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학부모 모임' 등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확인된 피해자만 수십 명, 피해 금액은 200억 원대로 추산된다. 피해자들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거나 파산에 이르러 "길에 나앉을 처지"라고 호소한다. 피의자는 반성 기미마저 없다. 구속되고도 "검찰도 경찰도 안 무섭다" "어차피 나 아니면 돈 못 찾는다"며 당당한 태도다. 일요신문이 그 전말을 들여다봤다.

"그럼 병합하겠습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4형사부 한 법정. 재판장이 이같이 선언하자 방청석에선 일제히 "뭐야 이게" "아 또…" 하는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재판장까지도 착잡한 표정이었다. 올 3월부터 사건 병합과 변호인 교체 등으로 아무런 공방 없이, 재판 절차만 하염없이 지연돼 온 터였다. 재판장은 "방청 오신 피해자 분들 심경이 얼마나 힘드실 줄 안다"며 방청인에 마이크 쥘 기회를 부여했다.
한 방청인이 발언 기회를 얻었다. 그는 "도대체 돈을 어떻게 돌려줄 건지, 피고인이 직접 구체적 방법을 설명해보라"고 일갈했다. 피고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로저었다. 대답하지 않겠단 뜻이었다. 이에 피고인 측 변호인이 "그건 재판 마치고 바깥에서 설명드리겠다"고 대신 답했다. 이날 재판도 이렇게 끝났다.
약속대로 법정 밖에 선 피고인 측 변호인은 말투야 차분했지만 내용은 비어있었다. "피고인이 11월 중순쯤엔 돈을 돌려줄 방법이 마련 된다는데, 정확히 무슨 수로 돌려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입을 열지 않는다"며 본인도 잘 모른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똑같은 말만 수년째 들어 왔다"며 답답함과 분노를 토로했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40대 여성 박 아무개 씨 재판 풍경이다.
이날 새로운 사건이 또 이 재판부로 넘어오며 벌써 병합된 사건이 10건. 그 외에 서울남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4건, 경기 부천 소사경찰서에서 송치 예정인 사건도 7건 더 남아 있다. 고소를 접수한 인원만 20여 명에 달한다. 당장 재판 중인 사건은 피해 금액이 변호인 추산 140억 원이지만, 검·경에서 수사 중인 사건을 더하면 200억 원을 웃돈다. 이제야 "더는 안 되겠다"며 고소를 준비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정확한 피해자 숫자와 액수 전부 '추산 불가'인 셈이다.

서울에 사는 A 씨는 피고인 박 씨와 2021년경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동네 학부모 모임 지인을 통해서다. 당시 지인은 박 씨를 "가정주부지이만 부동산 투자 수완이 좋은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A 씨와 박 씨는 그 뒤로 가까워져 재테크 관련 정보도 자주 공유했다. 그러던 어느 날, A 씨는 박 씨로부터 "10억 원 넘는 아파트를 반값에 사도록 해주겠다"며 투자를 권유받았다. A 씨는 이를 믿고 돈을 건넸다. 그러나 아파트는 물론 원금마저 회수할 수 없었다.
B 씨는 박 씨와 친인척이다. 그는 박 씨를 통해 주식에 투자하려다 모든 재산을 잃었다. 박 씨가 "내 남편이 대기업 다니는데 자사주를 싸게 살 수 있다"며 "B 씨가 돈을 빌려주면 함께 투자해 수익과 배당을 나눠주겠다" 제안한 게 발단이었다. B 씨는 수억 원을 빌려주고 한푼도 못 받았다. 그러다 박 씨는 돌연 "돈 대신 아파트를 반값에 주겠다" 제안했다. 설마 가족인 친인척한테까지 사기를 칠까. B 씨는 거듭 믿음을 지키며 대출까지 받았는데, 10억 원 넘게 잃고 이젠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박 씨의 이 같은 '반값 아파트' 등을 미끼로 한 사기 피해자들은 갖고 있던 돈만 잃은 게 아니다. 대부분 새 집값을 마련하고자 대출을 받았다가 아예 빚더미에 올랐다. 대부업체에 손을 뻗은 사례도 있다. 박 씨가 "아파트 잔금 치를 돈이 없으면 '이곳'으로 가보라"며 소개해준 곳이 각종 대부업체였기 때문이다.
현재도 파산하거나,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간 피해자들은 속출하고 있다. 일부는 스스로 해를 입히다 입원하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
박 씨 수법은 그리 단순하거나 어설프지 않았다. B 씨 사례가 보여주듯 박 씨는 친인척까지 피해자로 끌어들이며, 본인 행위가 사기로 비칠 가능성을 차단했다. 심지어 반값 아파트 실물을 직접 보여주는 건 물론, 부동산에서 공인중개사가 합석해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과 중도금 등을 챙겼다. 실물 주택과 공인중개사 및 계약서의 정체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특히 일부 피해자는 박 씨의 통장 잔액까지 확인했다. 1000억 원이 넘는 액수였다. 이 밖에 주식이나 암호화폐(가상화폐) 등에서도 자산 보유 현황에 찍힌 막대한 금액을 직접 눈으로 봤다고 한다.

