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납품용 OLED 개발 담당자, 퇴직 4개월 만에 중국 티엔마 입사…법원 “연봉 3년치 반환·지급해야”
[일요신문] 삼성디스플레이가 퇴직 직원의 경쟁업체 이직을 막기 위해 연봉 1년 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했지만 결국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로의 이직을 막지 못해 위약벌 소송을 제기한 끝에 승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디스플레이 등 국가 핵심 기술을 보유한 업계에서는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높은 보수를 제시하며 인력을 영입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약정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퇴직 직원의 경쟁업체 이직을 막기 위해 연봉 1년 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했지만 결국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로의 이직을 막지 못해 위약벌 소송을 제기한 끝에 승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6년 5월 미국 LA에서 열린 세계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디스플레이 위크 2026’에 참가한 삼성디스플레이 전시 부스 전경.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제공수원지방법원은 지난 10월 15일 삼성디스플레이가 전직 직원 A 씨를 상대로 제기한 위약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삼성디스플레이에 연봉 1년 치와 약정 위반에 따른 위약벌로 연봉 2년 치(총 3년 치)를 물어내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2003년 3월 삼성디스플레이의 전신 회사인 삼성SDI에 입사해 2021년 1월 퇴직했다. A 씨는 2014~2015년 플렉시블(연성)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의 특성 분석과 생산 수율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2017년부터는 애플 납품용 OLED 패널 개발 전담팀에서 제품 신뢰성 관련 업무를 맡았다.
플렉시블 OLED는 유연한 OLED 소재를 사용해 패널을 구부리거나 접고 둘둘 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로 폴더블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이다. 올해 상반기 삼성디스플레이의 글로벌 스마트폰용 플렉시블 OLED 시장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 삼성디스플레이가 34.3%로 1위, 중국 BOE가 23.3%로 2위를 차지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에 OLED 패널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퇴직을 앞둔 2021년 1월 삼성디스플레이와 전직금지약정을 맺었다. A 씨와 삼성디스플레이가 맺은 영업비밀 보호서약서에는 퇴직 후 일정 기간 동안 경쟁업체로 이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경쟁업체에는 국내와 중국 주요 패널업체가 포함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같은 달 약정 대가로 A 씨에게 연봉 1년 치인 1억여 원을 지급했다.
A 씨는 2017년부터 애플 납품용 OLED 패널 개발 전담팀에서 제품 신뢰성 관련 업무를 맡았다. 서울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전시된 아이폰 듀오. 사진=연합뉴스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퇴직 직원과 통상 1~2년의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디스플레이와 A 씨가 맺은 전직금지약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A 씨는 퇴직 후 석 달 만인 같은 해 4월 중국으로 출국해 5월 티엔마에 입사했다. 회사와 A 씨가 맺은 서약서 상 이직 금지 기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A 씨는 퇴직 전인 2020년 5월부터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근무 조건을 알아봤다. 같은 해 9월엔 헤드헌터를 통해 티엔마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2021년 1월에는 취업에 필요한 서류를 해당 업체에 보냈다.
