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갤러리에 대한 탈세 수사가 본격 시작되면서 대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서미갤러리는 그동안 재벌가의 전용 비자금 창구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일요신문 DB
검찰 주변에서는 “홍송원 대표의 ‘비밀장부’가 이번에 공개된다면 재벌 거물급들의 무더기 소환도 예상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검찰은 신정부의 경제민주화에 발 맞춰 서미갤러리의 비자금 사건을 속속들이 파헤칠 수 있을까.
서미갤러리(서미) 비자금 사건은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때 일부 비자금이 리히텐슈타인 작(作) ‘행복한 눈물’ 구입에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때 홍송원 대표의 이름도 입에 오르내렸다. 당시 90억 원에 이르는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이 삼성 소유라는 의혹이 일자, 홍 대표가 직접 나서 “그 그림은 내 소유”라고 밝히며 논란이 일단락된 것이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홍 대표가 삼성의 보호막을 자처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 뒤 홍 대표와 삼성의 관계는 소송과 소 취하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반전을 거듭했다.
이밖에 홍 대표는 2011년 3월에는 오리온 비자금 사건과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 로비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결국 홍 대표는 오리온그룹이 고급 빌라를 짓는 과정에서 조성한 비자금 40억 6000만 원을 세탁해 준 혐의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에도 홍 대표는 구속되지 않고 교묘히 빠져나가 말들이 많았다.
이 외에도 홍 대표는 일부 기업의 비자금 수사과정에서 두 번 정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내렸지만 그때마다 유야무야되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게 검찰 관계자 다수의 전언이다. 홍 대표를 확실한 ‘물증’으로 잡고 수사를 재계 전반의 비자금 들추기 쪽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게 검찰의 의지라고 한다. 그동안 서미는 재벌가의 전용 비자금 창구라는 의혹만 받아왔을 뿐 실제로 명확하게 밝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수사만큼은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제대로 한방 맞을 것이라는 게 검찰과 미술업계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 A 씨는 지난 2월 28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국세청 고발에 의한 단순 수사로 알고 있지만 사실 지난해 9월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기획수사”임을 강조하면서 “지난해 11월에 진행하려다가 ‘섹검’ 등 검찰 내부 잡음이 일어나면서 잠시 중단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초기작업도 국세청이 한 게 아니다. 검찰 측에서 이미 조사를 다 마친 상태에서 국세청에 ‘세무 탈루 관련 내용으로 (서미를) 수사할 만한 명분을 좀 달라’고 요청해서 이뤄졌다. 이후 국세청이 내부고발 형식만 취해서 검찰에 모종의 협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서미 비자금 수사 강도가 지난 건에 비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특히 최근 중수부 폐지가 결정된 상황에서 검찰 측이 서미 건을 통해 자존심 회복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검찰의 자존심이자 상징인 중수부를 폐지한 데 대해 검찰 내부에서 상당히 비통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시대 흐름이긴 하지만 검찰이 그동안 권력형 비리사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정한 칼날을 휘두르지 못한 데 대한 자업자득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첫 번째 대형사건을 서미 비자금 수사로 ‘기획’하고 무언가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 일부 검찰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서미 수사와 관련해) 초강경 수사로 일관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홍 대표를 강하게 ‘털수록’ 일부 재벌가와 그 총수에 대한 추가 수사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검찰 관계자 B 씨는 “최근 금융조세조사2부 측에서 ‘(홍 대표가) 너무 자신감 있는 것 같다. 똥배짱이다. 이번엔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텐데…’라고 대놓고 걱정까지 해주더라”면서 “일부 검사들 사이에선 홍 대표를 두고 ‘자신을 건드리면 다칠 거물들이 많다고 자신만만해 하는 것 같다. 자기가 무슨 잔다르크라도 되는 줄 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지나치게 자신감 있는 태도로 검찰 측 심기를 건드렸다는 얘기다. 중수부 폐지로 이를 갈고 있는 검찰의 강경 분위기에 홍 대표의 여유만만한 태도가 불길을 끼얹으면서 이 사건이 자칫 재벌가 전반의 비자금 수사로 확대될 여지도 다분히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검찰 측이 홍 대표를 거쳐 차후 ‘타깃’으로 겨냥하고 있는 재벌가는 어디일까. 복수의 검찰관계자들에 따르면 우선 ‘서미 단골’로 유명한 D, C, O 그룹 등이 수사 선상에 오를 전망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D 그룹 차녀 임 아무개 씨(33·서미갤러리 계열 화랑 서미앤투스 2대주주)가 대외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바짝 엎드려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향후 있을 검찰의 초강도 수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 앞서의 검찰 관계자 A 씨는 “현재 검찰의 타깃은 C, D, O 그룹과 H 기업 정도다. C 그룹의 경우 사실상 조사가 이미 다 끝난 상태다. 시간만 남은 상황이고 C 그룹 측도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라며 “C 그룹과 D 그룹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수도 많다. 먼저 이번 수사를 전후해 검찰의 대대적 인사이동이 예정돼 있다. 앞서의 검찰 관계자 B 씨는 “현재 서미 건 담당인 강남일 부장검사가 3월 5일쯤 공식적으로 물러나고 새 인사가 배치될 것”이라면서 “이미 2월 28일에 인사 교체가 있었다. 원래 박길용 차장검사가 이번 건을 맡으려다가 학연, 지연 청탁을 받기 어려운 강원도 태생인 비 SKY 출신의 아무개 검사가 서미 담당으로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 초반 강남일 부장검사가 사석에서 ‘시작도 안했는데 서미 측 지인들로부터 잘 부탁한다는 전화를 10여 통 받았다’며 인상을 찌푸렸다는 비화도 이번 인사 교체에 한몫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를 두고 서울고법의 한 관계자는 “검찰 측에서 연줄 없는 담당 검사 카드를 내놓은 것을 보니 이번 기회에 ‘재계를 크게 한번 휘어 잡아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금융조세조사2부 수사팀은 8명. 앞으로 추가적인 보강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한편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서미 건은 재벌가 비자금과 권력형 비리 수사의 서막에 불과할 뿐 본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최근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런 기류에 대해 “언론이 왜 서미 건만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겠다. 4월부터 서미 건을 뛰어 넘는 메가톤급 사건에 대한 수사가 한 달에 한 번씩은 터질 것”이라고 기자에게 귀띔한 바 있다. 중수부 폐지로 자존심이 긁힌 검찰이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박근혜 정부와 코드를 맞춘다면 신정부 출범과 함께 대대적인 사정정국이 조성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사건의 핵심 키워드를 쥐고 있는 홍 대표 측은 어떤 상황일까. 최악의 경우 7년 구형을 받게 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그가 여전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고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 또한 홍 대표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이상 수사진척이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로펌 대표 C 씨는 “힘 있는 라인을 통해 검찰과 대화를 했어야지, 처음부터 자신감 있는 태도로 입을 굳게 다무는 등 사실상 검찰을 향해 돌직구를 던진 건 치명상이었다. 다만 국세청에서 탈루 고발 형식으로 시작된 사건인 만큼 탈루가 없다는 근거만 대면 약식기소 선에서 무혐의 처리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