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도 검찰과 법원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다. 대법원은 지난 1월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새누리당의 이재영 의원과 민주당 신장용 의원, 무소속의 현영희 의원에게 줄줄이 당선무효형을 선고하며 의원직을 박탈했다. 재력과 정치권력을 쥐고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들이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힘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각자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 사회 상류층에서 이해에 따라 혼인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재계와 법조계도 마찬가지다. 재계와 정계가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결탁하듯이, 이들과 법조권력도 그물망처럼 인간관계가 형성돼있다.
예전 5공화국 시절 실세들을 배출했던 육군사관학교 장성 출신 모임인 ‘하나회’는 여러 모로 검찰과 맞닿은 면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한상대 전 총장이다. 한 전 총장의 장인은 육사 14기 출신의 박정기 씨다. 박 씨는 5공 정권에서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지냈다. 박 씨는 이상득 의원과 그의 동생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30년 넘게 각별한 인연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흥미롭게도 한 전 총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급부상하며 검찰총장이 됐다.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기도 한 한 전 총장은 고려대 출신을 중용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무부 검찰국장과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에 두루 발탁되며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한 전 총장은 2002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시절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아들의 명역면제 의혹을 제기한 ‘병풍사건’의 장본인 김대업 씨를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기소해 유죄확정 판결을 받아낸 바도 있다.
한 전 총장은 검찰총장 재직시절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4년을 구형하라고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지며 당시 서울대 출신의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SK그룹 수사를 진행했던 검사들은 대법원 권고형량인 징역 7년 이상을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고려대 출신의 기획통 검사인 한 전 총장은 검찰 내 ‘서울대 출신 특수통’ 검사들의 항명사태를 겪으며 초라하게 총장직을 사퇴했다.
국민수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은 역시 하나회와 연이 닿아 있다. 국 고검장은 배명국 전 의원의 사위다. 배 전 의원은 육군사관학교 14기 출신으로 ‘하나회’ 핵심 멤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공화국 시절 민정당 소속으로 3선 의원을 지냈다. 배 전 의원의 형인 배명인 씨 역시 전두환 정권에서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지내며 실세로 꼽혔다. 국 고검장은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과 기획조정부장을 지냈고, 청주지검 검사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을 역임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변칙증여 사건 당사자에게 중형을 구형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김창 부산지검 1차장검사의 장인 역시 5공 정권과 인연이 깊다. 김 차장검사의 장인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영창 씨다. 이영창 씨는 5공 정권 말 치안본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차장검사는 2009년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대표 사건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렸던 인물이다. 당시 ‘MB악법’ 저지를 내세워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민노당은 국회 경위 등에 의해 강제해산됐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인 강 전 대표는 국회 폭력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김 차장검사에 의해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야권 출신의 정치인 중에서는 장재식 전 장관을 꼽을 수 있다. 한국주택은행장 출신의 장 전 장관은 1992년 14대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내리 3선 의원을 지냈으며,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에 발탁됐다. 장 전 장관의 사위는 법무법인 동인의 임수빈 변호사다. 1980년 대학입학시험(예비고사)에서 전국 차석을 차지한 수재였던 임 변호사는 검사로 임관해 대검 공안1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등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2009년 ‘MBC PD수첩 사건’을 계기로 검찰을 떠났다.
왼쪽부터 한상대 전 검찰총장, 홍석조 전 광주고검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당시 MBC가 보도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MBC가 고의로 오역을 함으로써 한·미FTA 협상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임 변호사는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다. 임 변호사는 ‘MBC가 일부 사실을 왜곡했어도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보인 반면 지휘부는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것을 지시했고, 결국 고집을 꺾지 않은 임 변호사는 24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났다. 장재식 의원의 장남은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인 장하준 씨고, 조카인 장하진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역임했다.
재계도 정치권 못지않은 검찰 인맥을 자랑한다. 삼성가가 법조계와 맺고 있는 깊은 인연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인은 자유당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난 홍진기 씨다. 이 회장은 홍 전 장관의 장녀 홍라희 씨와 결혼했고, 홍 씨의 둘째 동생은 홍석조 전 광주고검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홍 전 고검장의 경우 오히려 삼성가와 맺은 인연이 독이 돼 검찰을 떠나게 됐다는 부분이다.
검사 임관 이후 대검 기획과장, 법무부 검찰국장, 인천지검장 등을 역임하며 2004년 고검장으로 승진한 홍 고검장은 검찰 내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였다. 하지만 홍 고검장은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의혹이 제기되면서 옷을 벗어야 했다. 홍 고검장은 이학수 삼성 부회장과 친형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의 대화 내용이 담긴 도청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삼성의 ‘떡값’을 후배 검사들에게 나눠준 인물로 지목됐다. 홍 고검장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고,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마무리하며 홍 고검장을 비롯해 홍석현 회장과 이건희 회장 등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삼성 봐주기’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홍 고검장은 ‘더 이상 검찰 조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스스로 사퇴의사를 밝혔다. 홍 전 고검장은 보광훼미리마트 대표이사와 BGF리테일 회장을 지내며 기업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홍석현 회장의 장인 역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신직수 씨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경우는 최악의 결말을 낳은 사례다. 현 회장은 대학 재학시절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현 회장은 검사 재직시절 동양그룹 창업자인 이양구 회장의 장녀인 혜경 씨를 만나 결혼했고, 그 후 검사를 그만두고 아들 없이 딸만 둘이었던 이 회장의 밑에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 회장 별세 후 동양그룹 회장에 오른 현 회장은 동양그룹의 미래주력사업으로 금융분야를 선정하고 ‘일국증권’을 인수해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때 재계순위 5위 내에 꼽히기도 했던 동양그룹은 200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현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자금조달을 했고, 결국 수천억 원대 사기성 CP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힌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됐다. 현 회장의 경영실패로 업계에서 알짜 회사로 불리던 동양증권은 물론 그룹 자체가 공중분해되며 지난해 큰 이슈가 됐다. 사법연수원 2기 출신의 현 회장은 20년이 넘는 터울의 후배검사들에게 덜미를 잡혀 구치소 신세를 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도 검사를 사위로 맞았다. 김 회장의 사위는 정택화 광주고검 검사로,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산고검 부부장검사, 의정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대구고검 검사를 거쳤다. 정 검사의 부친은 유원연료공업의 정권영 사장이다.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남정 씨는 신건 전 의원의 사위이기도 하다. 검찰 출신의 신 전 의원은 1969년 부산지검 검사 임관 후 법무부 조사과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광주고검장을 지낸 뒤 1993년 법무부 차관에 임명됐다. 이후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캠프 법률특보를 맡아 활약한 공로로 DJ정권에서 국가정보원 2차장,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 부위원장 등을 지낸 뒤 2001년 제25대 국가정보원 원장에 취임했다. 신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불법감청을 지시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기도 했다.
이선영 언론인
법조계 이런 인맥도 있다 어제의 앙숙이 오늘의 사돈으로… 정계의 앙숙이 법조계 인맥으로 엮인 케이스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전 장관과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 씨가 당사자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천 전 장관은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선과정을 무사히 치를 수 있도록 바람막이가 돼 준 ‘경선지킴이’로 유명세를 타며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친노 인사다. 반면 최 전 대표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며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둘은 섞이려야 섞일 수가 없는 정치적 앙숙이었다. 왼쪽부터 최병렬, 천정배. 최 전 대표의 사위도 현직 검사로, 한찬식 법무부 인권국장이다. 서울지검 검사, 울산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대변인을 거친 한 국장은 국가정보원 파견근무를 다녀온 뒤 법무부로 복귀했으며, 다음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