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전 대통령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날 일요신문은 박상철 미국헌법학회 이사장을 만났다. 박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주도하고 김진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헌법 전문가다. 2023년에는 국회 입법조사처장을 역임했다.
박 이사장은 현행 헌법에는 ‘내란의 불씨’가 상존한다고 진단했다. 5년 단임제부터 검찰 기소독점 조항까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능하게 하는 헌법 조항들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요 선거가 없는 2027년을 개헌의 적기로 꼽았다.

“무기징역과 사형의 다른 점은 무기징역은 중간에 가석방으로 나올 수가 있다는 것이다. 조건은 엄격하지만. 사형은 어떤 심리적인 (압박) 효과도 있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사형을 주장을 하지만, 현역 법률 전문가 같은 경우는 무기가 가장 합리적이고 현행법 테두리에서는 최상의 판결을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귀연 판사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택한 사유는 지극히 비상식적이다. 내란 초범, 65세를 고령으로 언급, 공무원직을 오랫동안 수행했다는 것 등의 양형 결정 기준은 물론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도 거리가 너무 멀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징역 30년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을 받았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재판부에서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 같다. 사실 한덕수는 사전에 공모는 안 했을지 몰라도 (탄핵 판결) 이후 행적은 더 위험한 사람이었다. 대선 출마를 해서 (윤석열) 사면·복권까지 그림을 그렸고 실행에 옮긴 사람이 한덕수다. 징역 23년이 과한 것은 아니라고 봤는데, 이것보다 많은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내란의 실질적 2인자는 김용현이라고 자리매김한 것이다. 우두머리는 윤석열이고, 2인자는 김용현이고, 명령을 하달받고 움직인 자는 노상원이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가 사전 모의에 방점을 둔 것 같다. 내란이라는 게 음모죄도 처벌한다. (비상계엄이) 내란·반란죄라는 것을 재확인한 대목이다.”
―12·3 비상계엄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 헌법이 상당히 좀 과도기적인 헌법이다. 87년 체제 헌법은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장기 집권을 막되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을 못 썼다. 오로지 직선제 5년 단임에 몰두했다. 그래서 언제든지 윤석열 같은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있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 너무나 많다. ‘위임 민주주의’라고 한다. 모든 것을 대통령이 정한다는 식의 광범위한 위임 조항은 유신 헌법과 제5공화국(전두환 정권)의 잔재다. 2019년 박정희 서거 40주년 때 대통령에 대한 권한 견제가 잘 안 돼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반란이 일어날 여지가 있는 헌법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으로) 그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5년 단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근본 원인인가.
“임기를 단임제로 해놓으니까 당선되고 나서는 심판을 받지 않게 됐다. 안하무인의 권력을 쓰게 된다. 집권 정당의 지배는 물론이고, 국민에 대해 과거 왕에 가까운 수준의 대우를 받는 형태도 이제 벌어졌다. 국민으로서도 5년 단임제라는 직접 선거로 선출권만 있지 심판권이 없다. 미국같이 4년 중임제를 하면 또 출마해야 하니까 (정치인들이) 국민한테 눈높이를 맞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 4년 중임제나 4년 연임제로 하는 것이 국민적인 합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개헌을 못 했다. 돌이켜 보면 바로 그 사태가 그대로 반복됐다. 대통령이 국정 농단을 하고, 비선라인(최순실·김건희)이 들어와서 헌정 질서가 무너졌다.”