피해자들 사이에선 박 씨 단독 범행이 아닐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수백억 원에 이르는 돈을 혼자 운용하기도 어려운 데다, 수법에 활용된 각종 대부업체와 집과 계약서 등을 동원하는 작업도 주변 공조 없인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박 씨는 각종 계약을 빌미로 피해자들에 자세한 개인정보를 요구했고, 이로써 신용조회를 거쳐 피해자를 선별하는 등 까다로운 과정도 거쳤다. 고령이기도 한 B 씨의 정보로는 예금과 주식 계좌까지 몰래 개설했다. 박 씨가 B 씨 명의 계좌로 주식을 거래한 IP 주소는 무려 13만 개로 드러났다. 예금 계좌에서도 B 씨가 모르는 이들과 거액을 거래한 기록이 수백 개에 달했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돈을 회수할 방법이 막막하다는 점이다. 박 씨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더해, 돈을 차명 관리해온 사실까지도 인정한 상황이다. 그러나 차명 계좌와 관리 수단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박 씨는 법정에선 "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반성문도 제출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요신문은 구속된 박 씨가 최근 지인에 보낸 편지를 확인했다. 그는 돈을 돌려줄 의사가 없어 보였다. 아래는 내용 일부다.
"그 돈은 나 아니면 아무도 못 찾고, 주가조작이든 불법적인 돈이든 아니든 진위 여부를 떠나서 내가 움직이지 않는 한 절대 못 찾아. 경찰, 검찰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런 되도 않는 말로 흔들지 말라고 해. 나한테는 타격도 없으니까… 고소한 사람들 나 여기 들어오면 빨리 돈 받을 수 있겠거니 어떻게든 합의 보겠거니 했겠지…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여기서 끝이야… 언론에 뿌리려면 그렇게 하라고 해야지 어쩌겠어. 어차피 시간 지나가면 잊힐 일. 나한테 돈을 받으려면 기다렸어야 해. 재판 끝나고 형 확정되면 합의는 더 할 필요가 없을 거니까."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차명계좌 추적을 요구하지만 상황은 암담하다. 박 씨 관련 추가 사건을 수사 중인 부천 소사경찰서 관계자는 "박 씨 사기 혐의 사건 7건이 진행됐고 곧 검찰에 송치 예정"이라면서도 "사기 사건은 피해자 회복을 위한 자금 추적이 기본이지만, 이번 박 씨 사건은 나름대로 시도해봤지만 여러 사정상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법은 오는 12월 17일 박 씨 결심공판을 연다. 지난 공판 당시 재판부는 "양형 반영 등 선처받으려면 피해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