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섭 대표는 2023년 8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KT 대표이사로 공식 취임했다. 2002년 LG 구조조정본부 재무개선팀 상무, 2006년 LG CNS 경영관리본부 부사장과 2013년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CFO), 2015년 LG CNS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재무구조 개선을 도맡은 ‘재무통’으로 꼽혔다. KT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에는 2025년 2분기 영업이익 1조 148억 원을 기록하며 KT를 사상 최초로 ‘분기 영업이익 1조 클럽’에 올려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해킹 사태 은폐 의혹이 김영섭 대표의 연임에 결정적 악재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관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KT는 지난해 BPFDoor·웹셸 등 악성코드에 감염된 43개 서버를 발견하고도 이를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8월에는 펨토셀(초소형 기지국) 보안 취약점으로 무단 소액결제 사고가 발생했지만 초기 대응 부실과 지연 신고 논란이 겹치며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다.
2023년 취임 이후 정치권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점도 김영섭 대표의 연임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김영섭 대표 본인부터가 KT 수장으로 선임된 배경을 놓고 여권 인사 개입설이 제기됐다. 김 대표는 윤석열 정부 당시 이관섭 전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의 친형 이종섭 씨와 경북사대부고 동문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윤석열 정부 당시 KT CEO 선출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구체적 진술도 나왔다. 구현모 KT 전 대표는 “이관섭 수석이 지인을 통해 ‘사퇴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영섭 대표 취임 이후에는 검사 출신 임원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 논란도 빚어졌다. 김 대표는 취임 직후 김후곤 컴플라이언스위원장(전 서울고검장), 이용복 법무실장·부사장(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추의정 감사실장·전무(전 서울중앙지검 검사), 허태원 준법지원실장·상무(전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임명했고 양진호 송무컨설팅그룹장(전 서울중앙지검 검사)까지 내부 법무라인에 합류했다. 여기에 베트남 헬스케어 사업과 보안회사 KT이니텍 매각 과정에서도 헐값매각을 통해 윤석열 정권 인사에 특혜가 돌아갔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김영섭 대표의 AI(인공지능) 전략을 두고도 KT 안팎의 평가는 엇갈린다. 김영섭 대표는 취임 이후 AI 사업을 핵심 성장축으로 삼고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을 강화했다. 전임 구현모 대표가 추진하던 토종 AI ‘믿음’ 개발을 중단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으며 약 2조 4000억 원 규모의 공동 투자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KT가 실질적 이익을 거두지 못한 채 MS 매출 확대에만 기여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KT가 지난 8월 정부의 차세대 AI 핵심 과제인 ‘국가대표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하면서 김 대표의 AI 사업 전략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KT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자체 개발을 포기하고 글로벌 빅테크와 협업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지만, 정권 교체 이후 정부가 ‘소버린 AI(외국 기술에 대한 의존 없이 자국이 독립적으로 개발·운영하는 인공지능)’를 강조하면서 KT의 기조와 맞지 않게 됐다”며 “통신 3사 중 가장 먼저 AI 사업을 추진했음에도 국가대표 AI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건 뼈아픈 결과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늘었지만, 구조적인 성장보다는 관리형 경영에 머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MS와 손잡으면서 독자적 AI 모델을 구축하지 못한 점이 파운데이션 모델 심사에서 약점으로 작용한 것 같다. 다만 김영섭 대표는 기술 격차를 현실적으로 좁히기 위해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때 국내 완성차 기업들이 닛산 등 일본 업체와 협업해 기술 기반을 빠르게 다졌던 것과 비슷하다. 정치적 논란과는 별개로 차기 경영진도 이를 단절하기보다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섭 대표의 임기는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까지다. 김영섭 대표가 연임 포기 사실을 밝히면서 KT 이사회는 차기 대표이사 인선 절차에 착수했다. 차기 CEO는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사내외 후보군을 구성한 뒤 서류 심사와 면접 평가를 거쳐 최종 1인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차기 KT 대표 후보군으로는 구현모 전 대표, 윤경림 전 사장, 박윤영 전 기업부문장,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교수 등이 거론된다. 모두 2023년 대표 선임 과정에서 낙마했던 인사들이다.
KT 이사회에서 CEO 선임 절차를 앞두고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변수가 될 전망이다. KT 이사회는 지난 11월 4일 규칙을 개정해 단순 보고 사항이던 ‘주요 조직의 설치, 변경 및 폐지 등 조직개편에 관한 사항’을 사전보고·심의·의결 사항으로 변경했다. 부문장급 경영임원과 법무실장에 대한 임명 및 면직 또한 사전 심의·의결 대상에 포함시켰다.
앞서의 KT 내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사회 안건은 거의 100% 통과돼왔다. 이전에는 안건이 상정되면 단순히 찬반만 결정했지만, 최근에는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이사회가 의견 제시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 안다”며 “해외처럼 주요 주주가 사외이사를 통해 경영을 견제하는 구조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사회가 CEO 후보를 보다 합리적으로 검토할 여지가 생긴 만큼, 이번 CEO 인선은 예상 밖의 ‘깜짝 인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KT의 최대주주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영향력 확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은 KT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사외이사 중 곽우영·조승아 등 현대차 출신 인사가 포함돼 있어 실질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사회의 최근 행보를 두고는 ‘방탄 이사회’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문형남 숙명여대 글로벌융합대학장은 “현 경영진 측 인사들이 요직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가 정관을 변경해 새 CEO의 인사권을 제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은 사실상 ‘알박기’라는 의혹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학장은 이어 “이사회가 낙하산 인사를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차기 경영진의 권한을 제한하려는 과도한 조치로 비칠 수 있다”며 “대표 교체 국면에서 불필요한 규칙 변경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전임 경영진 정리가 선행되는 게 순서”라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