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7월부터 지난 2월까지 A 사 지식재산전담부서장으로 재직한 이 아무개 씨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제보 민원을 지난 9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산자부에 제기했다. 2024년 11월 같은 회사에서 병역의무자가 ‘전문연구요원’으로 허위 복무한 사건의 공익신고자인 이 씨는 회사 경영진인 B 씨와 C 씨 등이 정책펀드인 ‘소부장 펀드’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산기평을 위계·기망해 공익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확인서 발급으로부터 약 석 달 만에 공장마저 폐쇄해 ‘소부장 전문기업’ 자격 유지 조건마저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소부장 종합포털인 소부장넷과 산기평에 따르면 2002년부터 소부장의 발전 기반 조성 및 기술경쟁력 제고를 위해 전문기업 확인 제도를 운영 중이다. 신청 대상은 총 매출액 가운데 소재·부품·장비 매출액 비율이 50% 이상 기업이며, 한국표준산업분류코드의 적용 범위에 해당되는 제품을 직접 생산해야 한다. 자격을 갖춘 기업은 전문기업 확인 신청서와 함께 표준재무제표, 공장등록증 또는 일반건축물대장, 제품설명자료를 제출한다.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위탁 생산을 할 경우 위탁제조계약서를 첨부해야 한다.
소부장 전문기업은 산업기능요원제도 대상 업체 지원 시 4점의 가산점을 받는다. 병역특례제도인 산업기능요원제도는 인력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 한국은행의 금융중개지원대출 등 정책금융 수혜 대상 선정 기준에 소부장 전문기업이 포함된다. 30조 원 규모의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자금난을 겪던 A 사는 소부장 전문기업 확인서를 받아 이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 B 씨의 지시에 따라 C 씨와 직원 일부는 2024년 4월 한 대기업 계열사와 PoC(기술검증) 계약을 맺은 끓임 조리 자동화 로봇을 ‘2023년 매출’ 자료로 제출했다. PoC 계약은 기업 간 기술이나 아이디어의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고 협력하는 계약으로 보통 본계약 전에 이뤄진다. 게다가 2024년에 체결된 PoC 계약 건이라 2023년 매출과는 무관하다.

현재는 회사를 그만둔 A 사 관계자는 “제품설명자료에 나오는 로봇 제품은 2024년 4월 PoC 계약만 진행한 것으로 실제로 납품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며 “사장인 B 씨와 이사 C 씨 모두 신청서 작성과 서류 준비 과정을 함께해서 이를 모를 수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매출 자료에 등장하는 제품 역시 “A 사가 자체 생산한 것이 아닌 영업을 통해 타사에서 제조한 제품을 재판매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 씨는 “B 씨는 2024년 9월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산업용 로봇 생산 공장을 폐쇄했다. 소부장 전문기업 확인을 위해 공장등록증을 제출하는 이유는 직접 소부장을 생산하는 기업을 선별하기 위한 것인데, A 사는 자격을 상실하고도 확인서 취소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서 “지난 5월 내가 국세청에 직접 민원을 넣어 해당 공장을 폐업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A 사는 소부장 전문기업 확인서를 이용해 혜택을 얻지는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B 씨는 ‘일요신문i’와 인터뷰에서 “회사를 정리 중인 상태”라면서 “현재는 대표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A 사 법인 등기상 B 씨는 지난 1월 12일 대표이사직에서 퇴임한 것으로 돼 있다. 다만 상법상 이사가 1명인 경우 반드시 사내이사이자 의결권을 가진 대표이사 역할을 한다. 아울러 A 사는 현직 공인회계사이자 변호사인 B 씨의 아버지로부터 소부장 매출액 검토를 받아 검토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B 씨는 “낮은 비용으로 검토해 줄 분을 찾다 보니 부친께 연락 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B 씨는 비위 의혹과 관련해 “매출액으로 잡힌 제품은 표준 제품을 고객사별로 커스터마이징해 납품한 것이다. 제품설명자료는 그 회사의 대표 제품을 설명하는 문서로 판단해 표준 제품 설명 자료를 제출했다. 매출 자료 위조 등 비위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부장 전문기업의 중요성은 이 씨가 먼저 언급했는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이 씨가) 저에게 악감정이 많으신 것 같다. 이 씨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며 최근 (산기평에) 소부장 전문기업 취소 요청을 직접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기평에서) 조사가 진행된다면 성실히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A 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묻자 C 씨는 “기억이 안 나고 현재는 회사를 그만둬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없다”고 답했다.
산기평 측은 이 씨의 신고를 토대로 A 사의 소부장 전문기업 확인서 발급 취소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기평 관계자는 “제보를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기관 차원에서 조사를 실시했다. A 사가 선제적으로 취소 요청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현장 실태와 대표자 면담 등을 통해 해당 기업이 폐업을 진행 중이라는 점을 확인했고, (전문기업) 조건이 유지되지 않아 취소 절차를 밟게 됐다. 최종적으로 산자부에서 취소를 해야 완전히 취소된다”고 말했다. 산기평은 향후 A 사의 신청서 제출 과정에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소부장 전문기업 확인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자부로부터 전문기업 확인 절차를 위임받은 산기평은 신청서를 접수한 뒤 서류가 미비할 경우 보완을 요청한다. 이후 산기평은 요건을 심사한 뒤 필요 시 현장실사를 한 후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하면 유효기간 3년의 ‘소부장 전문기업 확인서’를 기업에 발급해준다. 하지만 ‘일요신문i’가 확인한 결과 ‘현장실사’ 과정이 대부분 생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실사를 하지 않으면 해당 공장에서 실제로 소부장 제품을 생산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기평 측은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서면으로만 사전 검토한다. 산기평 관계자는 “1년에 (전문기업 확인 신청이) 접수 건수가 1만 건이 넘는다”면서 “현장실사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밝혔다.
현장실사가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관련해 산기평 관계자는 “한 번 확인서가 발급된 경우 3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만료되는 제도라 공장을 폐쇄하는 등 유지 조건을 상실하는 것을 반영하기 어렵다”면서 “소부장 특별법에 포함된 내용이기 때문에 산자부와 함께 제도 개선 등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관리·감독 강화 계획에 대해 묻자 “열심히 고민 중이지만 결정된 사항이 없어 아직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행 소부장 전문기업 확인 제도는 산기평이 서류를 중심으로 확인하는데, 현장실사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고 이후 공장 폐업 등으로 자격 유지 조건이 상실돼도 전문기업 자격이 계속 유지되는 문제가 있다”며 “제도 취지인 실질적 전문성 확보와 경쟁력 강화에 부합하지 않아 개선 필요성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서지용 교수는 이어 “전문기업 선정 시 현장실사 절차를 의무화해 매출 비중뿐 아니라 생산설비 운영 여부, 실질 영업 활동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자격 유지 조건을 강화해 정기적인 사후관리와 갱신 심사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현장과 실질을 반영한 엄격한 관리로 전문기업 제도의 신뢰성과 정책 효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