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에서 이들이 택한 해법이 미국 법원을 통한 증거개시(Discovery·디스커버리) 절차였다. 이는 미국 연방법 제1782조에 근거한 제도로 미국 법원이 외국에서 진행 중인 재판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 있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증거 제출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장원영 측은 이 조항에 따라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신청을 제기해 구글로부터 채널 운영자의 IP 주소, 계정 생성 정보, 로그인 기록 등 신원 관련 자료 제출을 명령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확보된 자료는 한국의 민·형사 재판에 제출됐고, 신원이 특정된 탈덕수용소 운영자 박 아무개 씨는 형사재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과 함께 범죄수익 약 2억 1000만 원의 추징을 선고받았다. 민사소송에서도 장원영과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측에 각각 5000만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박 씨는 현재 대법원 상고 후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공적으로 '익명 악플러' 신상 특정과 소송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지면서 이 방식은 인터넷 방송인 과즙세연이 사이버 렉카형 유튜버 '뻑가'를 고소한 건에서도 활용됐다. 과즙세연은 뻑가의 신원을 특정해 1심에서 1000만 원 배상 판결을 받아낸 데 이어 뻑가의 유튜브 영상에 악성 댓글을 단 약 30명의 악플러를 상대로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도 미국 법원을 통한 증거개시 절차로 구글로부터 댓글 작성자들의 신원 정보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성 콘텐츠 제작자뿐 아니라 개별 악플러까지 신원이 파악돼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은 사례다.
이 같은 변화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해외 기반 익명 악플러에 대한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하이브 산하 레이블에서 공지한 악플러에 대한 법적 절차 결과가 그 실례다.
2025년 12월 29일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그룹인 세븐틴과 투어스(TWS) 멤버들을 상대로 허위사실과 비하적 표현이 담긴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작성해 온 악성 X 계정에 대해 11월 미국 법원으로부터 1782 신청(디스커버리 신청)의 인용 결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측은 "이에 따라 당사가 선임한 미국 로펌을 통해 구글 및 X에 대해 관련 법에 따른 정보공개 절차가 즉시 진행될 예정"이라며 "확보되는 관련자의 신원을 토대로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엄중히 묻기 위한 모든 조치를 끝까지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엔터사들에 있어서 이 '미국 법원 루트'는 예외적인 시도가 아니라 새로운 표준 대응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는 모양새다. 익명을 원한 한 아이돌 그룹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탈덕수용소 사건 이후 해외 플랫폼에 숨어있는 계정도 실제로 특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제는 대다수 엔터사가 악플과 허위정보를 조직적으로 퍼뜨리는 계정에 대해 초기 단계부터 미국 법원 절차까지 염두에 두고 있고, 올해부터는 더욱 체계적으로 전담 법률팀을 구성해 대응할 방침을 밝힌 곳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탈덕수용소는 단순한 루머를 유포하는 익명 악플러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런 허위사실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모델'을 제시한 사례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가 많은 관심을 받자 수익을 노리고 비슷하게 따라한 다른 사이버 렉카 계정들이 우후죽순 늘어났을 정도"라며 "이번 사례 이후로도 개별 악플러들은 여전하지만, 상대적으로 사이즈가 큰 계정을 운영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하던 사이버 렉카들은 법적 조치를 피하기 위해 이전보다 움직임이 덜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