A 씨는 재판에서 전직금지약정이 직업선택의 자유와 경제적 생존 수단을 지나치게 제한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약정금의 두 배에 해당하는 위약벌도 과도하다고 맞섰다. 회사의 부당한 처우로 불가피하게 퇴직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재판부는 플렉시블 OLED가 상당한 기간과 자금, 노력을 투입해 개발하는 첨단 제품인 만큼 관련 기술과 정보에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쟁사의 연구개발과 양산 주기 등을 고려하면 2년간의 전직금지기간도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위약벌도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전직금지약정을 위반하면 손해배상만으로 삼성디스플레이 손해가 복구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기술집약적 산업에서 핵심 인력이 경쟁업체로 이직할 경우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이 높고 실제 유출이 발생한 후에는 피해 사실과 손해 규모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문대규 순천향대 디스플레이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것이 이직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며 “중국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과거보다 한국 인력 영입은 줄었지만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 인력 등을 통해 국내 인재를 물색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직금지약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스플레이 업계 한 관계자는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더라도 협력사와 계약을 맺고 실제로는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에서 일하는 경우가 있다. 파악하지 못한 사례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에서 2~3년간 연봉을 받으면 위약금 등을 부담하고도 남는 수준이어서 업계에서도 고민이 많다”라고 밝혔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10월 15일 삼성디스플레이가 전직 직원 A 씨를 상대로 제기한 위약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경기도 용인 삼성디스플레이 신사옥 SDR 전경.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제공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중국 업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양국 간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약 20년간 주도해온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은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려 주도권을 내줬다. OLED 시장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지난해 중국의 OLED 시장 점유율은 31%에 달했다. 중국이 LCD 시장에서 점유율 30%를 달성하는 데 약 15년이 걸린 반면 OLED 시장에서는 10년 만에 같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문대규 교수는 “폴더블과 IT(정보기술)·차량용 OLED 등 고부가가치 제품과 LTPO 기술에서는 한국이 여전히 앞서 있다”며 “다만 중국이 인재 영입을 통해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혔다. 범용 제품은 격차가 크지 않고 차세대 제품인 퀀텀닷(QD)이나 마이크로 LED 분야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에 디스플레이 공장이 없어 반도체보다 상대적으로 중요성을 낮게 보고 중국에 대한 제재도 강하게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피해액 23조 원…반복되는 해외 기술유출에 처벌 강화 목소리
첨단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 기술유출 범죄 단속 결과에 따르면 해외 기술유출 사건의 검찰 송치 건수는 총 103건이었다. 2021년 9건에서 2025년 33건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이 기간 중국으로 기술을 유출한 건수가 66건(64%)으로 가장 많았다. 분야별로는 디스플레이가 28건으로 가장 많았고 반도체(18건), 전기전자(9건), 조선(9건), 자동차·철도(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 1~7월에도 9건의 해외 기술유출 사건(검찰 송치건수 기준)이 발생했다.
첨단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사진=임준선 기자기술유출 수법은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 기업의 핵심 연구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외국 기업이 국내에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제3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 지사를 설립한 뒤 국내 인력을 빼가는 사례도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2020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산업기술 해외 유출 피해액을 23조 원으로 추산했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4년 핵심기술 해외유출 범죄에 대해 최대 징역 18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양형기준을 강화했다. 지난해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으로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는 손해액의 3배에서 5배로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산업기술보호법, 첨단전략산업법, 부정경쟁방지법, 형법을 통해 기술유출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 수위는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5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형을 선고받은 162명 중 절반에 가까운 77명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풀려났다. 기술유출 피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워 기술유출 자체로 인한 피해액이 판결에 반영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처벌 강화에 대한 요구도 높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6월 우리나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1.4%가 경제안보 차원의 법체계를 신설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90.6%는 범죄 이익보다 훨씬 큰 벌금이나 재산몰수 등 징벌적 경제 제재에 찬성했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경제스파이법’과 ‘반간첩법’을 통해 기술유출 자체를 억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은 2022년 항공기 엔진 기술유출 사건에 징역 20년을, 중국은 지난해 전투기 데이터를 외국 정보기관에 판매한 엔지니어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술유출은 경제범죄인 만큼 부당이득에 대한 징벌적인 환수 조치가 필요하다. 단순히 몇 년간 교도소에 있다가 나오거나 집행유예를 받는 수준으로는 기술유출을 근절하기 어렵다”며 “기업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한 기술이 유출되면 피해도 상당하다. 부당이득의 몇 배에 해당하는 벌금이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징벌적 수준의 경제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9월 개정된 형법에 따라 간첩죄 적용 범위가 기존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되면서 첨단기술의 해외유출 처벌 강화 가능성이 관심사다. 재계 한 관계자는 “첨단 산업기술이 국가기밀에 포함되는지, 기업이 보유한 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등 해석상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