“윤석열 정부 때 검찰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기소독점주의에 수사권까지 있으니 검찰 중심으로 재판과 수사가 이뤄진 것이다. 그런 검찰을 대통령이 장악한다. 권력을 쥔 자가 사법을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이제 검찰은 보완수사권 주라고 한다. 보완수사권 주면 안 된다. 독자적인 권한을 또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에서는 검찰이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친검찰) 대통령이 나오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윤석열 때 충분히 봤다.”
―경찰 수사 역량을 믿을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경찰 수사 역량과 전문성은 신뢰할 만한 수준에 와있고, 이미 구조적으로도 강화됐다. 미국을 보면 인권과 적법절차(Due process)가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잘 보장되고 있다. 이는 탄탄한 경찰 수사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경찰 수사 역량의 발전을 개인적으로 경험한 적도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장 시절 ‘교수 시절에 한 박사과정 외국인 유학생에게 수업 편의를 봐주고, 학점을 부여했다’라는 의혹으로 업무방해 혐의라는 고발 사건을 겪었다. 당시 수사기관에서 1년 가까이 관련 자료와 절차 전반을 자세히 조사했다. 결국 무혐의로 정리됐다. 법적으로 문제없었음을 확인받았다. 이처럼 경찰의 성숙도를 볼 때 경찰을 불신하는 논리는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수사권 논쟁은 ‘되돌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고도화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방 분권을 위한 개헌 논의도 활발하다.
“지방자치 관련 규정은 유신 때하고 똑같다. 박정희는 조국 통일이 될 때까지 지방자치 안 한다고 했다. 전두환은 지방 재정 자립도가 달성될 때까지 안 한다고 했다. 그나마 DJ(김대중)·YS(김영삼)가 단식 투쟁을 해서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헌법이 허술하다. 지금 행정 통합이 진행 중이다. 법률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있다. 이제 헌법적으로 정리할 단계가 됐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지방에 줘야 한다. (지방분권 명문화를) 해야 한다.”
―개헌 시도는 계속 실패하고 있다.
“4·19 혁명 뒤에 개헌했다. 현재 쓰고 있는 헌법은 6·10 항쟁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국민의 저항권이 발동될 때 개헌이 된다. 촛불 집회는 더 큰 저항권 발동이었다. 지역도 상관없고 온 가족이 나왔다.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전국적 범위의 저항권 발동이었다. 당연히 헌법이 개정돼야 했었다. 그런데 그것을 놓쳐버렸다. 당시 야당(자유한국당)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5년 단임제 개정이라는 것 하나만 내걸었으면 분명히 됐을 거다. 그런데 권리장전 만들듯이 모든 조항을 막 넣다 보니까 야당에 반대 빌미를 준 거다.”

“동의한다. 개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것이 블랙홀이 돼 내란 종식에 대한 에너지가 다 빨려 들어가 버릴 수 있다. 제도 하나 고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헌법을 가지고 (모든 정권이) 반란을 일으키진 않았다. 그래서 (내란) 척결은 분명히 해야 한다. 내란 종식은 올해 안에는 어느 정도 끝날 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개헌의 적기를 나온다. 차기 국회의장 때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차기 의장은 개헌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지식이 있는 사람이 맡아야 될 것이다.”
―개헌 논의는 어디까지 진행됐나.
“제가 노무현 대통령 때 (개헌에 대한) 실질적인 리딩 역할을 했다. 국민 반대가 많았다. 야당도 특히 반대했다. 국회가 멈춰버렸다. 대통령 혼자 하려고 해도 안 됐다. 이처럼 개헌하려면 대통령과 국회가 동시에 가동돼야 한다. 그래서 지금 대통령은 국민참여형 개헌 위원회를 만들어서 공론화해야 한다. 그 의견을 수렴해서 국회에 전해야 한다. 그러면 국회는 개헌 특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특위도 못 만들고 있다.”
―이번 개헌 논의가 이재명 대통령 연임 시도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가 있다.
“야당(국민의힘)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또 나오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현행 헌법을 그대로 개정하는 한 (연임 시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없다. 염려할 필요 없다.”
―6·3 지방선거 등 선거 때마다 단계적 개헌을 하자는 제안에는 동의하나.
“반대한다. 국민이 원하고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 개헌 대상이 된다. 그러나 선거는 여야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수도권, 호남 등 지역별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 전체 합의가 필요한 개헌을 한다는 것은 적재적소가 아니다. 이런 제안의 이면에는 선거를 많이 치르면 국력이 낭비된다는 생각이 있다. 안 좋은 생각이다. (투표는) 자주 치를수록 좋다. 지방선거 뒤인 2027년 즈음은 정치적으로 예민하지 않을 때다. 내란 관련 재판도 거의 마무리될 것 아닌가. 그 시기를 (개헌 투표일로) 택해야 한다.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선거를 준비하려는 사람들하고 대화를 나눠보면 다들 ‘날을 따로 잡아야 되겠다’고 동의하더라.”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