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026년 새해 한국 경제는 물론 증시 최대 화두는 반도체다. ‘K-반도체’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사상 첫 영업이익 100조 원에 도전한다. 2000년 이후 한국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아성을 SK하이닉스가 무너뜨릴지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1월 2일 기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450조 원으로 가전과 휴대전화까지 포함한 삼성전자의 750조 원과 거리가 꽤 멀다.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DRAM) 생산능력은 월 70만 장으로 SK하이닉스(50만 장)의 1.4배에 달한다. 2030년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가동되면 생산능력이 90만 장으로 삼성전자의 100만 장(설비투자 계획 물량 포함)과 박빙의 수준으로 좁혀진다. 단기간 내 시총 역전은 어렵더라도, 반도체 부문의 실질적 왕좌가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관건은 두 가지다. 먼저 물가상승 등으로 120조 원에서 600조 원까지 불어난 투자비용을 SK하이닉스가 어떤 방식으로 조달하느냐다. SK그룹이 주장한 규제 완화가 정부에서 받아들여질지가 변수다. 또 다른 하나는 삼성전자가 그동안 SK하이닉스에 뒤졌던 고대역메모리(HBM)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회복할지다.
2025년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7회 반도체 대전(SEDEX 2025) SK하이닉스 부스에 HBM 홍보영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삼성전자 DS vs SK하이닉스
삼성전자는 2009년 9월 1일 KT를 제치고 코스피 시총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에 이은 시총 2위는 SK텔레콤, KT, 현대차, 삼성바이오로직스, LG화학 등이 자리바꿈을 하다 2022년부터 SK하이닉스 차지가 됐다. SK텔레콤이 한때 삼성전자 몸집의 최대 30%까지 체중을 불렸을 뿐 다른 2위들은 10~25% 수준에 머물렀다. SK하이닉스 시총은 2023년 12월 최초로 삼성전자의 40%를 넘어섰고 2025년 6월 50%, 10월에는 60%를 잇따라 돌파했다.
최근 10년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으로 삼성전자 전체 실적에서 반도체(DS) 부문 비중은 60~65%선이었다. 최대치는 반도체 초호황이던 2018년의 76.4%다.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 시총의 70%는 넘겨야 반도체 왕좌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증권사 전망 평균을 기준으로 2025년 영업이익은 삼성전자 DS부문이 28조 7000억 원, SK하이닉스가 32조 5000억 원이다. 반도체는 고정자산 비중이 높아 기업가치의 기준으로 영업이익보다 EBITDA가 더 중요하다. 2025년 기준 EBITDA는 삼성전자가 52조 4000억 원, SK하이닉스가 48조 5000억 원이다. 올해 전망도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SK하이닉스(38조 2000억 원)가 삼성전자(35조 4000억 원)보다 많지만 EBITDA로는 각각 55조 2000억 원과 61조 8000억 원으로 위치가 달라진다.
이 때문에 2025년말 기준 주가수익비율(PER)도 삼성전자가 24.9배로 SK하이닉스(13.3배)보다 훨씬 높다. 삼성전자는 이미 완성된 현금 창출력을 인정받는 안정주인 반면, SK하이닉스는 HBM의 고성장성에도 불구하고 높은 감가상각비와 재무적 불확실성이 할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HBM의 높은 수익성을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감가상각비 부담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미국 빅테크에서 배운 SK의 해법…‘부외금융’
SK하이닉스가 찾아낸 해법은 월가의 마법, 즉 ‘부외금융(Off-balance)’이다. 감가상각비를 줄이려면 공장과 설비 등 고정자산 투자 부담을 낮춰야 한다. 고정비 부담이 낮아지면 수익성 개선과 동시에 투자의 핵심 기준인 자기자본수익률(ROE)도 높아진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이른바 미국의 빅테크(Big-Thch)들은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블랙록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와 손잡고 특수목적법인(SPC)를 설립하고 있다. 이 SPC가 대출을 일으켜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서버와 칩을 사면 빅테크들이 이를 빌려쓰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빅테크는 데이터센터 투자 부담은 SPC에 넘기고 반도체 판매 수익만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 SK가 최근 지주사 규제 및 금산분리 완화를 정부에 건의한 이유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투자 부담을 그룹 외부로 넘기려는 포석인 셈이다.
SK도 반도체 공장 건설에서 가장 비중이 큰 장비 비용을 합작사에 넘기기를 원한다. SK하이닉스가 출자를 해도 단독 경영이 아닌 것처럼 이사회를 구성하면 계열사로 두면서도(공정거래법 기준) 회계상 연결재무제표 작성(회계기준서 기준)은 피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계열사인 합작사가 아무리 빚을 많이 내도 SK하이닉스 장부에는 부담이 없다.
