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쪽짜리 기록을 AI(인공지능)가 단번에 파악하고 법률 서면도 써 줍니다.”
그의 표정이 씁쓸했다.
“AI가 최소한 100명의 변호사 역할을 거뜬히 해내요.”

그 외에도 있다. 실제로 했던 사건을 예로 들겠다. 20여 년 전 한 살인범의 변호를 맡았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한 여대생이 납치되어 잔인하게 살해됐다. 배경은 준재벌급 회장 부인의 살인 청부였다. 재판이 진행되던 어느 날이다. 구치소 접견실에서 살인범을 만났다. 곱슬머리에 작은 눈이었다.
“사모님이 보낸 대리인이 면회를 왔어요. 시나리오를 짜왔더라고요. 사모님 부분은 빼달래요. 내가 혼자 미행을 하다가 실수로 죽인 단독범행으로 진술하래요.”
그가 내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러면 사모님은 무죄가 되고 저는 과실치사죄로 가벼운 형을 살고 나갈 수 있대요. 시키는 대로 하면 50억 주겠대요.”
그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저는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도와주시면 섭섭지 않게 보수를 드리겠습니다.”
공범이 되자는 것이다. 죽은 여대생의 아버지가 법정에서 절규했다.
“사흘 만에 산에 버려진 딸을 찾았어요. 한이 서렸는지 한쪽 눈을 번쩍 뜨더라고요. 엄마가 그 눈을 감겨주니까 이번에는 다른 눈을 번쩍 떴어요. 그 딸이 지금 공원묘지에 있어요.”
고민했다. 침묵하면 돈이 들어온다. 말하면 벌을 받는다. 업무상비밀누설죄다. 법률서면에 그들의 음모를 적었다. 여대생의 영혼에 빙의해서 절규를 담았다. 내 영혼을 갈아 넣었다. 살인범과의 관계를 끝내고 일요신문에 내막을 폭로했다.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순식간에 180만의 조회수에 도달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들은 나를 형사고소하고 네 개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회장 사모님과 살인범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었다.
그와는 반대의 사건도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시사프로그램에서 8세짜리 두 아이를 납치한 사건이 나오고 있었다. 여론이 들끓었다. 그런 유괴범은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유괴범의 변호사였다. 아이들을 납치해 포천 쪽으로 가는 차 안에서였다. 어둠이 내리면서 아이들이 찡찡거렸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런 때 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극도로 예민해진 납치범은 혼란스러웠다. 저녁도 먹지 못했다. 운전하는 그의 앞에 도로변의 이벤트 상점이 보였다. 그는 차를 세우고 딸기코와 노랑머리를 샀다. 포천의 폐가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 그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면서 삐에로가 됐다. 아이들이 하하 웃었다. 수사 기록에 없던 딸기코 부분을 변론서에 부각시켰다.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납치범 대신 사정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오히려 내 딸을 살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재판 날 아버지는 딸을 안고 법정에 나왔다. 아이가 납치범을 본 순간 “안녕”하며 반가운 표정이었다. 재판장을 향해 “저 아저씨 좋아”라고 했다. 납치범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그는 사업을 하다가 막판에 몰린 폐병환자였다. 어제는 요즈음 나의 파트너가 된 인공지능에게 물어 보았다. 피해자의 절규를 느낄 수 있느냐고. 인공지능은 자기는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글에 영혼을 갈아 넣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말 자체의 의미를 모른다고 했다. 그런 인공지능에게 변론서를 맡기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판사에게 인공지능이 쓴 글은 감동을 줄 수 없다. 피해자를 찾아가 대신 빌어주는 것, 그것도 기계는 할 수 없다. 뉴스에서 인공지능 하나가 100명의 변호사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나는 말하고 싶다. 100대의 인공지능이 변호사 한 명의 양심을 대신할 수 없다고.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journalis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