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호 부회장이 장차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지주사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계열사 지분을 매입한 의도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과거 이웅열 명예회장이 후계자의 경영 능력을 엄격히 평가해 지분을 승계하겠다고 한 발언이 다시 거론되며 이번 지분 매입과 이 부회장의 경영 실적의 연관성에 시선이 쏠린다.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입사한 이규호 부회장은 2023년 말 부회장으로 승진한 후 최근까지 그룹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지분 0% 후계자’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이번 계열사 지분 매입이 책임경영 강화와 같은 대내외 리더십 매니지먼트 차원이나 경영권 승계 준비 목적 등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지주사가 아닌 ‘계열사’라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번 지분 매입에 대해 “그룹의 리밸런싱(사업구조재편)에 힘을 실어주는 책임경영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이규호 부회장은 두 계열사에서 모두 사내이사를 맡고 있음에도 주식을 전혀 보유하지 않아 책임경영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웅열 명예회장은 현재 (주)코오롱 지분 49.74%를 보유하고 있다. 향후 이규호 부회장에게 상속·증여 과정에서 지분율이 줄어들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이 부회장이 미리 지주사 지분을 늘려놓는 것이 안정적 승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이번에 지분을 매수한 두 계열사는 (주)코오롱이 최대주주로서 안정적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는 상태로, 이 부회장의 지분 매입이 당장 해당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 확대에 실효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진단의 배경에는 이웅열 명예회장이 과거 공개석상에서 후계자 조건에 대해 엄격한 표현을 한 발언이 거론된다. 이 명예회장은 2018년 11월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단 초청 간담회에서 “이규호 (당시) 전무에게 언제 경영권을 물려줄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본인이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스스로 키우지 않으면 사회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들에게도 말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이규호 전무의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라고 이어 묻자 이 명예회장은 “아버지로서 재산을 물려주겠지만 주식은 1주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첫해인 지난해 코오롱그룹 실적은 부진했다. (주)코오롱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895억 원을 기록하며 2009년 지주회사 전환 이후 첫 적자를 냈다. 특히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있는 코오롱글로벌이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523억 원을 기록한 것이 타격이 컸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각각 1587억 원, 175억 원 등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모두 전년 대비 이익 규모가 감소했다.
올해 실적도 뚜렷한 반전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선 (주)코오롱은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손실 972억 원을 기록하며 당기순이익도 적자 전환했다. 3분기 연결기준 누적 매출은 4조 3536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0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1289억 원)이 전년 대비 632% 상승했지만 2023년 3분기 누적 영업이익(1200억 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룹 내 신사업 계열사로 꼽히는 코오롱스페이스웍스도 안정적 성과를 낼 때까지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코오롱스페이스웍스는 첨단 복합소재를 개발·생산하는 업체로 지난해 7월 그룹 내 항공·방산 계열사인 코오롱데크컴퍼지트, 코오롱글로텍의 경량화 부품·방탄 소재·수소탱크 사업, 코오롱ENP의 차량용 배터리 경량화 소재 등 그룹 내 분산돼 있던 복합소재 사업을 통합해 출범했다. 지난해 영업손실 62억 원, 당기순손실 58억 원을 내며 출범 첫 해 적자로 출발했다.
올해 코오롱그룹은 성과가 약했던 계열사를 중심으로 사업 재편 작업에 나서고 있다. 2023년 코오롱글로벌 자동차 판매 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설립한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이규호 부회장이 전담해 사업을 이끌었지만 실적이 부진했고, 결국 내년 1월 상장 폐지돼 (주)코오롱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될 예정이다. 실적 악화를 겪은 코오롱글로벌은 그룹 내 비상장 계열사 엠오디와 코오롱엘에스아이와 합병 절차를 진행 중이며,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그룹 내 상장사 코오롱ENP와 합병하겠다고 지난 11월 25일 공시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이규호 부회장의 계열사 지분 매입은 그룹 내 핵심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입지를 다지려는 수순이자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권 승계 구도를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승진은 했지만 경영권 승계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알짜배기 계열사 지분 매입은 경영권 승계가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 부회장 승진 후 그룹 실적이 개선되지 않아 이웅열 명예회장이 이 부회장의 능력을 확신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