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진 원장이 가장 먼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삼성생명의 계열사(삼성전자, 삼성화재) 보유주식 회계처리 문제다. 삼성생명은 과거 유배당 계약자들이 낸 돈(보험료)으로 계열사 주식을 매입했다. 이 주식들의 가격은 크게 높아졌다. 삼성생명은 이를 회계상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항목으로 관리했다. 이 항목은 9조 원에 달한다. 이찬진 원장은 이를 “국제회계기준에 맞춰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국제회계기준으로 보면 계약자 배당 재원은 보험사가 장래 고객에게 지급할 의무가 확정된 돈으로, 회계상 반드시 부채로 인식해야 한다. 재무제표에도 ‘책임준비금’으로 처리해야 한다. 정해진 시점에 배당도 해야 한다. 9조 원이나 되는 배당 재원을 마련하려면 해당 주식을 처분해야 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자칫 ‘이재용-삼성생명-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지배구조 약점과 연관된 문제다.
소비자보호도 이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문재인 정부에서 제정됐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찬진 원장은 취임 3주 동안 금융권 최고경영자들과의 공식 석상에서 23차례나 ‘소비자 보호’를 언급하며 “법령을 위반하면 최고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판단에 따라 회사 경영이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엄청난 과징금을 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편 정부와 민주당은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로 바꾸는 안을 추진 중이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기능을 분리해 기획예산처를 신설하고 기재부에는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을 이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위로 전환해 감독과 소비자 보호에 집중하고 금감원 산하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독립하는 내용이다.
이억원 후보자가 금융감독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겸임하며 이찬진 원장이 금융소비자보호원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경우 금융감독 주도권은 이 후보자가 쥐게 된다. 삼성생명 회계문제에 대한 결정권도 이 후보자가 갖게 된다. 이 후보자가 금융감독위원장만 맡고 이 원장이 금감원장직을 유지하며 금융소비자보호원장을 새로 선임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 경우 컨트롤타워만 맡는 이 후보자와 실제 조직과 집행력을 가진 이 원장의 뜻이 다르다면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윤석헌 금감원장과 관료 출신 금융위원장 간 갈등이 컸고 금융권은 윤 원장에게 소송으로 맞서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관료출신 금융위원장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 실세인 이복현 원장의 금융권 영향력이 더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최열희 언론인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