2024년 7월과 11월에 포항 제1제강공장과 제1선재공장을 폐쇄했고, 동국제강도 사상 처음으로 7월 22일부터 한 달 동안 인천공장 가동을 멈춘다.
국내 철강업계는 2023년부터 이어진 수요 부진으로 애를 먹고 있다. 중국 내수 침체로 과잉 공급된 중국산 철강이 자국에서 소화되지 못하자, 중국 철강업체들이 헐값에 국내로 수출한 영향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중국산 후판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긴 했지만, 다른 제품으로 위장해 물량을 밀어내고 있어 여전히 위협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자동차·조선 등 전방 산업 수요도 위축되면서 올해 1분기 국내 조강(쇳물) 생산량은 2010년 이후 가장 적은 1550만 톤(t)을 기록했다.
미국발 관세 폭탄으로 수출 여건도 악화했다. 지난 6월 4일(현지시각)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에 부과되는 품목 관세가 기존 25%에서 50%로 인상됐다. 한국은 2018년부터 미국 철강 시장에서 연 263만t의 무관세 쿼터(수입물량 제한)를 적용받았는데 올해 3월부터 해당 쿼터가 철폐됐다. 미국은 한국 철강의 주요 시장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 철강 수출 대상국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3.0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일본(11.45%)과 중국(9.95%) 순이다.

6월 23일부터는 미국에 수입되는 냉장고와 세탁기 등 철강 파생제품에도 철강 함유량에 따라 최대 50% 관세가 부과된다. 국내 철강 업체 입장에선 악재다. 관세 영향으로 한국 가전제품 가격경쟁력이 낮아져 판매가 줄면, 철강 업체들의 수익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가전업계가 미국산 철강으로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상황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유연하게 대응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산 철강 단가가 한국산 철강보다 더 높다. 관세 등을 고려했을 때, 가전 업체들은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릴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당분간 관세 정책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예정이었던 한미 정상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대한상공회의소 한 관계자는 “관세율 인하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다만 협상에 따라 국가별로 적용되는 관세가 달라질 수는 있을 듯하다”라고 밝혔다. 철강업계 다른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도 아직 관세 정책이 뚜렷하게 정립되진 않은 것 같다”며 “방위비 분담 등 미국과 얽힌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손영욱 철강산업연구원 대표는 “당장 한국 업체들에 미치는 영향은 없어 보인다. 인수 후에 준비기간도 필요하다. US스틸의 설비가 노후화돼 정상 가동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관세 협상에서 일본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업체들과 경쟁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US스틸은 철광석 광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철광석은 향후 탈탄소를 위한 수소환원제철 기술에서 중요한 재료다. US스틸은 2021년에 전기로 회사인 빅리버스틸을 인수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탄소 중립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철강업계에선 미국의 고급강 시장에서 한일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탈탄소 계획 이행에 최대 수십 조
EU도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내년에 시행되는 EU-CBAM 대응도 국내 철강 업체 입장에서는 풀어야 할 과제다. EU-CBAM은 EU 역내에서 생산된 제품뿐 아니라 제3국에서 수입되는 시멘트·철강·알루미늄·비료·수소·전기 등 6개 품목을 탄소 배출량에 따라 과세하는 제도다. 지난 6월 1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건물에서 진행된 중소기업 대응 정부합동설명회에는 포스코홀딩스, 세아제강 등 대기업들도 참여하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국내 철강업계도 탈탄소 전환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상용기술을 개발하겠단 계획이다. 수소환원제철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현대제철도 전기로와 고로 복합 공정을 구축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12% 줄이겠단 계획이다. 다만 이 같은 탄소중립 계획 이행에는 많게는 수십조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손영욱 대표는 “미국이나 독일 등에 비해 우리나라는 (탄소 중립과 관련한) 정부 지원이 약한 편”이라고 밝혔다.
국내 건설 경기는 내년이 되어야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취임한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과 올해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의 어깨도 무거워졌단 평가다. 이재윤 연구위원은 “그나마 중국 업체들이 철강 감산을 단행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있다”며 “철강업계의 위기가 반짝 그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제언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