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란의 시작은 지난 9·10월 A매치 기간 중에 일어났다. 10월 2일 0-0으로 끝난 베네수엘라전, 김민재는 팀원들에게 분발을 촉구했고 황인범은 대표팀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날 이들에 더해 황희찬까지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와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선수들은 대표팀 은퇴를 이야기했고 관계자는 이들을 만류했다.
곧 대표팀 안팎의 분위기가 꼬리의 꼬리를 물며 전해졌다. 손흥민(LA FC) 중심의 대표팀 내 베테랑 그룹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인범(FC 포르투), 황희찬(샬케) 등을 중심으로 한 그룹 사이 갈등이 있다는 것이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들 사이 감정의 골은 함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합작한 2018년부터 시작됐다. 장기간 축구계에서 대표팀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대한 뒷말은 무성했다.
최근 국가대표팀은 주요 메이저대회마다 잡음이 지속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손흥민 개인 트레이너가 대표팀과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저격성 발언을 남긴 ‘2701호 논란’, 2023 아시안컵에서는 선수들 사이 몸싸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인터뷰 보이콧 사태가 이어졌다. 이 기간 팀의 주장 손흥민의 리더십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혼란이 더해진 것은 현재 대표팀의 상황 탓이다. 북중미 월드컵에서의 대실패 이후 대표팀은 임시 감독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정몽규 전 회장의 사퇴 이후 후임 회장 선거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혁신’을 이루겠다던 ‘K-축구혁신위원회’도 돌연 활동을 멈췄다. 혼란을 정리할 주체조차 명확하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27년 1월에는 아시안컵이 막을 올린다. 언제나 대표팀이 우승을 목표로 하는 대회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대표팀을 이끌 감독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현 모레노 감독은 오는 11월 A매치까지 총 6경기 결과를 토대로 재신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에 모레노 감독의 이번 선택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갈등으로 인해 일부 선수들이 배제될 가능성이 언급됐다. 주장의 리더십이 타격을 입으면서 주장 교체 가능성 또한 대두됐다.

모레노 감독의 선택은 ‘정면돌파’였다. 자신의 두 번째 소집 명단을 내놓으면서 그는 “최고의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 승리에 가까운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목표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코칭스태프, 선수, 협회 관계자와 충분한 소통을 했다면서도 내부에서 일어난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했다. “내부의 일은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지난 소집부터 이어왔던 기조였다.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당사자들은 모두 이번 소집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장기간 대표팀 주축 전력으로 자리 잡아 왔다. 감독으로서 일부를 제외하기에는 부담이 많았다. 감독 본연의 임무인 축구에만 오로지 집중하고 싶은 의도 또한 감지됐다.
손흥민은 오세훈(시미즈), 오현규(베식타스), 이동경(울산 HD)과 함께 공격수로 선발됐다. 주장직도 그대로 유지됐다. 모레노 감독은 이에 대해 “대표팀 주장은 손흥민이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지난 A매치 기간에도 모레노 감독은 손흥민에 대한 신뢰를 보낸 바 있다. 세대교체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지난 4경기에서 손흥민은 꾸준히 선발로 출전했다. 최소 70분 이상의 출전 시간을 확보했다. 4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차범근 전 감독을 넘어 대표팀 역대 최다골 기록(59골)을 세우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민재, 황인범, 황희찬도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앞서 김민재는 소속팀 일정을 소화하는 중 가벼운 부상을 입어 지난 10월 26일 일정에서 제외됐다. 낙마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대표팀과 함께하기도 했다.
모레노 감독은 선수단 구성을 놓고 공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단”이라면서 “엄격함, 존중, 신뢰로 관리돼야 한다. 내 결정은 한순간의 감정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철저한 관리는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모든 인원에 대한 공정함에서 나온다”고 힘주어 말했다.
선수 시절 국가대표, 월드컵(1998) 출전 경력의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선수단 구성에 대해 “모레노 감독으로선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 임시 감독 신분으로 과감한 선택을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30년 전에도 그랬고 어느 팀이든 구성원 모두가 잘 지내기는 어렵다. 경기장에서 경기력만 잘 보여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단 스마트폰 메신저 단체방 내용이 유출되는 등 내부 이야기가 자꾸 밖으로 새고 있다. 모레노 감독이 이 부분만은 확실하게 단속을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4연전을 치렀던 지난 9·10월과 달리 이번 일정은 단 2경기만을 치른다. 지난 명단은 30명을 선발한 대규모였으나 이번에는 인원을 줄였다. 일부 자원들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공격 2선에서 가능성을 보였던 김민수(레인저스), 정승원(FC 서울) 등은 재승선에 실패했다.
포지션별 경쟁이 치열한 와중에 지난 명단에서는 없었던 인물들이 새롭게 발탁돼 눈길을 끌었다. 대회 일정이 겹쳐 소집이 불가능했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표팀 인원 일부가 이번 A대표팀에 합류하게 됐다.
그 주인공은 김지수(브렌트포드), 신민하(강원 FC), 엄지성(스완지시티)이다. 이들은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의 주축 자원으로 활약했다. 와일드카드로 팀에 합류했던 엄지성은 결승전 결승골로 금메달 획득의 주역으로 꼽힌다. 김지수, 신민하도 대회 5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중앙 수비수 듀오로 호흡을 맞췄다. A대표팀 선발 경험이 있는 김지수, 엄지성과 달리 신민하는 생애 최초 발탁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신민하와 더불어 손정범(FC 서울)이 최초로 A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고교 졸업 후 이번 시즌 K리그에 데뷔한 유망주다. 2007년생(19세)인 어린 나이, 데뷔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팀이 치른 33경기 중 30경기(2골 2도움)에 출전해 주목을 받았다. 20세 대표팀 경기조차 치른 경험이 없고 지난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하지 않았으나 곧장 A대표팀에 발탁이 됐다.
반면 향후 활약이 기대되던 멀티 자원 이기혁(강원 FC)은 승선이 불발됐다. 앞서 월드컵에서 갑작스러운 합류에도 주전으로 활용됐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와일드카드로 발탁, 금메달 획득까지 성공해 입지를 넓혔다. 하지만 금메달 소감을 말하다 “군대 안 갑니다”라는 발언에 ‘경솔하다’는 지탄이 이어졌다. 모레노 감독은 그와 관련된 질문에 “모든 판단의 기준은 축구적인 부분, 경기력을 기반으로 했다”며 이기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언급은 피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모레노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이 부지런히 국내 축구 현장을 다니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런 활동을 바탕으로 적절한 선수단을 구성했다고 본다. 새로 뽑힌 선수들 대부분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에 잘 어울리는 활력을 더할 수 있는 자원들이다. 좋은 경기력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