문제는 SK의 독특한 지배구조다. 지배력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증손회사부터는 합작을 금지한다. 이 때문에 LG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주사들은 핵심 계열사를 지주사의 자회사로 두고 있다. SK는 총수가 직접 지배하는 지주사가 아닌 ‘돈 많은 자회사’ SK텔레콤을 통해 2011년 SK하이닉스를 인수했다. 2021년에는 SK텔레콤의 투자부문을 인적분할해 SK스퀘어가 SK하이닉스를 지배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SK스퀘어 시총은 51조 원 이상으로 (주)SK(19조 원 미만)보다 훨씬 크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SK하이닉스는 SK의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지위가 한 단계 올라 합작 자회사 설립이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 최태원 회장의 SK 지배력이 크게 떨어진다. 결국 최 회장의 지배력을 유지를 위한 지배구조가 SK하이닉스의 외부 합작 경로를 막은 셈이다.
2025년 10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 코스피, 코스닥 지수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삼성전자보다 유리해지겠지만…
삼성은 지주사 체제가 아니다. 삼성전자는 얼마든지 합작법인을 세울 수 있다. 2025년 3분기 말 기준 현금성자산은 삼성전자 108조 원, SK하이닉스 24조 원이다. 투자를 할 때 SK하이닉스는 더 많은 돈을, 더 많은 비용(이자)를 들여 외부에서 빌려야 한다. 규제 완화로 SK의 증손회사 합작이 허용되면 삼성전자보다 불리한 자금력을 단숨에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합작법인이 반도체 장비를 SK하이닉스에 빌려주면 금융 업종인 시설대여업이 된다. 비금융회사의 금융회사 지배 금지 법령에 어긋난다. 삼성은 금융과 비금융부문의 지배구조가 분리돼 있다. 삼성은 금융계열사나, 금융계열사의 합작법인을 통해 삼성전자에 반도체 장비를 빌려주는 구조가 지금도 가능하다.
SK가 주장하는 규제 완화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격차가 되레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투자를 위한 자금력이나 지배구조가 유리할 뿐 아니라 HBM 시장에서의 반전에 따른 기대도 더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새해 메모리 외에 칩 설계(시스템LSI)와 위탁생산(Foundry)부문에서도 의미 있는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
엔비디아냐 알파벳이냐…미국에서도 시총 1위 경쟁 ‘후끈’
새해 국내 증시에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위협하는 것처럼 미국 증시에서도 시총 1위를 놓고 각축이 예상된다. 인공지능(AI)의 심장인 엔비디아(Nvidia)와 인터넷의 제왕의 알파벳(Alphabet·구글)의 시총 경쟁이다. 2025년 말 시총은 엔비디아가 4조 5300억 달러, 알파벳이 4조 200억 달러다. 2025년 주가 상승폭은 엔비디아가 29%, 알파벳이 63%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론적으로 올해에도 알파벳의 주가상승률이 엔비디아의 2배를 웃돈다면 역전도 가능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025년 10월 30일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엔비디아는 AI칩 시장에서 새해에도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겠지만,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설비 투자가 정점을 찍고 '수익성 검증' 단계로 넘어가면, 매출 성장률은 둔화되고 수익성도 하락할 수 있다.
반면 2025년 알파벳은 엔비디아의 비싼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아닌 자체 개발 텐서처리장치(TPU)로 AI칩 비용은 절반으로 줄이고 효율은 배로 높였다. TPU를 사용한 ‘제미나이’는 생성형AI의 원조 격인 오픈AI의 챗(Chat)GPT 이상의 성능을 자랑한다. 특히 알파벳은 AI서비스 수익화에 가장 중요한 인터넷 검색(구글)과 콘텐츠(유튜브) 시장에서 절대 강자다. 자율주행과 양자컴퓨터 부문에서도 최상위 기술력을 자랑한다.
물론 엔비디아가 호락호락 추격을 허용하지는 않을 듯하다. 2025년 잉여현금흐름(FCF) 추정치는 엔비디아가 623억 달러, 알파벳이 845억 달러다. 올해 전망은 각각 786억 달러, 982억 달러로 엔비디아의 증가폭이 더 크다. FCF 대비 연간 주주환원율도 알파벳이 85~90%나 되지만 엔비디아 역시 65~70%로 결코 낮지 않은 수준이다. 1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도 엔비디아가 약 40배로 알파벳의 27배보다 훨씬 높다.
한편 알파벳은 이르면 올해 기업공개(IPO·상장)가 유력한 스페이스X 지분 7%를 보유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기업가치는 최대 1조 5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알파벳의 보유 지분 가치만 최대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셈이다. 스페이스X의 상장이 언제, 어느 정도로 성공할지가 글로벌 증시 왕좌의 게임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